전세 만기 앞두고 경매로 이사하기
일반적으로 경매로 집을 취득할 때는 시간을 넉넉하게 두는 것이 좋다. 낙찰 받기까지의 탐색 기간은 별도로 하고 낙찰 받은 뒤의 시간을 살펴보면, 매각 허가 결정이 나기까지 1주일, 다시 이 결정이 확정되기까지 1주일, 그리고 잔금 납부까지 보통 45일의 시간을 준다. 낙찰 받고 나서 소유권을 취득하기까지 대략 2개월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2개월 뒤에는 낙찰 받은 집에 입주하거나 새로 세입자를 들일 수 있을까. 경매 경험이 있거나 관심이 조금만 있어도 ‘천만의 말씀’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존의 점유자를 내보내는 일, 바로 명도가 문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전세 기간 만료를 앞두고 경매로 집을 낙찰 받아 이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광진구의 연립 다세대주택에 사는 K 씨는 군에 간 아들이 제대할 시기가 다가오자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이 비좁다고 판단돼 이사를 결심했다. 경매계에서 20여 년을 종사한 K 씨는 일반 매매로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전세 만기까지는 2개월. 집에는 “걱정 마라”고 큰소리까지 쳐 놓은 상황이다.
마침 집 근처 강동구 암사동의 79㎡형(24평형)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건번호를 살펴보니 2009년에 접수된 사건으로, 감정가도 2억6000만 원으로 시세에 비해 낮았다. 1회 유찰로 최저 입찰 가격은 2억800만 원으로 내려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보증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일단 가격이 목표한 범위 내에 들어 왔으니 그 다음은 명도의 난이도를 따져봐야 했다. 2009년 사건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면 점유자의 상황이 좋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경매 정보 회사의 당사자 내역을 살펴보니 임차인이 임차 보증금을 반환 받기 위해 경매를 청구한 사건이었다. 청구 금액은 1억1000만 원. 법원 문건 접수 현황을 살펴보니 채권자인 임차인에게 여러 차례 주소 보정 명령이 내려졌다. 아마도 채무자인 주택 소유자의 거소(居所)가 파악되지 않은 탓으로 보였다.
K 씨는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정리해 봤다. 임차인은 임차 보증금을 받기 위해 임대차 계약을 근거로 법원의 강제경매 판결을 받아 내고서도 소유주의 거소를 파악하지 못해 2년 이상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현재 주변 아파트의 전세 시세가 높아 이 보증금을 받아 내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지만, 보증금을 100% 회수할 수 있다면 임차인은 그곳에 살기보다 이사하려고 들 확률이 높다고 판단됐다.

이렇게 판단이 선 K 씨는 입찰에 참여했고 감정가에 근접한 2억5000만 원을 써내 낙찰을 받았다. 약간 높게 쓴 감이 있지만 반드시 낙찰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만약 체불 임금 등 미리 파악하지 못한 최우선 변제 채권이 나타나더라도 임차인이 보증금을 회수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여유 있게 적어낸 것이다.
이후 K 씨는 매각 허가 결정이 확정되자마자 경락 잔액 대출을 통해 잔금을 완납하고 법원 집행계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뒤 배당 기일을 일찍 잡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예상보다 이른 잔금 납부와 배당 기일 통보에 세입자가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2년을 끌어 온 보증금 회수가 완료되는 데다 약간의 비용을 협조해 주기로 한 배려에 감사하며 K 씨가 정한 기일에 이사할 것을 약속했다. 언제나 그렇듯 최고의 명도는 법도, 주먹도 아닌 대화와 타협이라고 K 씨는 덧붙였다.
남승표 지지옥션 선임연구원 lifa@gg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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