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퇴의 전조


유럽발 경제 위기가 진행되면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재판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럽발 경제 위기가 진행되면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는 유럽 은행들이 한국 같은 이머징 마켓에서 투자금을 빼나가기 때문에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나리오 때문이다.
‘금값·전셋값’ 변화로 보는 위기의 양상
유럽 주요국과 미국·중국 등의 정책 대응 수위에 따라 이번 사태가 전 세계로 전이될 것인지, 아니면 무수히 겪고 넘어 왔던 위기 수준이 될 것인지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겪어 봤던 투자가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일각의 주장처럼 일단 현금화해 놓는 전략이 능사는 아니다. 공포에 싸여 헐값에 던진 자산은 위기 이후 그 가격에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동안 전 세계에 풀렸던 유동성은 언제 부메랑이 되어 인플레이션이라는 모습으로 역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자산을 현금화하는 전략은 위험천만하다. 그러면 향후 더블 딥이라는 두 번째 디플레이션이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인플레이션 폭풍이 휘몰아칠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필자는 금값과 전셋값이라는 두 가지 지수를 지켜보라고 권한다.

금값은 전통적으로 달러화를 대체하는 수단이었다. 정확히는 금이 차지해야 하는 자리를 달러화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 맞다. 이런 이유로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입지가 약해지기라도 하면 금값이 계속 올라왔던 것이다.

지난 십수 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로 달러의 시장 공급이 확대되자 달러 가치의 하락을 우려한 투자가들이 금을 매집해 왔다. 이 때문에 금값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2001년 트로이온스(1트로이온스는 31.1035g)당 279달러였던 금값은 2009년 말까지 연평균 18.7%씩 상승했고 2010년 한 해만도 30%나 올라 1421달러에 이르게 됐다.


유동성 부족하면 금값 하락

금값이 계속 오르지만은 않는다. 시장의 신용 수축 등으로 달러화 유동성이 축소될 때는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 실제로 2008년 3월 18일 트로이온스당 1003달러였던 금값은 여덟 달이 지난 11월 13일 705달러까지 하락해 30%나 급락했다. 이 기간 동안 신용 수축으로 여러 금융회사가 어려움을 겪었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금을 시장에 내다 판 것이 금값 하락을 가져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동성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면 금값이 오르고 반대로 신용 수축 등 유동성 축소로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 금값이 내리곤 한다.

따라서 현재의 유럽발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시금석이 바로 금값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은행들의 유동성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면 그들이 보유한 금을 시장에 팔 것이고, 이에 따른 금값 하락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더구나 이런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국제 투기 세력이 개입하면서 금값 하락은 2008년도 이상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럽발 사태의 심각성이 2008년보다 덜 심각하다면 금값 하락 속도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금값 추이가 현재로서는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미국 신용 등급 하락이나 유럽발 금융 위기 문제가 불거진 올해 8월 이후 금값 추이는 어떻게 될까.

지난 8월 1일 1619달러였던 금값은 8월 22일 1889달러에 이를 때까지 오히려 17%나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그러다 그 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9월 26일에는 1593달러까지 내려가 16%의 하락률을 보였다. 이 한 달여의 기간만 보면 디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 금값은 반등하기 시작해 10월 25일 종가 기준으로 1700달러에 이르게 됐다. 한 달 동안 7% 정도의 반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승세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바닥을 다진다고 보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8개월간, 그리고 최대 30%까지 하락했던 금값이 이번 유럽발 금융 위기 때는 한 달 정도만 영향을 미치고 그 폭도 16% 정도에 그치는 등 그 위력이 반감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럽발 금융 위기를 시장에서 과소평가한 것이라기보다는 1차 양적 완화와 2차 양적 완화를 통해 그동안 시중에 풀려나간 유동성의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금융 위기가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 속단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이번 사태로 디플레이션 늪에 빠질 가능성보다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금값·전셋값’ 변화로 보는 위기의 양상
내년 1월 이후 전셋값 주목해야

그러면 국내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의 시금석이 될 만한 지수는 없을까. 그것이 바로 전세금 추이다. 전세는 100% 실수요라고 할 수 있다. 투자 심리에 따른 영향을 받는 매매 시장에 비해 수요와 공급, 그리고 유동성 증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전세 시장이다. 경제 위기가 진행되면 몇 가지 원인에 의해 전세 시장이 위축된다.

첫째는 유동성 부족이다. 경기가 좋을 때 실수요자는 ‘삶의 질’과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돈만 충분하다면 다가구주택의 지하 전셋방보다 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것을 원할 것이고, 같은 아파트라도 낡거나 좁은 아파트보다 넓거나 새로 지은 아파트를 선호할 것이다.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라도 교육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전세를 살고자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곳일수록 수요가 몰려 전셋값이 비싸진다. 이 때문에 경기가 다소 풀려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거나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이 덜해지면 실수요자는 ‘삶의 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또 전셋값이 오르게 된다. 서로 경쟁적으로 좋은 입지의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강남 3구와 강북 3구(노원구·도봉구·강북구)의 전셋값을 비교해 볼 때 내수 경기가 가장 좋았던 2006년 10월에는 그 차이가 86%나 벌어졌던 것이 국제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에는 75%까지 그 격차를 줄이게 됐다. 경제적 이익을 선택하는 실속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증거다. 그러다 현재는 88.2%로 그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물론 이것은 8월 중순의 89.1%보다 0.9% 떨어진 수치다. 하지만 2008년 8월부터 10월까지의 하락 폭 2.7%보다 훨씬 적은 감소 폭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수요의 감소다. 경기가 나빠진다고 세입자 수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1998년의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같은 경제 위기 때는 수요 감소가 일어나기도 한다. 1인 가구가 그 주범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독립해 살다가도 경기가 급랭하면 본가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친지 등 또 다른 1인 가구와 합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라는 삶의 질보다 경제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유동성 부족이든 수요 감소든 경제 위기가 진행되면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면 현재 상태는 어떠한가. 아직은 통계상으로 전셋값 약세 현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0월 17일 현재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 지수는 105.7로, 이는 전 월말의 104.3은 물론 전 주의 105.5에 비해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전셋값 상승세가 꺾인 것으로 감지되고 있지만 이것이 경기 하강에 따른 전셋값 하락의 시작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상 입주일 기준으로 10월 말까지 입주해야 새로운 학군에 배정되기 때문에 10월부터 겨울 학기가 시작되는 12월까지는 전셋값이 약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26년간 통계를 보아도 1분기의 전셋값 상승률은 4.6%에 이르지만 4분기의 상승률은 오히려 마이너스 0.1%의 하락세를 보여 왔다. 그러므로 내년 1월 이후의 전셋값 동향이 주택 시장의 향방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