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선 혼자 밥 먹는 일이 흔해졌다. 외로운 식사, 고식(孤食)이다. ‘홀로 밥 먹기’란 말도 유행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고식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원래 일본에선 홀로 식사하는 게 일상 풍경 중 하나다. 곱지 않은 시선도 별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인식이다. 대중식당을 비롯해 웬만한 곳엔 단독 손님을 위한 공간 배치가 필수다.
고식은 경기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돈이 없고 생활이 빠듯해질수록 외로운 식사 압박은 늘어난다. 1990년대부터 고식은 증가세다. 그래도 그땐 버블 잔영이 남아 사회적 고립·폐색이 지금보다 덜했다. 심해진 건 2000년대부터다. 자본주의의 한계·부작용이 본격화되면서 패자(후보) 그룹이 급증한 때다.
경쟁 격화로 삶의 질은 떨어졌고 그나마 기능하던 공동체 의식은 견제·대립 심화로 눈에 띄게 옅어졌다. 새로운 신분 차별도 거세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행할 수 없는 구별 장벽 앞에 분리됐다. 직장 생활은 삭막해졌다. 청년 세대는 돈이 부족해 연애를 포기하고 홀로 밥 먹기 시작했고 경쟁 격화에 내몰린 기성세대는 동료와의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지며 마음 편한 소통 해소, 인맥 향상을 위한 식사 자리가 급감했다. 홀로 버텨내야 할 사회적 부담·압력이 자연스레 고식 증가로 연결됐다.
외로운 식사는 확산 중이다. 일단 연령 구분이 없어졌다. 우선은 고령자 고식이 포커스다. 라이프스타일상 홀몸노인은 혼자 식사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TV를 켜놓은 채 고독·소외감을 떨쳐버리려고 하지만 실상은 그럴수록 더 외롭다는 호소다.
아동의 고식 문제도 뺄 수 없다. 맞벌이 부모 때문에 불가피하게 홀로 차려진 식사를 하거나 인스턴트로 때우는 것이다. 심각한 건 아동 학대와 관련된 고식 방치다. 부모의 이혼·사별·해고 등에 직면해 정상적인 육아를 거부당한 채 편향된 고식 압박을 받으면 영양실조, 심리 불안 등으로 악화될 수 있다. 고식 방치는 아동 학대의 단골 지적 사항이다. 문제는 생산가능인구(15~64세)까지 외로운 식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변화·경기 침체가 원인
외로운 처지는 무연(無緣)사회와 직접 관련을 갖는다. 외로움을 덜어줄 주변 인연과 네트워크가 줄어들거나 기능하지 않는 시대 개막이다. 즉 고식은 가족 관계의 변화와 밀접하다. 일본 사회가 애초 고식 문제를 맞벌이 세대의 소외 아동에 타깃을 맞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고식(孤食)이면서 동시에 개별 식사를 의미하는 개식(個食)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공교롭게 둘 다 일본어 발음이 같다).
다만 고식(孤食)과 개식(個食)은 다르다. 개식은 생활양식 변화에 따른 개별 식사를 뜻한다. 가족과 함께 먹던 전통 형태에서 벗어나 따로따로 식사를 해결한다는 의미다. 굳이 비교하면 회식(會食)의 반대다. 개식이 가족 붕괴가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라면 고식은 사회 분열이 가속화된 2000년대 이후 확산됐다는 점도 차이다.
고식의 직전 단계도 있다. ‘런치메이트(Lunch-mate syndrome)증후군’이다. 점심을 같이 먹을 친구나 지인이 없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 질병이다. 신경과 의사인 마치자와 시즈오가 이름 붙였다. 학교·직장에서 식사 상대가 없어 발생하는 일종의 공포적인 심리 상태다. 2000년대부터 유행 중이다. 주요 증상은 혼자 밥 먹는 걸 두려워하거나 이런 자신을 인간으로서 가치가 부족하다는 투로 자기 폄훼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밥 먹을 친구조차 없다는 걸 인간적 매력 상실의 증거로 여긴다. 결국 혼자 먹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심하면 사회활동을 거부하며 집 안에 매몰돼 폐인처럼 살기도 한다. 통계를 종합하면 10~20%는 고식에 뚜렷한 저항감을 갖는다. 일본 사회를 뒤집은 화장실 식사가 런치메이트증후군의 대표 사례다.
일각에선 이를 ‘고독 혐오 신드롬’이라고 규정한다. 고독할 수 있는 용기와 이를 즐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타인과의 관계 경험과 생활 체험 부족이 원인이다. 이들은 ‘혼자 있는 것’보다 ‘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거부반응이 심하다.
연령이 젊고 여성일수록 비율이 더 높다. 특유의 감수성 때문이다. 고식여부·빈도를 ‘친구 격차’로 이해하기도 한다. 고식 거부감은 외부에 비춰질 낙인 등 시선 압력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여성의 거부감이 높은데 이는 여성 특유의 무리의식에서의 배제가 낳는 저항감 때문이다. 본인을 객관화해 타인 시선에 비춰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실제 각종 조사를 보면 일본 성인에게 혼자 먹는 밥은 일상적이다. 또 뚜렷한 증가세가 목격된다. 성인 중 49.7%가 홀로 밥을 먹곤 한다고 답했다. 40대 이하 남성은 60%가 그렇다고 했다(60대 24%). 또 단신 거주자의 68.8%가 외로운 식사에 익숙했다(DIMSDRIVE, 2009년). 아침·저녁의 고식 인구 비율은 성인(51.5%)이 중고생(44.7%)보다 높다(이코마시청 앙케트, 2007년).
한편 대학생의 28.6%는 점심을 혼자 먹는다고 했다(전국대학생협연 학생생활실태조사, 2010년). 이들 중 71%는 친구가 적었다. 특히 여성의 고식 경향이 심하다. 여성의 84%가 ‘홀로 밥을 먹는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했다. 빈도는 주 1~3회가 21%다.
매주 혼자서 먹을 때가 있다는 응답은 2명 중 1명에 달했다(트렌드종합연구소, 2011년). 아예 고식을 즐기는 인구도 적지 않다. 굳이 찾기 힘든 짝 때문에 좌절·소외되느니 속 편하게 홀로 먹겠다는 부류다. 설문 조사를 분석해 보면 편히 먹을 수 있거나(62%) 원할 때 먹을 수 있다(46.7%)는 답이 많다. 안정적(37.4%)이거나 원하는 걸 먹거나(37.1%) 천천히 즐길 수도 있다(35.8%).
고식 고객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 연결된다. 외식 분야가 대표적이다. 일반 음식점은 일찌감치 1인 고객을 위한 자리 배치, 메뉴 개발에 나섰다. 대부분의 음식점에 단독 손님용 자리는 필수다. 최근엔 홀로 찾기 힘든 메뉴·음식점까지 1인분 손님 유인에 적극적이다. 1인분 숯불구이에서부터 1인분 찌개 식당은 물론 1인용 술집과 1인 노래방까지 생겨났다.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도서관 열람석처럼 칸막이가 쳐진 자리 배치다. 이 밖에 혼자서 밥 먹기 좋은 음식점 100선을 비롯한 1인용 수요를 반영한 추천 정보 등을 공유하는 가상공간도 많다.
흥업 중인 식사 도우미
독거 남성 타깃 ‘인기’
일본은 서비스 천국이다. 몸에 밴 배려와 친절이 이방인을 적지 않이 감동시킨다. 이 와중에 외로운 식사를 위한 신종 서비스가 등장했다. 한 운전사 파견 업체가 고안해 낸 ‘와쇼쿠야(話食屋)’ 서비스가 그렇다. 직접 고객의 가정을 방문해 가정 요리를 해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다. 일종의 출장 요리와 대화 상대의 접목이다. 원하는 주문 요리의 현장 조리가 기본이다. 무연사회 심화와 구매 난민 증가를 야기한 독신 남성이 증가한다는데 주목한 것이다.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틈새 산업’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주요 고객은 중년 남성이다. 최대 70대 고령 남성도 단골손님이다. 너무 바빠 요리 시간이 없는 독신 중년이 메인 타깃이다. 주지하듯 일본의 독거 가구는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의 30%(1600만)다. 그만큼 전망이 밝다는 의미다.
외로움의 수익 모델화다. 1회(3시간)에 1만5000엔 수준이다. 이후 15분마다 500엔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만족도는 꽤 높다. 이용자로선 자택에서 편하게 입맛에 맞는 요리 주문이 가능한데다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제공해 손을 댈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우호적인 대화 상대가 있어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월 1~2회 이용한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다. 이보다 앞서 등장해 화제를 모은 불만 청취 서비스와 같은 맥락이다. 주변에 터놓고 불만·분노를 얘기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언제든 맞장구를 쳐주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