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성공 신화에서 봤음직한 이러한 이야기는 바로 아버지의 일생이기도 하다. 억척같은 세월을 견뎌내며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이뤘고 가정과 회사를 책임지셨다. 요즘에 와서야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고 있지만, 과거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었던 것 같다
뭐라고 할까. 아주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늘 바쁘게 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멋진 분이셨고 때때로 동생들과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가정적인 아버지였다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사춘기 청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터인지 장기간 해외 출장이 많으셨고 가족들과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것보다 밖으로 새해 인사를 다니셨고 밖에서 술을 많이 드시고 오시면 자식 얼굴을 보고 싶으신지 나와 동생들을 어머님이 그렇게 말리셔도 새벽에 깨워서 가만히 아버지의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하셨다.
그 당시 우리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모든 결정권은 아버지 손에 달려 있었고 그것은 곧 아버지의 고집스러움과 냉정함으로 비춰졌다. 고3 시절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아버지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르셨다. 상중에 많은 조문객들을 도리어 위로하시고 때때로 웃음을 보이시고, 한창 예민했던 내게 그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 사진처럼 가슴에 박혀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미움을 더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본의 아니게 가정 경영도 하게 됐다. 식비·학비·교통비 등 지불되는 가정 경비에 대해 꼼꼼하게 검증해 참으로 가정부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가족들에게 너무 차갑게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오해와 갈등을 품은 채 세월은 흘렀고 아버지처럼 나 또한 한 회사를 꾸려나가는 경영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피와 열정을 물려받았지만 더 뛰어나고 더 따뜻한 내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양어깨에 짊어진 그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당신을 짓눌렀을지는 지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단지 인내와 절제를 바탕으로 전진하기를 요구했던 당시 시대상이 우리네 아버지들의 엄격함과 꼿꼿함을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좋은 결과물을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느 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당신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따뜻한 그 ‘진심’을 나는 내 나름대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고 현시대의 경영인으로서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최성희 브로드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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