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미래
한국의 도시는 ‘특색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이 미적 고려는 물론 기능적으로도 장기적 계획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즉 ‘난개발’이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난 우리나라의 ‘국격’에 맞는 미래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 국내 최고의 도시 개발 전문가로 꼽히는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와 박원갑 KB국민은행 신금융사업본부 부동산 수석팀장이 만나 ‘바람직한 미래 도시’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도시는 단순하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세계적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의 이야기는 인류사의 혁신과 창조의 근원을 도시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죠.
즉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또 다른 형태의 도시가 탄생하고 그 도시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최근 부각되는 게 MXD(Mixed Use Development : 복합용도개발) 방식입니다. MXD는 주거·업무·상업·문화·교육 등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상호보완이 가능하도록 연계 개발하는 방식이죠. 대표적으로 송도·청라·동탄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이 예정된 용산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이제 경제의 발전 단계를 보면 이제 삭막한 콘크리트만이 보이는 과거의 도시 형태는 한계가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 발전 단계를 요소 주도(Factor-Driven), 투자 주도(Investment-Driven), 혁신 주도(Innovation-Driven), 자산 주도(Wealth-Driven)로 나눴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제 한국 경제는 기술 혁신을 넘어 ‘부(Wealth)’가 주도하는 자산 주도형 경제로의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들 MXD 방식으로 개발되는 새로운 개념의 신도시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주춧돌이 돼야 할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 중에서도 대학의 기능에 크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신도시들과 가장 확실한 차별점이죠. 많은 혁신은 대학에서 출발합니다. 송도가 유치한 국내 여러 명문대는 도시를 젊게 바꾸고 또 여러 혁신의 여건을 만들게 분명합니다.
박 팀장 : 그렇다면 심 교수께선 송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심 교수 :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가장 먼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이 테헤란로가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까지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거의 40년이 걸렸습니다. 거칠게 계산하면 테헤란로의 업무 시설은 198만3000~231만3500㎡(60만~70만 평) 정도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송도의 업무 시설은 이의 두세 배 정도는 330만5000㎡(100만 평)에서 661만㎡(200만 평) 수준입니다. 즉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 속도로 성장한다고 치더라도 송도가 테헤란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으려면 2030년 정도는 된다는 거죠. 당연히 그 사이 많은 시련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중요한 것은 ‘차세대 한국의 성장 동력’이랄 수 있는 송도에 단지 지역자치단체의 수준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수십 년 동안 ‘파격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말이죠.
이런 사례는 선진국의 신도시 개발에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주는 등 굉장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박 팀장 :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사실 송도에 적극적 지원이 이뤄지면 일견 타 지역 등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멀리 본다면 ‘고용 창출’은 우리뿐만 아니라 선진국 정부들도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국가적 사업입니다. 송도가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진화시키는 데 역할을 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주변 지역에도 긍정적인 ‘트리클 다운(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하게 된다는 경제 이론)’을 낼 수 있을 게 분명합니다.
심 교수 : ‘다양한 아이디어’도 필수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이 같은 아이디어가 좀 ‘과하다 싶은 수준’까지 추진돼도 좋다고 봅니다. 세계인들이 깜짝 놀라는 수준의 아이디어를 곳곳에 ‘도배’하는 정도로 배치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거죠. 모든 가로등에 단말기를 만들어 도시의 각종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휴대전화를 들고만 다녀도 모든 결제가 이뤄질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죠.
박 팀장 : 문화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고 봅니다. 성공한 도시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들도 가지고 있죠. 파리의 에펠탑,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등등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송도를 최근 주목받는 한류라는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고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시가 송도신도시에 건설하는 ‘인천아트센터’는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인천아트센터’는 문화단지(문화시설), 지원1단지(예술작업공간), 지원2단지(주거시설)로 구성됩니다. 문화단지에는 콘서트홀·오페라하우스·현대미술관·음악학교가 조성되고 지원1단지에는 아티스트 스튜디오(오피스텔)와 아티스트 스트리트(상업시설)가, 지원2단지에는 ‘인천아트센터 송도 아트윈’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섭니다. 이처럼 문화와 주거시설이 함께 조성되는 인천아트센터는 대규모 아트 콤플렉스로서 생활 속에서 문화를 깊게 누릴 수 있는 문화시설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심 교수 : 사실 도시 개발 모델에서 아트센터라는 개념이 성공하기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힘듭니다. 자칫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텅텅 빈 흉물 공간이 될 수 있죠. 이 때문에 이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죠. 하나는 ‘모나리자’와 같이 엄청나게 유명한 작품이나 공연을 유치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정말로 시민들이 아무 때고 찾을 수 있는 ‘생활 밀착형’으로 가는 겁니다.
첫째 방법이 여러 여건상 힘들다면 두 번째 방법에 집중해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인천시가 인천아트센터를 통해 추진하는 ‘MXD’ 방식은 그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팀장 : 네 그렇습니다. 저는 국내에선 건국대 부근의 스타시티와 강남의 코엑스를 MXD형 도시 개발의 성공 사례로 꼽습니다. 단 스타시티는 업무 기능이 부족하고 코엑스는 주거 기능이 빠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1000여 가구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주거 시설은 물론 상업 시설 및 업무 시설, 문화시설까지 갖춘 인천아트센터에 주목하게 됩니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면 비용이 좀 들더라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건축물로 창조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만 송도의 미래를 이끌 수 있는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리=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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