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홍 동양자산운용 부회장
구자홍 동양자산운용 부회장은 타이틀이 많다. ‘관료 출신 경영자’, ‘불패의 승부사’, ‘흑자 전환의 미다스의 손’, ‘죽은 조직도 살려내는 핫 블러드’ 등이 그것이다. 경제기획원 공무원으로 14년을 보낸 뒤 기업에 투신한 구 부회장은 24년 넘게 기업인으로 살며 수많은 기업을 회생시킨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동부그룹을 거쳐 1995년 동양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로 활약하면서부터 동양카드·동양생명·동양시스템즈·한일합섬 등 위기의 기업들을 맡아 살려냈다. 그 이면에는 먼저 행동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기회가 왔을 땐 과감하게 저질러야 한다는 구 부회장의 철학이 있었다. 최근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일단 저질러봐’를 출간하고 도전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저지름의 미학’을 역설 중인 구 부회장을 만났다.
성공한 관료 출신 경영자로 손꼽히며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기도 했는데, 관료 출신으로서의 장단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 동부그룹에 와 보니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이 공직에 있을 때보다 간단하고 편하더군요. 공익을 추구하는 공무원의 일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기업은 실적으로 바로바로 나타나니 재미도 있었지요. 문제는 자존심이었어요. 기업을 하다 보면 고개를 숙일 땐 숙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제가 동부그룹에 온 지 1년 만에 동부화재가 관리종목으로 상장폐지될 위기였는데, 그걸 살려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선후배 관료들을 만나 설득했겠습니까. 그렇게 기업이 살아나는 걸 보면서 ‘목에 힘주는 게 아니라 이게 바로 내 자존심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지요. 관료 출신이다 보니 정부 정책의 프로세스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건 기업하는 데 굉장한 경쟁력입니다. 동부화재를 살릴 때도 큰 힘이 됐지요. 시야가 넓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공직 시절의 다양한 경험 덕분에 비즈니스를 큰 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지요.
많은 기업을 회생시킨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요.
다 힘들었지만, 고생도 많았고 고민도 많았고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건 동양생명을 살린 5년의 시간입니다. 퇴출 직전의 동양생명을 맡아 2주 만에 지급준비율을 맞춰 퇴출을 막았고 수호천사 브랜드도 만들었지요. 고객에게 어떻게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제가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서 주민등록번호까지 공개한 것도 당시 9시 뉴스에 보도되는 등 파장이 컸고요.
세계적인 투자가 윌버 로스가 저와 1시간을 만나 이야기한 뒤 “나는 재무제표보다 사람을 본다”며 선뜻 500억 원을 투자해 태평양생명을 인수한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덕분에 동양생명은 제가 부임한 지 첫해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해 우량 생보사가 됐지요.
많은 사람들이 구 부회장을 성공한 기업가로 평가합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를 겁니다. 돈 많은 사람이 성공이라면 나는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요. 그러나 하고 싶은 일, 내가 맡은 일을 다 달성했다는 점에선 성공했다고 봅니다. 내가 맡은 기업에서는 패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성공의 기준은 가족과 가정입니다. 공무원을 그만둘 때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내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였는데, 아이들이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고 아내와 제가 지금 편하게 잘 살고 있고, 또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이 있으니 그런 면에서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직원들과 소통을 잘한 경영자로 유명한데요, 구 부회장이 생각하는 소통은 무엇입니까.
요즘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니 뭐니 소통의 창구들이 많아졌지만 결국은 직원들과의 ‘페이스 투 페이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답이 나옵니다. 저는 지금도 점심때 약속이 없으면 직원들과 돌아가면서 밥을 먹어요.
그렇게 직접 부딪침으로써 직원들이 사장의 경영 철학을 이해하게 되고 사장은 직원들의 고민을 알 수 있죠. 동양생명 시절 몇 차례 구조조정 후 의욕이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3개월 동안 전국 230개 지점을 돌며 직원들과 소주를 마셨어요. 1000명이 넘는 직원과 스킨십을 시도한 거죠.
구 부회장의 경영에선 ‘사람’이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은 곧 사람입니다. 기업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사람이지요. 사장이 회사를 살리는 건 어렵지만 망하게 하는 건 쉽습니다. 사장은 사람을 경영하는 사람이에요. 각 역할에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운영하는 게 임무지요.
동양생명 시절 업계 최초로 설계사 출신 여성 지점장 타이틀을 달았던 지점장을 역시 국내 보험업계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승진시켰던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모두가 감성 경영, 감동 경영을 말하는데, 감동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진심이 통할 때 가능하지요.
최근 에세이 ‘일단 저질러봐’를 펴냈는데 ‘일단 저질러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나는 무슨 일이든 저질러 봐야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달성하려면 올인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요. 혹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손해는 아니죠.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겁니다. 깨지고 손해 보면서 남는 것들이 다 자산이 되지요. 나는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맡아 불만인 직원들에게도 ‘너는 행운아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은 자기 재산이 되니까요. 젊은 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저질러야 할 순간들이 찾아오잖아요. 그때마다 나이를 핑계로 망설였던 이들에게도 내 경험을 통해 도전할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내 인생이야말로 저지름의 연속이었으니까요. 초등학교 5학년, 시골 ‘깡촌’에서 부모님을 2년간 졸라 전주로 ‘유학’한 이후부터 행정고시에 3번 떨어지고 합격한 일, 공직을 떠나 기업으로 옮긴 일, 위기의 기업들을 맡아 고비를 넘기며 회생시킨 일 등등 수많은 저지름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지요.
책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텐데요, 소감이 어땠습니까.
책 속에는 내 인생의 일부가 들어 있지만 참 치열하게 열심히, 하고자 했던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누군가는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공부도 잘하고 좋은 스펙에 사장도 했으니 사람들에게 실패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 아니냐고.
그건 저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지요. 제게도 수많은 고비와 인고의 세월과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기업을 맡았을 때는 자다가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으니까요. 처음부터 성공하는 사람은 없지요. 실패의 연속을 참고 견뎌내야 성공이란 결과에 이르는 겁니다. 어려움이 많으면 보상이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용기 내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약력:1949년 전북 진안 출생. 서울대 상대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재학 중 13회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 공무원으로 14년을 보낸 후 1987년 동부그룹으로 옮겨 기업에 투신했다. 1995년 동양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동양카드·동양생명·동양시스템즈·한일합섬 대표이사 등을 거쳐 현재 동양자산운용 부회장을 맡고 있다.
대담 김상헌 편집장 정리=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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