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시어지 서비스의 은밀한 세계
프랑스어에 어원을 둔 컨시어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집사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컨시어지 서비스의 원조인 호텔 업계를 비롯해 컨시어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백화점과 금융업계 등은 VIP를 위한 프리미엄 서비스로 컨시어지를 내세워 고객의 사소한 요청 사항까지 수행하는 ‘만능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에는 업종과 관련된 제한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최근의 컨시어지 서비스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 특징이다. 컨시어지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생기면서 상류층을 고객으로 한 컨시어지 서비스 전문 업체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사례2. 해외에서 온 바이어를 초대해 식사를 계획 중이었던 B 씨는 바이어가 종교적인 이유로 코셔 음식(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는 정결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서울에 있는 레스토랑을 알아봤지만 가능한 레스토랑을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B 씨는 자신이 VVIP 멤버로 있는 증권사에 도움을 요청했고 증권사의 담당 서비스 직원이 평소 친분이 좋은 레스토랑의 셰프와 직접 얘기해 B 씨의 바이어에게 코셔 음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사례3. G호텔의 단골손님인 80대 일본인 할머니는 한 한국 가수의 팬으로, 죽기 전에 그 가수의 공연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일본에는 물론 한국에서도 공연 계획이 없었다. 호텔 측은 할머니를 위해 소속사 매니저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고, 그 가수는 도쿄의 한 영화 시사회에서 잠깐 공연할 계획이라며 할머니를 초대했다. 호텔 측은 할머니와 가수의 대화를 위해 통역사까지 섭외하는 등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럭셔리 서비스의 대표적인 형태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고객의 요청 사항을 수행해 주는 컨시어지 서비스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VIP급 이상의 회원을 따로 ‘관리’하며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는 호텔·백화점·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컨시어지 서비스가 일반화되는 추세다. 서비스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 위 사례들처럼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대신 수행해 주는 것도 있지만 항공권 예약에서부터 여행 스케줄 전반을 짜준다거나 레스토랑·공연 등을 대신 예약해 주는 일, 심지어 가정부를 구하는 일 등 고객의 사소한 요청까지 대신해 주기도 한다.
컨시어지의 유래가 호텔에서 비롯된 데서 알 수 있듯 컨시어지 서비스의 원조는 호텔 업계다. 현대 호텔 산업에서의 컨시어지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총괄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서비스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체크인부터 시설 안내, 고객의 불편 사항 해소, 여행지 추천 등 전반적인 정보 제공 서비스를 하며 기본적으로 호텔을 찾는 모든 고객이 대상이지만 VIP 고객에게는 ‘개인 맞춤형’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귀빈 전담 서비스팀 탑스(TOPS:Team of Perfect Service)를 운영하고 있는 웨스틴조선호텔 측은 “각 부서의 직원들 중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외국어에 능숙한 최고의 직원을 선발해 특별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이들은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성악가 조수미 씨 등 VIP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역시 귀빈 고객을 위해 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만들어 내는 푸드 컨시어지 서비스부터 특별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시큐리티(security) 컨시어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의 국빈 및 국내 가장 많은 VIP들이 이용하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플로어 매니저가 24시간 대기하며 ‘전담 집사’ 역할을 하는 ‘24시간 버틀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컨시어지 서비스를 적극 제공하고 있는 또 다른 업계는 금융업이다. 초고가의 연회비를 받는 프리미엄 카드의 경우 회원들을 대상으로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은행과 증권사에서도 초우량 고객들을 위한 차별화된 컨시어지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2005년 블랙카드를 론칭한 현대카드는 2009년 5월부터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까지 약 8000건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전체 약 2000명의 블랙카드 고객 중 40% 정도가 컨시어지 서비스를 이용한 셈이다. 현대카드 측은 “오피스 업무를 제외한 여행·여가생활·교육 등의 모든 것을 대행하는 서비스로 급하게 외국 출장을 가야 할 때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 일이라든지, 모르는 지역에 가서 현지 숙박이나 레스토랑 정보를 알고 싶을 때 개인 비서 서비스가 주로 이용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VVIP 회원은 단순한 호텔, 레스토랑 예약을 넘어서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 유럽 여행 중이던 회원이 프라하에서 구입을 망설이고 지나쳤던 그림을 한국에 돌아와 구매 대행을 요청한 적도 있으며 자녀의 호주 유학을 위해 현지에 집을 알아봐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구매 대행 서비스는 컨시어지 담당자들이 많이 받는 요청이며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 추천, 거주지 마련 역시 단골 요청 사항”이라고 밝혔다.
연회비 200만 원으로 삼성의 최고경영자(CEO) 및 국내 최상위 고객들만이 초청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 삼성 라움카드 역시 여행·쇼핑·교육·문화·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자유롭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카드 측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한 글로벌 컨시어지 업체와 제휴, 차별화된 해외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실제로 미술을 공부하는 자녀를 위해 뉴욕의 유명 미술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 및 개인 교습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예매하기 힘든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나 음악 공연의 티켓 구매를 지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역시 VIP라운지를 이용하는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한 자산 관리 서비스 ‘스타 테이블’을 최근 선보였다. 포트폴리오 관리 서비스, 맞춤형 자문 서비스, 라이프케어 서비스 등이 그것이다. 특히 라이프케어 서비스에는 개인 맞춤형 비서 서비스인 스타아우름이 포함돼 있다.
지난 4월 10억 원 이상을 예치한 회원을 대상으로 한 VVIP 멤버십 서비스인 프리미어 블루 멤버스를 론칭한 우리투자증권도 증권업계 최초로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했다. 다양한 금융 혜택에서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비스를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이를 위해 호텔 출신의 전문 컨시어지를 영입했으며 최우수 고객의 개인 비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갤러리아·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업계도 일찍부터 VIP 고객을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명절 및 생일 선물은 기본, 극소수의 VIP 회원들만을 위한 패션쇼, 문화 강좌 등을 따로 진행하기도 하고 아예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프라이빗한 쇼핑을 즐기도록 하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퍼스널 쇼퍼 룸’이 대표적이다.
갤러리아 명품관은 2004년 3월부터 4층에 VVIP 전용 쇼핑 및 휴게 공간인 ‘퍼스널 쇼퍼 룸’을 운영하고 있다. 퍼스널 쇼퍼 룸은 쇼핑 상담실과 상품 전시 공간, 파우더룸을 갖춘 165㎡(50평) 규모의 VVIP 전용 쇼핑 공간으로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이용 고객은 발레파킹을 실시하는 주차장 입구에서 연결되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돼 있으며 사전 예약한 고객은 퍼스널 쇼퍼(쇼핑 도우미)가 고객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게 준비한 제품을 쇼핑할 수 있다.
준비된 제품 외에 다른 제품의 쇼핑을 원하면 퍼스널 쇼퍼가 직접 매장에서 상품을 가져와 상담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쇼핑 이외의 서비스로도 확대되고 있다. 갤러리아 측은 “퍼스널 쇼퍼 서비스 외에 VVIP 고객을 위한 버틀러 서비스와 선물 준비를 대행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현대백화점도 글로벌 컨시어지 서비스 업체와 제휴하고 블랙 자스민 회원(연 1억 원 이상 구매)을 대상으로 맞춤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항공사도 이용 편의에 관련된 ‘제한된’ 컨시어지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퍼스트 클래스 고객, 플래티늄 회원, 그 외 VIP를 대상으로 신속한 체크인과 출국장 입구 안내 서비스, 보안 및 입국심사대 서비스, 수하물 우선 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다.
컨시어지 서비스를 내세운 디지털 전문 매장 ‘컨시어지’도 생겼다. 애플 공인 프리미엄 전문 매장인 ‘애플 컨시어지’와 디지털 디바이스 전문점인 ‘컨시어지 모바일’이 그것. 모든 구매 고객에게 기기 설정 셋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컨시어지 클럽에 가입한 고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가 하면 무료 컨시어지 아카데미를 통해 구입한 디지털 제품에 대한 심화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컨시어지’ 매장을 직영하고 있는 엘씨엔씨 측은 “대부분의 디바이스 매장은 남성 고객이 많지만 컨시어지 매장은 어려운 디바이스를 쉽게 설명해 주고 주변 기기, 액세서리들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어 특이하게 남녀 비율이 반반”이라고 밝혔다.
각 분야에서 컨시어지 서비스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 컨시어지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60개의 오피스를 둔 글로벌 컨시어지 그룹인 퀸터센셜리는 2007년 한국에 진출해 국내에 컨시어지 서비스 시장을 개척했다. 이후 몇몇 특화된 분야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부터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시어지 업체까지 생겨나 현재 8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퀸터센셜리 코리아 관계자는 “VIP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시장 자체는 규모가 작지만 2007년 첫 론칭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많이 성장했다”며 “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져 올해는 작년 대비 60~70% 성장했다”고 말했다.

생활 밀착형부터 기상천외한 요청까지 ‘서비스’
2000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글로벌 컨시어지 서비스 기업 퀸터센셜리는 그 출발부터가 영국 상류층에서 시작됐다. 퀸터센셜리의 공동 창립자인 벤 엘리엇은 영국 찰스 왕세자의 부인 카밀라 파커불스의 조카로, 마돈나를 위해 느릅나무 티백을 항공기로 공수하고 제니퍼 로페즈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쓸 공작새 12마리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회원은 얼마나 되나.
개인 회원 중에는 해외를 자주 오가는 비즈니스맨들이 많으며 대기업 회장 중에도 회원이 있다. 연령대별로는 40대 전후가 가장 많고 20대 회원도 있다. 7 대 3 정도의 비율로 남성이 많은 편인데, 가입은 남성이 해도 실제 이용은 가족인 여성들이 이용할 때가 많다. 남성들은 주로 출장 관련 요청이 많고 여성들은 쇼핑이나 이벤트 아이템 등에 관심이 많다.
회원 등급은 어떻게 나뉘나.
4개 등급으로 나뉘며 최고 등급인 엘리트 멤버는 가입비 100만 원과 연회비 5000만 원이다. 각 요청 사항을 수행할 때 발생하는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엘리트 멤버십 회원은 전 세계 모든 퀸터센셜리 오피스로부터 담당 MA(Manager Assistant)가 지정된다. 국내 회원들이 가장 많이 가입하는 등급은 2단계인 듀얼 데디케이티드로 가입비 50만 원과 연회비 980만 원이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다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객 성향이 꼼꼼히 기록된 가입 신청서를 본사에 넘긴 후 승인을 받는데 그 기준은 절대적으로 돈이 아니다. 한번 이용한 고객은 대부분 이후에도 계속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고객에 대한 정보가 쌓여 최적의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국내 컨시어지 시장을 어떻게 보나.
시장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은 규모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삼성 라움카드, 현대백화점 블랙 자스민, 신라호텔 등과 제휴하고 있지만, 올해만 해도 70여 개의 기업에서 서비스 제휴에 대한 미팅 요청이 있었다. VIP 중심으로 컨시어지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컨시어지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다. 외국인 고객은 서비스 차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말 그대로 ‘서비스’로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외에서는 컨시어지 시장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과 아랍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서비스가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모든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안 되는 건 왜 안 되는지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해외 고객과 국내 고객 요청 내용이 좀 다른데, 해외 고객은 기상천외한 요청을 많이 한다. 아랍의 한 부호는 파리 패션쇼를 자기 집 앞마당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실제 해줬고 프라이빗한 낚시 체험을 원하는 고객을 위해 섬 하나를 통째로 빌린 적도 있다. 또 어떤 고객은 집 앞 수영장에서 돌고래를 기르고 싶다고 해 구해준 적도 있다. 국내 고객은 생활적인 서비스가 강하다. 골프 라운딩 후 바이어를 접대할 만한 레스토랑을 구해 달라거나 TV에 누군가 입고 나온 옷을 구해 달라거나 강남에서 유명한 학원 강사를 알아봐 달라는 학부모 고객의 요청도 있었다.
취재=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웨스틴조선호텔·신라호텔·국민은행·아시아나항공·컨시어지·퀸터센셜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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