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현지 취재-미국

“한국 자동차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 인근 지역인 가든 그로브에서 8년째 중고차 딜러상을 운영하고 있는 존 박 사장은 “최근 2~3년 새 한국 자동차인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고차 가격은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는 것이 자동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능은 물론 오래 타도 잔고장이 나지 않는 내구성에 대한 신뢰도가 강한 브랜드들의 중고차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차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현대·기아차의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지 않았다. 교민 사회에서는 “한국과 미국 중고차는 절대 사지 말라”는 불문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미국 중고차의 시세를 알아볼 수 있는 한 사이트(www.usedscar.com)에서는 2011년산 쏘나타(배기량 2400cc, 주행거리 약 1만 마일 전후) 가격이 2만2000달러에서 2만5000달러 사이였다. 같은 조건으로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역시 2만2000달러에서 2만7000달러 사이를 오갔다.

중고차 시장에서의 위상 변화는 신차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아우라일 뿐이다. 현대차는 지난 9월 미국에서 5만2051대를 팔아 작년 9월 대비 12% 늘어난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쏘나타는 1만8181대를 팔았고 신형 엘란트라는 1만4386대, 싼타페는 6213대가 판매됐다. 기아차도 9월 한 달 동안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8.4% 증가한 3만5609대를 판매했다. 주력인 뉴쏘렌토가 1만1112대, 옵티마(한국명 K5)는 6191대 팔렸다.
[현대·기아차] 쏘나타·옵티마·쏘울 “없어서 못 팔아요”
중고차 가격 도요타·혼다 추월

시장점유율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현대차는 2009년 4.2%에서 2010년 4.6%로 소폭 상승한데 이어 올 9월까지 5.2%로 치고 올랐다. 기아차 역시 2009년 2.9%에서 2010년 3.1%로 오른데 이어 올 9월까지 3.9%로 4%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 브랜드를 합하면 9.1%로 내년이면 10%대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자동차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최대 자동차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는 비결은 뭘까.

캘리포니아 주 인더스트리 시티에서 현대차 딜러점을 운영하고 있는 샘 임 사장은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품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임 사장은 “소비자들은 품질은 연비 등이 도요타나 혼다와 버금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차별화된 마케팅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이다. 셋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중소형차 위주 전략이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품질 경쟁력은 이미 세계 유수 평가 기관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2009년 오토퍼시픽이 발표한 자동차 만족도 조사에서 현대차는 ‘2009년 최고로 급부상한 메이커’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와 함께 제네시스·쏘나타가 동급 최우수 차량으로 뽑혔다. 그해 6월에는 제네시스가 JD파워가 선정한 2009년 신차 품질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대·기아차] 쏘나타·옵티마·쏘울 “없어서 못 팔아요”
공격적인 판촉 프로그램도 한몫했다. ‘현대 어슈어런스(차값 환불 제도)’가 대표적이다. 미국 경기가 위축되면서 실직의 두려움으로 새 차 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차 구입 후 1년 이내에 실직으로 할부금을 내지 못하거나 차량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 반납하는 제도다.

기아차도 현대차 못지않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인 체리토스에 있는 기아차 딜러점 ‘체리토스 기아’의 허비 웨스튼 매니저는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미국차나 일본차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기아차로 옮겨오고 있다”며 “멋있고, 고급스러워 보이고, 경제적인 가격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월평균 198대를 팔고 있다”는 웨스튼 매니저는 일본차와 비교해 기아차의 강점이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안전성, 보증 프로그램, 낮은 이자의 파이낸싱 프로그램, 차별화된 마케팅 등에서 일본차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답했다.
[현대·기아차] 쏘나타·옵티마·쏘울 “없어서 못 팔아요”
기아차의 마케팅 중 쏘울의 햄스터 광고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광고는 지난 4월 미국 닐슨사가 선정한 자동차 부문 광고상, 6월 미국 에피상도 수상했다. 기아차 미국 판매 법인의 하워드 임 매니저는 “햄스터 광고는 기아차 브랜드를 새로운 고객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차를 확실히 제친 것은 아니다. 도요타는 리콜 사태와 대지진 여파 등으로 지난 몇 년간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최근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생산량도 늘어나고 있고 신차 발표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 미국 판매 법인의 마이클 스프라고 부사장은 “도요타와 혼다가 미국에 진출한 역사는 50년이지만 우리는 20년도 되지 않는다”며 “스포츠 마케팅과 온라인 마케팅 등 다양한 마케팅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차 미국 판매 법인의 데이비드 주코프스키 부사장 역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슈퍼볼 대회 등에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시승회를 확대해 소비자 경험을 늘려가겠다”고 덧붙였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싸구려 차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품질과 연비, 각종 보증 프로그램 등 마케팅 차원에서 경쟁 브랜드를 따돌리는데 성공했다는 현지 평가가 줄을 이었다. 10월 초 현재 쏘나타의 신차 평균 판매 가격은 2만3761달러다.

평균 판매 가격이 2만4200달러인 도요타 캠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 쏘나타 라인업이 배기량 2000~2400cc인데 비해 캠리가 2500~3500cc인 점을 감안하면 쏘나타의 가격이 더 비싼 셈이다. 기자가 미국 현지에서 방문한 현대·기아차 딜러들은 어려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하는 답도 현대·기아차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없어서 못 팔아요. 차량 공급을 늘려주세요.”
[현대·기아차] 쏘나타·옵티마·쏘울 “없어서 못 팔아요”
캘리포니아 주 코스타 메사·어바인·인더스트리 시티=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