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곧 혁신이다 (11)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혁신과 개선은 근본을 다스리는 데서 출발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2301.1.jpg)
그가 하는 일이라곤 기존 제품에 대해 3년 동안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혁신안이다. 그래서 미국 기업은 3~4년에 한 번씩 환골탈태한다. 당연히 그는 회사의 보배다. 한 사람의 천재가 변화를 끌고 가는 것이다. 회사는 그를 존중해 많은 급여와 좋은 처우를 제공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현장에서부터 ‘제안’과 ‘개선’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아주 작은 제안들이 모여서 끊임없는 개선이 이뤄지는 식이다. 가령 미국산 완제품이 나오면 마쓰시타는 이를 조금씩 개선해 1년 후 미국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일본 제품이 훨씬 좋아졌을 때쯤 미국은 다시 단번에 혁신적 제품을 내놓게 된다.
기술을 도입하고 배워야 하는 우리나라로선 3~4년에 한 번씩 미국 제품의 신제품만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일본 것은 분기별로 꾸준히 사 봐야 했다. 그 덕분에 한국은 일본의 끊임없는 현장 경영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기술 도입에 관해선 미국보다 일본의 도움이 더 컸던 셈이다. 물론 미국에도 많은 인재들이 나가 미국식 혁신 방법을 배웠다. 한국이 오늘날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선 데는 이 두 가지 혁신론을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적인 톱다운(미국)의 연구·개발(R&D) 혁신과 현장에서의 바텀업(일본)이 한데 어우러지는 한국형 혁신 문화를 잘 체계화한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첫 순수 국산 압축기 개발
냉장고 압축기 개발에 성공하고 생산량이 급격히 늘자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업체에 로열티가 상당히 많이 지출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로열티가 없는 자체 기술’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당시 미국 냉장고는 덩치가 커서 5분의 1마력이 제일 작은 용량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주력 수출 냉장고는 50~60리터의 초소형 제품이었다. 호텔 방에 있는 냉장고 수준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압축기는 10분의 1마력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제품은 본사인 미국엔 모델조차 없었고 일본산만 있었다. 우리도 일본 부품을 들여와 조립해 파는 형편이었다.
1978년 마침 카이스트 1회 졸업생들이 입사했다. 그중 한 친구를 압축기 부품 개발에 필요하다며 데리고 왔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할 줄 아는 친구였다. “압축기를 새로 디자인하라면 못하겠지만 기존 제품의 스펙이 왜 이런지는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제품을 학교에 들고 왔다 갔다 하며 며칠을 보내더니 파이프 굵기, 볼트는 어느 정도 힘으로 조였는지 등을 해석해 내는데 성공했다.
최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제품의 10분의 1로 크기를 줄여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본래 개념을 해석한 데이터, 기존의 연구자(엔지니어), 일본의 10분의 1 모델 등을 모두 종합해 독자 모델을 시행착오 없이 바로 생산해낸 것이다.
로열티 없는 압축기 생산의 시작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사람과 첨단 기술로 분석하는 사람이 힘을 합치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ISO-9000’의 원리는 ‘노 스펙, 노 워크’다. 스펙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는 뜻이다. 스펙을 먼저 만들고 이에 따라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해당 스펙만 바꾸면 된다.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 현장에서 바로 고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미국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반 모터와 압축기 모터 생산 부서가 따로 있었다. 첫 생산에 앞서 엄청 고생한 건 압축기 파트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시행착오 없이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문제는 모터 생산 쪽이었다. 끊임없이 불량이 쏟아졌다. 제일 문제가 큰 건 선풍기 모터였다.
선풍기 모터의 겉면은 알루미늄 케이스가 싸고 있다. 외부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면 알루미늄 덩어리 안에서 모터가 돌아가는 걸 볼 수 있다. 선풍기 모터 본부장이 압축기 공장에 와 살다시피 하면서 벤치마킹해도 불량은 여전히 줄지 않았고 생산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한 번 모터 공장에 가보겠다, 맡겨 달라”고 했다. 모터 부장은 내게 따로 선풍기 라인만 떼어줬다. 조회도 따로 했고 배지도 하나씩 새로 달았다. 제일 먼저 설계 도면을 점검하며 도면대로 부품이 갖춰져 있는지 확인했다.
알루미늄은 금형의 미세한 압력, 온도에 따라 치수가 왔다 갔다 하는 재료다. 충격을 받으면 변형되기도 쉽다. 기본 부품서에서부터 공정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스펙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검증했다. 해당 작업자들도 그렇게 교육시키며 개선에 나섰다.
‘재공’ 시스템을 뜯어고치다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혁신과 개선은 근본을 다스리는 데서 출발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2302.1.jpg)
알루미늄 다이캐스팅(강철 거푸집에 녹인 알루미늄을 붓는 정밀 주조 방법)부터 연구했다. 부품 하나하나의 치수를 관리해 잘못된 부분을 잡아냈다. 모든 작업을 시작부터 원칙대로 움직이게 했다. 어떤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관련자들을 다 빼내 새로 교육했다. 기본부터 완벽한 체질로 바꾼 것이다. 내 사회생활 최초로 한 조직을 통째 맡아 개선 작업에 나선 경험이었다.
당시 ‘도요타 생산 방식’이라는 책이 막 나왔다. 책을 읽어보니 도요타 생산의 핵심은 ‘재공(공정 중에 가지고 있는 작업자가 가지고 있는 부품 수)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정이 20개면 라인마다 1명씩 담당자가 있어 라인 전체 인원도 20명이었다.
도요타는 재공이 1명에 1개씩이었다. 자동차는 불량이 하나 쏟아지면 며칠 치를 확인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도요타가 도입한 것이 1인 1재공 시스템이었다. 따라서 재공 비용이 적게 들었고 불량이 나오면 순식간에 개선할 수 있었다. 작업자로선 여유로운 작업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모터 공장에 가 보니 30초가 걸리는 납땜을 재공을 쌓아 놓은 채 10초에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30초란 시간에는 예열과 안정화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재공을 쌓아 놓으니 10초에 하나씩 처리한 것이다.
목표량 서른 개를 다 쌓으면 남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거나 놀다가 올 수 있었다. 언뜻 보면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높은 사람이 없으면 스윽 나가서 쉬다 왔다.
직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도요타에서 30초마다 한 개씩 하는데 우리도 해보자”고 얘기했다. 그러자 “생산량이 모자란다, 기계 문제가 생겼을 때 여유가 없어진다”는 등 반발이 심했다. 이들을 잘 설득해 재공을 다 끌어내고 30초 단위로 하나씩 부품을 줬다. 자연히 룰대로 조립이 이뤄졌다.
1시간쯤 지나니 “이렇게 느려터지게 하면 오늘 생산량의 반도 못 한다”는 푸념이 들려왔다. 그런데 작업 마감 시간인 8시가 되고 계산해 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전날보다 오히려 생산량이 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100km 속도로 막힘없이 가는 것과 시내에서 100km로 가다가 신호로 가다 섰다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30초에 할 작업을 10초로 줄이며 불량이 많아졌고, 제대로 했는지 검수할 시간도 없어졌다.
작업대를 비우다 보니 문제도 생겼고 뒤에서 잘못됐다고 피드백을 보내면 그제야 수선에 부산을 떨었다. 결국 직원들은 30초에 한 번씩 작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도요타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방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백견이 불여일행’, ‘백행이 불여일득’으로 발전하는 것이 개선의 기본이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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