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동네인 압구정과도 차원이 다르고 ‘청담동 식’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을 의미하는 이른바 ‘럭셔리 종결 동네’ 청담동. 재벌가 일가족과 스타들의 거주지, 대한민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들의 근거지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청담동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청담동(淸潭洞). 서울 강남구의 북동쪽 한강 연안에 위치하는 마을로 서쪽으로는 압구정동, 남쪽으로는 삼성동과 접하고 있는 동네. 면적 2.49㎢로 강남구 전체 면적의 6.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수 약 3만1451명, 가구 수 1만2677가구가 거주하고 월평균 소득 527만 원(2009년 기준)인 동네.
현재 청담동 105 일대에 옛날 맑은 못이 있었고, 또 현재 134 일대 한강변의 물이 맑아 이 부락을 청숫골이라고 한 데서 청담동이라는 명칭이 유래한 동네. 조선시대 말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청담동이었으나 1963년 들어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뒤 1975년 10월에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에 편입된 동네. 이상은 청담동에 대한 ‘백과사전적’ 설명이다.
그러나 청담동은 이러한 표면적 의미만으로는 너무나 설명이 부족한 곳이다. 단순히 ‘부자 동네’를 뛰어넘는, ‘스타일·문화 중심지’라는 타이틀만으로는 협소한 그곳이 청담동이다.
수입 외제차보다 국산차를 찾는 게 더 어렵고, 대중교통으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배타성’을 지녔으며, 그들끼리만 알아보는 명품 중의 명품이 소비되는 곳. 4만~5만 원짜리 브런치를 ‘가볍게’ 즐기고, ‘가장 트렌디하고 첨단의 것들은 청담동에서 나고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트렌드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곳.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을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주칠 수 있으며, ‘청담동 식’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을 의미하는 이른바 ‘럭셔리 종결 동네’가 청담동의 모습이다. 부자 동네, 트렌드 세터들의 근거지
최근 30대 재벌 그룹 총수 일가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를 조사한 결과 청담동이 도곡동과 함께 새 둥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청담동에 대한 관심이 또 한 번 집중됐다.
거주 목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재벌가의 청담동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삼성·신세계·롯데·대상그룹 등 몇몇 대기업이 최근 몇 년 사이 청담동 빌딩을 적극 매입하고 있는 것. 투자 목적도 있겠지만 패션·외식 등 사업을 위한 용도로 알려졌다.
청담동이 ‘부자 동네’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오래됐다. ‘강남불패’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동산 시장이 폭락했을 때도 청담동은 달랐다. 들어가고 싶어도 물건이 없어 못 들어가는 동네가 바로 청담동이었던 것.
사생활 보장이 가능한데다 학군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는 프리미엄에 ‘문화 특구’ 이미지까지 더해진 덕분이었다. 사생활 보호에 목숨을 거는 연예인들이 청담동에 대거 입성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청담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남 거주 부유층의 자녀가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다. 외국 문화를 접하고 돌아온 그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시작한 곳이 바로 청담동인 것.
부르주아적인 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적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상류층을 뜻하는 ‘보보스족’이 서울에 또 하나의 향수 어린 외국을 재현해낸 것이었다. 고급스러움을 넘어 일상 속에서 럭셔리를 지향하는 ‘청담동 스타일’은 그렇게 탄생했다.
트렌드 세터들의 근거지인 청담동은 패션과 스타일 특구 성격도 띠고 있다. 특히 심리적 청담동인 갤러리아 백화점(법정 행정구역은 압구정동이다)에서 청담사거리에 이르는 고갯길에는 루이비통·프라다·샤넬·베르사체 등 전 세계 명품 브랜드 수십여 개가 밀집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벤츠·페라리·BMW·롤스로이스·아우디 등 고급 수입 자동차 숍이 즐비하다.
여기에 ‘연예인 숍’으로 불리는 헤어&뷰티 숍이 청담동에 대거 포진해 있고 3000여 개에 달하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 스타일에 죽고 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청담동에만 330여 개가 넘는 웨딩스튜디오가 있을 정도로 웨딩 산업의 메카로도 자리 잡았다.
이러한 화려함은 물질이 아닌 문화를 소비하는 스타일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몇 년 사이 청담동이 미술 문화의 중심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네이처포엠 같은 갤러리 전문 빌딩에서부터 소형 갤러리까지, 청담동은 미술 소비자와 컬렉터 중심의 미술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한때는 청담동 빌딩주 사모님들 사이에 갤러리 오픈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을 정도다.
원조 ‘청담족’들은 청담동이 시즌2를 맞았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들만의 ‘콧대 높은’ 청담동이 시즌1이었다면 보다 대중적인 공간으로 거듭난 지금의 청담동은 시즌2라는 얘기다.
소비의 산실이라는 비판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풍요롭고 다양한 문화를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다만 대중들의 발길로 북적거리는 청담동이 아닌, 시즌1의 청담동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제2, 제3의 청담동을 찾아 나선다고 하니 어쩐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취재=박진영·우종국·이진원 기자, 김성주 객원기자
전문가 기고=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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