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갈라파고스 증후군’

한때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으며 맹위를 떨쳤던 거대 기업들이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이 육지와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 본래 종과 다르게 진화한 생물들을 발견한 데서 나온 말이다.

뉴욕타임스가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표준을 고집하며 자국에서만 팔리는 제품만을 내놓아 세계시장에서 고립된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했다. 최근에는 세계시장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함으로써 곤경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이 심각한 기업은 스마트폰 업계 1위인 노키아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노키아는 올해 3분기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34.4%로 2위 애플(18.3%), 3위 RIM(16.1%)을 제치고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 점유율 37.8%보다 3.4%포인트가량 줄어든 수치다.

스마트폰 시장은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장착한 ‘안드로이드폰’이 양분해 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노키아는 자신들만의 표준을 고집하며 세계시장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모습이다.

노키아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 ‘심비안(Symbian)’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비안은 이전부터 사용자 경험이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핀란드 기업인 노키아는 회사 창설 이후 처음으로 비(非)핀란드인인 스티븐 엘롭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하고 1800명의 직원을 감축하는 등 개혁에 나섰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바꾸라는 권고는 여전히 묵살했다. 게다가 내년에는 새로운 운영체제 ‘미고(Meego)’를 내놓기로 했다.

세계 최대의 IT 기업인 MS도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혁신 기업들의 등장으로 위상이 추락한 MS는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잇따라 나온 신제품들은 여전히 시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 현실 안주가 ‘주요인’
MS는 최근에 ‘오피스 365’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새로운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다.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 MS는 25인 이하 기업일 때 월 6달러, 25인 이상 기업일 때 월 2∼27달러에 다양한 IT 자원을 서비스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쟁자인 구글이 이미 무료로 이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MS는 또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윈도폰 7’이라는 운영체제를 내놓았다. 아이폰이 출시된 지 4년, 안드로이드폰이 등장한 지 2년 만에 뒤늦게 뛰어든 MS ‘윈도폰’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많다. 스마트폰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앱스토어만 봐도 아이폰은 30만 개, 안드로이드폰은 10만 개에 달하지만 윈도폰은 1000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튠즈에 디지털 음악 시장을 내준 일본의 소니도 여전히 갈라파고스 증후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니는 얼마 전까지 고화질의 ‘블루레이(Blue-ray) DVD’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DVD는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할지 모른다. 우편에 의한 DVD 렌털 서비스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돌풍을 일으킨 ‘넷플릭스’는 앞으로 우편 DVD 서비스를 중단하고 온라인 서비스만 하기로 했다. 게다가 최근에 ‘맥북스(Macbooks)’라는 PC를 출시한 애플은 디스크 드라이브 공간을 없애버렸다.

소니는 또 구글과 함께 ‘소니-구글 TV’를 선보였다. TV를 보면서 컴퓨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그러나 이 인터넷 TV는 고객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데다 ABC·NBC·CBS 등 네트워크 방송사들마저 프로그램 제공을 외면하면서 암초에 부딪쳤다. 여기에 주력으로 밀고 있는 3D TV와의 혼선으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정상에 올랐던 기업들은 자신도 모르게 안주하는 경향이 짙다. 시장이 변하고 있지만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뒤늦게 변화를 깨닫고 추격에 나서지만 이때는 ‘킬러 이노베이션(Killer innovation)’이 없어 뒷북만 치고 만다. 당신의 기업은 갈라파고스섬에 머무르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묻고 고민해야 한다.

뉴욕(미국)=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