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구루(Guru)가 말하는 벤처의 미래

조현정·이민화·이찬진…. 한국 벤처기업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한때 잊힐 뻔했던 이름들이지만, 최근 이들 벤처 선배들이 트위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한국의 정보기술(IT)이 다시 애플·트위터·페이스북이라는 강자를 만나 고전하면서, 그동안 잊힌 언어였던 ‘벤처 정신’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벤처 1세대의 도전 정신과 노하우를 다시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활동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들을 차례로 만났다.
먼저 국내 벤처 역사를 잠깐 돌이켜 보자. 1983년 국내 벤처 1호인 비트컴퓨터를 설립한 조현정 회장, 1985년 메디슨을 창업한 뒤 벤처협회 설립과 코스닥 설립을 주도한 이민화 기업호민관, 1989년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해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유일하게 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석권하지 못하게 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이 밖에 다우기술(1986년)의 김익래, 퓨처시스템(1987년)의 김광태, 터보테크(1987년)의 장흥순, 휴맥스(1989년)의 변대규, 두인전자(1990년)의 김광수, 팬택(1991년)의 박병엽, 핸디소프트(1991년)의 안영경, 나눔기술(1991년)의 장영승, 새롬기술(1993년)의 오상수, 아이네트(1994년)의 허진호라는 이름들이 있다.

이들 중에서 이민화 호민관, 이찬진 대표, 조현정 회장은 활발한 트위터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만남의 장을 넓히고 있다.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이들은 일반인들의 질문과 불만에도 답글을 달아주는 등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현정 회장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조기 졸업할 수 있도록 한 1등 공신이 바로 벤처다. 당시 한국에는 젊은 사업가들의 창업이 있었다. IMF 직전인 1997년 7월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벤처가 봇물을 이뤘고, 뒤이어 세계적인 IT 붐과 밀레니엄 특수가 이어졌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태국이나 남미 국가는 구조조정을 통해 빚만 갚았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 전통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IT 중심의 지식정보사회로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꿨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벤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민화 호민관은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의 성장 전략은 자본·노동·토지 중심의 요소 주도 경제였다. 이때 ‘무엇을’이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미국·일본만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무엇을’ ‘왜’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창조적 역량을 가진 것이 벤처”라고 얘기했다.

한편 최근 가장 활발히 트위팅을 하고 있는 이찬진 대표는 한국의 벤처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나는 이민화 회장님(벤처협회 명예회장을 뜻함)이나 조현정 회장님처럼 벤처 ‘구루(Guru:권위자·스승)’라고 하기엔 나이나 경험이 많지 않다”며 소극적이었지만, 사업 영역인 트윗케이알(twtkr.com)을 설명할 때만은 열정적으로 변했다. 이를 두고 이민화 호민관은 “이찬진 대표와 얘기해 보면 천재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

이민화 호민관은 최근 ‘스마트 코리아로 가는 길: 유라시안 네트워크’를 펴냈다. 이 책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이끌었던 한국의 벤처를 바탕으로 2010년대 이후의 발전 전략을 유라시안(몽골리안) 네트워크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현정 회장은 “2년 전 이 회장이 잠시 쉬고 있을 때 혼자 여기저기 연구하고 다니더니 어느 날 자료를 만들어 왔는데,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민화의 한계는 어디인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책에서는 17세기 세계를 호령했던 팍스 몽골리아에 대해 세계사 논문을 보듯 심도 있는 지식이 담겨 있다. 이 호민관을 광화문 이마빌딩의 기업호민관실에서 만났다.

- 트위터는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2009년 11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딱 1년째입니다. 기업호민관을 하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구할까 궁리하곤 했는데, IT 분야 자문관이던 피플웨어 유한석 대표가 ‘소셜 미디어를 꼭 하라’고 권유해 시작했습니다.

- 트위터를 통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십니까.

호민관으로서는 중소기업 규제 문제, 카이스트 교수로선 영재 육성, 유라시안 네트워크 이사장으로서는 유라시안 네트워크, 벤처협회 명예회장으로서는 벤처 진흥이겠지요.

- 유라시안 네트워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IT는 이제 ‘IT 융합’으로 가고 있습니다. 원격 의료, 통방 융합 등이 그것인데,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기술은 세계 톱5 안에 드는데, 제도의 결함으로 10위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은 아무런 반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융합하려면 찬반이 명백히 갈립니다. 슈퍼슈퍼마켓(SSM)도 제도의 문제 아닙니까. 결국 한국은 제도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얘깁니다.

이에 대한 답은 개방입니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갈 때는 개방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는 개방이 국가의 이익입니다. 이 단계에서 한국 내 기득권을 설득하지 못하면 개방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 SSM은 시장 상인들이 반대하고 있는데요, 기득권이라고 하면 누구의 기득권입니까.

의료 개방은 의사가 반대하고, 특허·법률도 변리사·변호사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산업이 비개방 분야이기 때문에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 행정을 개방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반문도 있습니다.

지방자치 확산이 개방입니다. 지자체끼리 경쟁 가능한 제도가 되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심판 역할만 해야 합니다. 법인세 100%가 국세인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뿐입니다. 정부가 기득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자율로 놓아 두다간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이 더 심화되지 않을까요.

국세와 지방세가 공존해야죠. 또 지방세를 지자체 권한으로 낮춰줄 수 있도록 해서 경쟁적으로 기업을 유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호민관은 인문학의 강화를 장기적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기술보다 제도의 경쟁력이 필요한데, 찬반이 극렬히 대립하는 것은 가치관의 대립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은 결국 인문학”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는 2009년 9월부터 트위터(twitter.com)의 한국 버전인 트윗케이알(twtkr.com)을 서비스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트위터는 개방형 플랫폼이기 때문에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5600개의 변종이 나와 있는 상태다.

국내 트위터 사용자들은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트윗케이알은 국내 점유율 23%를 넘어서며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다(드림위즈 집계). 이 대표 자신이 직접 트위터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트위터 활동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고 내용도 트위터에 관련된 것이어서 ‘조언’보다는 ‘비즈니스’에 가까운 편이라고 이 대표는 얘기했다.

그는 “‘벤처 구루들이 트위터를 통해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있다’는 내용이면 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열정적인 설명을 아끼지 않아 전화 인터뷰는 60분 넘게 진행됐다.

- 트위터에 굉장히 많은 글을 올리는데,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할애합니까.

하는 날은 심할 때는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하나도 못 합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읽어보고 답하려고 합니다. 다른 분(이민화 호민관, 조현정 회장)들에 비하면 답글은 제가 가장 많이 달았을 겁니다. 3만 개 이상의 글 중 20%가 퍼블릭 발언, 80%가 답글입니다. 본업이 있는 분들은 하나의 툴로서 트위터를 쓰지만, 저에게는 사업입니다. 딱 붙들고 합니다.

- 하루에 댓글을 몇 개나 받습니까.

쪽지는 몇 개 안 되고요, 문제 제기나 질문하는 댓글은 하루에 100개?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습니다. 답변이 뻔하면 답하기 힘들고, 간절하게 필요하다 싶은 사람에게는 가능한 한 답글을 달려고 합니다. 5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 트윗케이알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습니까.

쓰다 보니 불편함이 있었고 제가 답답해서 고쳐보겠다고 달려들면서 지금의 형태까지 왔습니다. 트위터닷컴이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면 저도 만들지 않았겠죠. 사실 아래아한글도 당시 한글2000, 보석글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 트위터가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습니까.

국내에선 트위터 오리지널과 트위터 변형 중에 우리를 통해 글을 올리는 것이 가장 많습니다. 어떤 서비스이든 이용자가 많아지고 트래픽이 늘어나면 사업의 기회가 생깁니다. 기업들이 트위터로 마케팅하는 것도 늘어나고 있고 KT는 트위터 전담자가 30명이 넘습니다. 트위터는 훌륭한 광고·분석·마케팅의 툴이 될 수 있습니다.

- 최근 트윗케이알이 긴 글을 허용하면서 트위터의 140자 정신을 훼손한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트위터 정신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화라는 것은 편해야 하는데, 긴 이야기가 필요할 때 쪽지를 4~5개씩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긴 글은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까 쓰는 겁니다. 결국 사용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발전 방향이겠지요.
이찬진 대표는 사전에 보낸 질문 중 ‘싸이월드가 미국에서 실패한 이유’, ‘네이버가 독식하는 인터넷 문제’, ‘한국 벤처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나는 싸이월드가 미국에서 왜 실패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사업을 하는 데만 신경 쓸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조현정 회장은 비록 트위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멘토로서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사회 공헌 차원에서 1990년 비트교육센터를 세워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키우고 있고, 2000년부터는 사재를 털어 장학생을 매년 12명씩 지원하고 있다.

- 뒤늦게 트위터 대열에 합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중 기왕 하는 것 남의 얘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시작했습니다. 한 번 시작하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았는데, 조금 더 부지런해지니까 되더군요. 일장 연설도 아니고 단문이니까. 남의 것 읽는 데도 단문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 메디슨이 벤처 1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트컴퓨터가 1호더군요. 이민화 호민관도 본인 입으로 벤처 1호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시던가요? 이 회장이 벤처협회 설립, 코스닥 설립 주도 등 큰일을 많이 하다 보니 잘 알려져서 그렇겠지요. 그리고 사실 비트컴퓨터 전에 하나 더 있습니다. 1991년에 이범천 박사가 큐닉스를 세웠는데, 1997년에 부도가 났어요.

현존하는 회사로는 1983년 설립한 비트컴퓨터가 1호지요. 또 처음으로 벤처기업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도 비트컴퓨터입니다. 그렇지만 1호면 뭐 합니까. 더 큰 회사가 돼야지요. 확실한 것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겁니다.

- 벤처가 왜 중요합니까.

창업의 의미는 ‘새살’입니다. 사람이 새살이 돋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IMF 구제금융 조기 졸업의 1등 공신은 벤처기업입니다. 당시 창업이 봇물처럼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왜 어려운지 아십니까. 대개 자산 가치 하락, 부동산 버블 붕괴라고 하는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창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장회사 수를 보면 한국이 1788개, 일본이 2335개입니다.

일본 인구가 한국의 2.6배, 경제 규모는 10배인데 이것밖에 안 됩니다. 신규 상장도 지난해 한국은 66개인 반면 일본인 19개밖에 안 됩니다. 한일벤처포럼에 가보면 우리는 30~40대가 나와 있는데, 일본은 50대가 나와 있습니다.

- 삼성·LG 등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이 문제라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아이리버와 싸이월드처럼 MP3,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우리가 먼저 만들고도 독자적 패러다임을 만들지 못한 것은 국가 브랜드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했을까요.

성공 포인트는 기술이 아니라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성과 LG의 브랜드가 더 커져야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많은 제품을 들고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조 회장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 비트교육센터와 ‘조현정 재단’에 대해 설명했다. 인재를 키우는 일로 사회 공헌을 대신한 조 회장은 “사회 공헌은 희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보험이다. 차세대가 잘 해줘야 나와 가족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의미를 설명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