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녀 경영’이란

“오늘날 교육은 가장 진보된 투자로 여겨지고 있다. 투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익도 증대된다.”

이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투자비용은 적게 들지만 가장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자녀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와 같이 판사인 아버지가 죽어 가는데도 결혼을 앞둔 딸이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신의 결혼식을 망칠까봐 더 신경 쓰는 ‘철없는 자녀’도 더러 나올 수 있다.

또한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이나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자녀들처럼 부모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의 투자는 부모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10일 점심식사를 마친 은행원들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   2008.12.10
10일 점심식사를 마친 은행원들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 2008.12.10
자녀 교육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도다”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면 어쩌면 삶은 한순간의 불꽃처럼 명멸하는 게 아니라 세대를 이어 영속된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적 허무를 승화시키는 그 출발이 다름 아닌 자녀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 초등학생의 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냉장고는 먹을 것을 주는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다.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여기에 이 시대 아버지의 적나라한 초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기계로 전락하고 자녀에게는 아무 의미를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자 아버지든, 가난한 아버지든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아버지들이야말로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가족 경영’에 나서야 하는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 번은 이런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케네디가와 같은 명문가를 꿈꾸던 존 도너번이라는 미국 억만장자가 자녀들과 재산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가 아들에게 청부 살해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영화 ‘공공의 적’과 같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더욱이 이 억만장자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이고, 아들도 MIT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세 번 결혼했는데, 케네디 대통령을 흠모해 전 재산을 하버드대에 기부하려고 하자 자녀들과 갈등을 빚게 됐다고 한다. 영화 같은 골육상쟁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부모 자녀 간에 돈에 대한 원칙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빌 게이츠는 자선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회장직마저 내놓았다.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에 눈을 뜬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는 기부와 자선에 앞장선 부모를 보고 자랐다. 빌 게이츠보다 스물 여섯 살이나 많지만 친구이자 자선 사업가인 투자자 워런 버핏을 빌 게이츠에게 소개해 준 이도 바로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선단체(United Way International)의 회장을 지내며 자선가로 활동했는데 빌 게이츠의 이 같은 성장 환경이 지금의 ‘기부 황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왕성한 자선 활동은 단지 돈이 많아서 하는 행위라기보다 부모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인 셈이다. 돈이 많다고 모두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 번 이혼한 존 도너번 같은 인물은 바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음탕한 아버지 표도르를 닮아 있다. 청부 살해를 시도한 도너번의 아들은 아버지의 살해를 사주했다고 할 수 있는 표도르의 둘째 아들 이반이거나 아니면 심정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마음에 품었던 장남 드미트리와 닮아 있다.

더욱이 장남 드미트리와 음탕한 부친 표도르는 미녀 그루셴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갈등을 일으킨다. 또한 차남 이반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형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테리나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사모의 정에 불타고 있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이 백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에게 살해된다. 그 살해는 다름 아닌 차남 이반이 아버지에 대해 품고 있는 증오에서 불씨가 되었다고 스메르자코프는 고백한다.

결국 법정에서는 장남 드미트리가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마음을 품었었다면서 자신의 죄를 씻어야겠다며 20년형을 자청한다. 아버지를 부정하고서야 참회하게 되는 기막힌 가족사는 1800년대 초반의 러시아 현실뿐만 아니라 200년의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음탕과 자녀의 방탕은 한 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자녀의 문제는 아버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표도르의 불행은 그 자신이 초래한 불행이지만 그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아버지란 존재와 ‘가족 경영’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도 그 군상들의 행각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잇닿아 있다. 이 소설은 1860년에서 1920년까지를 배경으로 남해안의 작은 도시 통영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성수와 그의 아내 한실댁, 그리고 다섯 딸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선비적 성품을 지닌 김봉제는 김약국의 주인으로 지방의 부유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반면 그 아우 봉룡은 형과 달리 충동적이고 격정적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그 아내 숙정이 결혼 전 그녀를 사모한 남자(송욱)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극단적으로 시기해 마침내 송욱을 살해한다. 숙정은 간부(姦夫)를 두었다는 누명을 벗으려고 자살하고 이에 책임을 느낀 봉룡은 집을 떠나 자취를 감춘다.

‘아버지’의 자기 경영은 ‘자녀 경영’에 달려

문제는 그의 아들 성수가 아버지의 죄업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성수의 다섯 딸들이다. 큰딸 용옥은 돈과 애욕의 노예가 되고 셋째 딸 용란은 눈먼 애정 행각으로 결국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김약국은 몰락하고 그 와중에 큰딸 용옥은 김약국이 남긴 재산을 가져가는데 그의 행각은 측은지심마저 불러일으킨다.

한국인들은 돈은 가족에게서 먼저 빌리는데 비해 정서적인 도움은 친구나 동료들에게서 주로 구하는 등 부모나 친족과의 관계가 매우 ‘도구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구적이라는 의미는 부모가 자녀에게 ‘돈 벌어 주는 기계’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4개국 회원국을 대상으로 돈과 친족 관계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부모를 찾아가는 자녀들의 발길이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마디로 한국만이 부모의 소득이 높아야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온다는 것이다.

‘고리오 영감’은 돈에 의해 ‘도구적’으로 전락해 버린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새삼 경각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고리오는 매년 6만 프랑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자였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1200프랑 이상 쓰지 않았다. 딸들의 기분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그의 행복이었다. 딸들은 승마를 했고 마차를 가졌다. 마치 옛날 돈 많은 봉건 영주의 정부처럼 지냈다.

그는 그 선물의 대가로 단지 한 번만 껴안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고리오는 딸들을 천사의 대열에 올려놓았고 결국 그녀들을 자신보다 더 높게 생각했다. 그러나 귀족과 부자와 결혼한 두 딸들은 아버지의 돈을 상속받은 후 아버지를 내쫓는다. 급기야 아버지가 죽어가는 데도 무도회에 입고 갈 의상비를 달라고 아버지를 조르고 고리오는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딸에게 준다. 그리고 이렇게 탄식한다.

“자식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면 죽어야겠군. 아! 여보게,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결코 자식을 낳지 말게! 자넨 자식들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 애들은 자네에게 죽음을 줄 거야…. 그 애들은 안 올 거야.

나는 이 사실을 십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 때때로 이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감히 믿을 수가 없었네….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

‘고리오 영감’을 즐겨 읽은 워런 버핏은 그래서인지 자녀들에게 재산의 극히 일부만 주고 대부분은 사회에 기부하거나 환원하기 위해 재단을 운영한다. 아버지의 자기 경영의 시작은 어쩌면 ‘자녀 경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소설들이 말해주고 있고 세계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돈으로 키운 자식, 아버지를 돈으로 봐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