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시세표

부동산 시장의 추세를 알려주는 지표 가운데 한국에만 있는 것은? 정답은 ‘아파트 시세표’다. 대개 ‘300↑, 500↓(단위 만 원)’ 식으로 표현되는 아파트 가격표다. 부동산 정보 업체 사이트에는 매일 단지별 아파트 값이 얼마 오르고 내렸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마치 주식시장의 전광판을 보는 것과 같다. 주식으로 따지면 주당 주가가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황제주다. 인터넷 사이트 시세표에는 매매 상한가와 하한가를 포함해 전세 상·하한가와 ㎡당 단가, 변동 금액, 매물 건수 등이 자세히 나온다.

신문 방송 등 미디어에서도 매주 1∼2개면 또는 부동산 정보 코너 등을 통해 주요 지역 아파트 가격의 주간 변동 금액과 시세를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아파트 단지별 주택 크기에 따라 매일 변하는 가격을 그래프로 표시하며 등락을 보여주기도 한다.
경기 산본역 앞 부동산 중개소 밀집지역/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061013..
경기 산본역 앞 부동산 중개소 밀집지역/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061013..
중개업소 제공 호가 위주…신뢰성 의문

국민들이 아무리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도 일일 또는 주간 시세표를 매번 들여다볼 정도로 과연 필요한 정보인지 의문이 든다. 아파트가 손쉽게 사고파는 물건도 아니고, 마우스를 클릭해 인터넷에서 쇼핑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또는 주간 단위로 금액의 변동 폭을 제공할만한 투자 대상이 아니라 한 번 구매하면 수년간 보유하는 특성을 가진 상품이기에 더 그렇다.

주식 시세표와 같은 아파트 시세표가 언제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동산을 ‘투자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은 최근 발간한 ‘부동산 미래쇼크’라는 책에서 “아파트의 규격화·표준화 덕으로 매주 아파트 가격의 상승과 하락 등 시세 동향이 발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를 짓는 것이 공산품을 찍어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박 소장의 지적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이보다 전 국민이 부동산의 가격 변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임에 따라 시세표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시세표의 긍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시장의 흐름을 알게 해 준다. 아파트 가격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단지와 가격 비교가 가능해 거래 전에 적정 가격을 짐작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인테리어, 조망권, 층 수, 사용 상태 등 가구별로 상이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힘들어 정확한 시세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부동산 가격을 초단위로 움직이는 주가처럼 중계함으로써 투기를 조장하고 한쪽 방향으로 쏠림을 가속화해 시장을 왜곡할 우려가 높다.

국토해양부는 이런 점 때문에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가 시세표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다. 언론 내부에서도 아파트 시세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기성(時期性)과 신뢰성(信賴性)이 떨어지는데다 투기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부동산 가격의 변동이 심할 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실제 최근 아파트 값이 폭락했는데도 시세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디어와 정보 업체의 시세표 자체가 대부분 현장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수집한 자료여서 가격이 조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추거나 높인 부동산 중개업소의 ‘미끼’ 매물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특히 아파트를 ‘주거 공간’보다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는 이상 아파트 시세표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

김문권 편집위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