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소규모 슈퍼마켓' 진출
대형 마트와 동네 슈퍼마켓의 중간 크기인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이 서민들의 골목 상권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논란이 뜨겁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최근에 불거져 나왔다.세계 최대 소매 업체인 월마트가 대도시로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자 지역 상권에서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월마트의 대형 매장으로 손꼽히는 ‘슈퍼센터(Supercenter)’는 2008년 8월 말 기준으로 미국에 2576개가 있다.
전국 곳곳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들어서 있다. 미국인들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지만 규모가 1만7000㎡(약 5100평)로 워낙 넓다보니 땅값이 비싼 대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뉴욕에는 월마트가 단 한 곳도 없다.
월마트는 사각지대인 대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기존 슈퍼센터를 3분의 1이나 4분의 1 규모로 축소해 식료품 중심 매장으로 진출을 준비 중이다. 월마트는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때 몇 곳을 정해 테스트해 본 뒤 전면 확대를 결정하곤 한다.
월마트는 식료품 매장의 명칭을 ‘게이트웨이(Gateway) Ⅱ’로 정하고 최근 시카고에 3호점을 개설하는데 성공했다. 향후 몇 년간 뉴욕·워싱턴·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에 약 30∼40개의 매장을 설치해 시험 가동한 뒤 본격적인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월마트가 ‘도시형 식품 매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매출 감소 때문이다. 지난 5분기 연속 매출 감소를 보인 월마트로서는 새로운 수입원이 절실했다.
국내 대기업이나 월마트 모두 수익 창출을 위해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상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점은 같지만 접근 방법은 사뭇 다르다.
월마트는 도시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동안 비난받아 왔던 각종 전략을 전향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악덕 사례로 꼽혔던 계약직 노동자의 의료보험 혜택 부여 기간도 2년에서 6개월 근무로 고쳤고 의료보험 가입률도 소매업 평균 58%를 훨씬 웃도는 80%로 개선했다.
임금도 시간당 8.75달러로 경쟁 업체인 타깃(Target)의 8.25달러보다 높였다. 게다가 향후 5년간 채소는 해당 지역 소규모 농장의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상생 비즈니스 모델’ 찾아 나서야
최근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월마트의 진출 계획에 대해 환영의 뜻을 비쳤다. 막대한 세금 수입과 일자리를 만들어 줄 월마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억 달러 이상의 세수입과 1만2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마트는 그동안 약점으로 지목되던 ‘악덕 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함과 동시에 치밀한 로비 활동도 전개했다. 최근 시카고에 도시형 식품 매장 3호점을 내는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점도 이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접근하는지 보여준다.
이에 비해 국내 대기업들은 무리한 밀어붙이기식으로 곳곳에서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중소 상인들의 반발로 직접적인 진출이 어려워지자 위장 가맹점 형태로 편법 확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대응은 더욱 큰 반발만을 불러올 뿐이다.
최근에 정보기술(IT) 시장을 선도하는 선진 기업들은 함께 사는 상생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구글은 사용자를 사이트에 묶어두려는 다른 포털 사이트와 달리 사용자가 되도록 빨리 구글에서 벗어나 검색하고자 하는 사이트로 갈 수 있도록 해 사용자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했다.
또 광고주들이 돈으로 검색 결과 상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한 점도 큰 강점이다. 게다가 광고료는 사용자가 텍스트 광고를 클릭할 때만 부과해 광고주들의 믿음도 얻었다.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누구나 앱스토어에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돈도 벌 수 있도록 했다.
소매형 기업과 첨단 IT 기업에 차이는 있겠지만 국내 대기업들이 지킬 건 지켜주면서 덩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골목 상권까지 넘봐야 할 정도로 매출을 늘릴만한 비즈니스 모델이 그렇게 없는지 안타깝다. 비좁은 무대를 벗어나 해외에서 살길을 모색하거나 중소 상인들도 함께 살 수 있는 ‘상생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뉴욕(미국)= 한은구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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