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에세이

1970년대에는 선술집이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줬고 1980~90년대에는 생맥주 전문점이 국제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코쿤족(집에 칩거하는 사람)을 표방하는 젊은 세대와 식도락가를 위한 룸 타입의 주점과 수작 요리 주점이 인기를 끌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반영했다.

이에 더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막걸리 주점은 전통에 대한 복고 열풍을 나타내고 있다. 창업 시장에서 주점보다 빨리 문화를 선도하는 업종이 없기 때문에 주점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창업 트렌드를 읽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다.

강남역의 대형 주점 역시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빼어난 음식 맛을 강조하는 최근 주점과 달리 영상과 음향의 퀄리티를 높인 매장 분위기가 이색적이다. 주점보다는 춤을 추는 공간인 클럽을 연상시킨다. ‘벽면 가득히 헤엄치고 있는 초대형 고래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4개의 벽면에 순차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파노라마 방식으로 디스플레이된다.

미디어 감성 주점을 표방하는 ‘블루케찹(www.blueketchup.kr)’은 말과 글보다 영상과 음악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담은 신개념 주점이다. 역동적인 사운드와 어울리는 영상을 벽면에 계속 재생하는데 클럽을 연상시키는 사이키델릭한 영상은 물론 콘서트·패션쇼·운동경기 역시 파노라마 방식의 역동적인 화면으로 재생할 수 있다.

나이가 지긋한 고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지만, 의외로 어두운 주점 분위기에서 체면을 벗어던지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블루케찹을 찾는 주 고객은 20대 젊은이들이다. 고객들은 평균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음주를 즐긴다. 회식은 물론 연회·동호회 모임 등 흥겨운 분위기의 단체 모임이 주로 열린다.

눈여겨볼 것은 이곳을 찾는 고객의 70%가 여성이라는 점. 주점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여성에게 어필한 점이 일단 절반의 성공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고 월 1억3000만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진입 장벽 높은 감성 미디어 주점 출현
[창업] 주점 트렌드 파악하면 ‘돈’보인다
국내 최초의 영상과 음악을 강조한 ‘클럽 주점’은 지금까지 주점 트렌드와 다른 몇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주점을 포함한 외식 업체 투자 분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외식 업체는 음식 맛과 물류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런 분야는 점점 변별력을 잃을 정도로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을 높이는데 적절한 투자가 아니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블루케찹은 영상과 음향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음식 맛으로 승부하기보다 최신 영상과 사운드 기술로 경쟁력을 쌓고 있는 것.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상과 음향 제작에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본사의 영상 제작팀과 외주 제작팀은 매장 벽면에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수십 대의 프로젝터를 이용해 몽환적인 영상과 음향을 구현하는데 여념이 없다. 영상과 음향을 구현하는 일도, 초보자가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판매시점 관리 시스템(POS)에 영상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카드 단말기를 이용할 줄 아는 점주라면 누구나 영상을 자유롭게 재생하면서 제어할 수 있다.

둘째, 주점 창업에 만연한 인테리어 거품을 뺐다. 최근 주점 인테리어의 평당 단가는 35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330㎡(100평) 규모 주점을 창업하려면 인테리어 공사에만 3억5000만 원가량이 소요된다. 깔끔한 대규모 매장에 고객이 몰리기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블루케찹의 인테리어 비용은 3.3㎡당 230만 원 수준이다. 기존 고급 대형 주점에 비해 330㎡ 기준으로 약 1억2000만 원 정도 시설비를 절감할 수 있다. 벽면 인테리어에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트를 설치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트는 냉난방기처럼 향후 감가상각비를 제외하고 되팔 수도 있기 때문에 환금성도 높다.

인테리어 비용은 권리금이나 보증금 등 점포 구입비와 달리 매장 폐점 시 되찾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회수할 수 있다는 조건은 창업자에게 매력적이다. 게다가 비싼 자금을 투자한 매장보다 영상과 음악으로 젊은 고객에게 더욱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셋째, 겉멋만 든 주점은 장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블루케찹의 모 브랜드는 ‘레비스’와 ‘토오미’, ‘기린 비어 페스타’ 등 수작 요리 주점을 10년 이상 직영으로 운영한 곳이다. 음식 맛에 대한 노하우를 탄탄하게 쌓아 온 본사에서는 음식 맛에 인테리어까지 훌륭한 주점을 고려하다가 탄생시킨 것이 블루케찹인 것.

더욱이 일본 수작 요리 주점 ‘토오미’는 수작 요리 주점의 원조 격인 곳으로 음식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고객이 원하는 메뉴의 식자재를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면 해외 물류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입수할 수 없는 ‘간사이 오뎅(일본 수제 어묵)’은 직접 일본에 건너가 공수하고 있을 정도다.

변화 속에 주점업계 지켜온 브랜드 주목하자

블루케찹은 새로운 클럽식 주점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10년 이상 음식 맛과 노하우를 쌓아온 토대 위에 새로운 경쟁력을 접목했다는 점이다. 내실없는 브랜드는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주점 업계는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마른 시장이기 때문에 10년 가까이 내실을 다져온 브랜드가 더욱 빛을 발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가족’과 ‘웰빙’을 콘셉트로 ‘주택가 주점’의 입지를 다져온 ‘치어스(www.cheers korea.com)’는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주점 프랜차이즈다. 2001년 분당 아파트 단지에 99㎡(30평) 규모의 직영점 출점을 시작으로 현재 230곳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가맹점 총매출은 900억 원에 이른다.

주점은 유행을 많이 타는 업종이기 때문에 2~3년이면 수명이 다한다는 속설을 이기고 10년 이상 같은 콘셉트로 성공한 것에 업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다. 이곳이 10년간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키워올 수 있었던 비결은 뛰어난 품질의 식자재를 고집한 것. 외식업 경쟁력의 기본인 맛에서 해답을 얻은 것이다.

음식 맛에 대한 품질관리도 마찬가지다. 본사에 조리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1년에 200명가량의 요리사를 교육해 배출하고 있다. 치어스의 정한 사장은 “가맹점에서 일하는 주방장은 무조건 본사 조리아카데미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면서 “현재 230개 가맹점의 음식 맛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우수한 조리장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올해 말 치어스는 호남권과 충청권의 출점을 늘려 270호 가맹점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2년 사당역 근처 이면도로에서 시작한 ‘와라와라(www.wara-wara.co.kr)’ 역시 10년간 장수한 주점 브랜드다. 이곳의 철칙은 가맹점 5곳당 직영점 1곳 운영이다. 본사가 지속적인 사업 의지를 가맹점주에게 심어주어야 공동체적 자세로 브랜드를 가꿔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유재용 대표는 “직영점 한 곳 없이 가맹점만 운영하는 주점 프랜차이즈가 많다”면서 “2~3년 약속된 프랜차이즈 계약이 끝나면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아 불신감이 큰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와라와라는 4개월마다 신 메뉴를 출시하고 ‘배려 서비스’ 등 새로운 고객 서비스를 개발한 것도 투어의 결과물이다. 배려 서비스는 겨울엔 무릎담요를 제공하거나 더운 여름날 머리를 묶을 수 있는 머리끈을 제공하고 있어 주 고객층인 여성에게 어필하고 있다.

와라와라는 최소한 고객들이 30분 이상 기다릴 수 있는 점포, 피크타임이 따로 없는 점포, 투자 대비 80% 이상의 순익을 얻을 수 있는 매장을 표방한다. 창업 컨설턴트였던 유 대표가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이다.

가맹점 교육 역시 남다르다. 타 브랜드가 속성 교육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과 달리 ‘와라와라’는 5주 이상 교육을 이수해야 매장을 운영할 수 있다. 철저히 준비한 자만이 성공한다는 유 대표의 생각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주점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고 지켜낼 자신이 있다면 거친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브랜드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창업] 주점 트렌드 파악하면 ‘돈’보인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1964년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세종대 경영학 박사.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자문위원, 한국여성창업교육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창업전략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ksb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