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되는 학원 시장

수험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은 사실상 수험의 당락을 결정짓는 최종 관문이다. 이는 미국을 벤치마킹해 동일한 교육체계를 지닌 한일 양국의 공통점이다. 또 다른 공통분모는 치열한 입시 경쟁이다.

일본도 교육열이 뜨겁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입시 전쟁, 입시 지옥이란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다. 가을만 되면 학원 광고가 급증하는 이유다.
[일본] 저출산 영향…경기 침체도 ‘한몫’
다만 한일 양국의 수험 풍경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이 대학 입시에 주로 집중한다면 일본은 대학과 초중고에까지 입시 경쟁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특히 경쟁적인 건 중등시험이다. 명문 사립중학교를 필두로 일부 유명한 국립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전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일본의 입시 경쟁은 이르면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유치원에만 잘 들어가도 훗날의 대학 입학까지 자동으로 보장되는 특유의 시스템 때문이다. 즉 일관제(一貫制)로 불리는 자동 승급 제도다. 유명 사립의 경우 유치원 입학과 함께 계열 사학의 6(초)·3(중)·3(고)·4(대)학제를 그대로 연결·진학할 수 있다.

사학 명문인 게이오대가 대표적이다. 게이오대는 전체 입학생의 절반가량이 내부 출신자로 알려졌다. 유치원을 포함해 초중고 중 한 군데 입시에서만 합격해도 게이오대 입학은 자동 보장된다. 단기 결전으로 대학까지 보장받는 제도는 당사자들에겐 대단히 강력한 유혹이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입시 경쟁
[일본] 저출산 영향…경기 침체도 ‘한몫’
반대로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부모 면접이 필수인 유치원은 수학 능력과 함께 보호자의 사회 경제적 능력까지 고려된다. 이는 게이오만의 제도가 아니다.

유명 사학은 대부분 일관 시스템을 적용한다. 대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까지 보장하는 국립대도 적지 않다. 당연히 이런 고등학교는 그 자체가 명문 대학 입학의 지름길인 만큼 합격률도 높다.

상황이 이러니 교육열이 뜨거운 건 불문가지다. 한국의 치맛바람처럼 일본에선 ‘교육엄마’로 불리는 열성 부모가 많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가 자녀의 교육 스케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다. 경제적인 어려움 감내도 필수다. 명문 학교 입시 경쟁은 부유층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빚을 내 사교육비를 충당하는 집도 상당수다. 학력 사회의 공고함 때문이다. 명문 초중고 입시 경쟁은 물론 일류대를 지향한 재·삼수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사회 진출 후의 역할·지위를 결정짓는 최대 관건이 대학 타이틀이란데 이견은 없다.

결국 입시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학원 교육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됐다. 학원 선호는 공(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교육만으론 세밀한 입시 준비가 불가능해 일찌감치 사교육에 의존하려는 수요 증가다.

실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입시 붐은 전국적이다. 수도권의 경우 2003년부터 수험 증가가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유토리 교육’이라고 불리는 학습지도요령(2002년 개정)이 시작된 시기와 일치한다.

유토리 교육은 과도한 주입식 교육 대신 창의·자율성 존중을 표방하며 수업 시간을 약 10%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된 인성·전인교육을 뜻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실패했다. 학습량 감소로 학력 저하를 야기했다는 비판 때문에 2009년 폐지됐다.

결국 유토리 교육은 공교육에 대한 우려 심화와 그 갭을 채우려는 사교육 의존 경향을 부추겼다. 이게 최근 중학 수험 붐 조성의 원인이 됐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수도권의 경우 1999년 이후 일관제를 도입한 공립학교가 신설되고 있다는 점도 사교육 수요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도쿄만 해도 일관제 도입 중고등학교가 2010년 현재 10개로 증가했다.

사립에 비해 학비가 싼데다 영어연수·논리사고 등 독자적인 특화 교육까지 실시 중이어서 인기가 높다. 이런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도 수험 열기를 가속화했다는 얘기다.

통계를 보면 올해 수도권에선 모두 6만 명의 초등 6학년이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렀다. 전체 졸업생이 30만 명인 걸 감안하면 5명 중 1명은 입시에 참여했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이들 중 절대 다수는 ‘주쿠(사설학교) 예비학교’라고 불리는 사교육 업계에서 별도의 입시 준비를 했다. 주간동양경제 설문 조사(부모 대상)에 따르면 중학 수험 희망자 중 80% 이상이 학원에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20%는 초등 3학년부터 준비한다. 그래야 6학년 여름까지 이수 내용을 끝내고 가을부터 본격적인 지망 학교별 특별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수학군의 경우 초등 3학년 이상이면 70~80%가 입시 준비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은 많아졌는데 학생은 줄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학원 업계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어둡다. 성장세도 기대난이다. 학원 시장은 2009년 기준 9140억 엔(야노경제연구소) 정도인데 이는 1990년대 피크 때보다 10%가량 축소된 규모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때문이다.

문제는 향후인데 18세 미만 인구 감소세를 보면 역시 부정적이다. 더욱이 대입 시장이 우려된다. 대학은 많아졌고 학생은 줄어들어 전원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 파탄이라는 말까지 흔해졌다.

고3도 가급적 현역 합격을 원해 무리한 상향 지원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로써 수험 전쟁의 특징 중 하나였던 전통적인 대입 학원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물론 여기에도 격차는 존재한다. 명문대를 원하는 학생들끼리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상위 대학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명문 중고교 이후에도 최종 관문 통과를 위한 또 한 번의 합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2~3월이면 유명 대학 근처 숙박 시설은 만원이다. 실제 중학 수험 합격자의 20% 이상은 명문대 입시에 도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고교 수험 시장도 마찬가지다. 2010년 중등 수험률(20.3%)은 과거 최대치를 기록한 2009년(21.2%)보다 0.9%포인트 하락했다.

학원 업계 먹구름의 최대 원인은 경기 침체다. 입시 붐이 존재하는 지금이야 버텨도 불황이 계속되면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줄일 것 같지 않은 교육비조차 경기 침체 앞에선 방법이 없다.

수험 기간이 최저 3년 이상이란 점도 부담스럽다. 자녀 1명의 대학 진학 때까지 평균비용은 1000만 엔이 훌쩍 넘는다. 이는 공립학교일 경우이고 사립은 2배 이상이다. 400만~500만 엔대의 일본인의 평균 급여를 보면 상당한 부담이다. 앞의 설문 조사를 보면 중학교 수험 준비 평균 금액은 50만 엔 미만이 26%로 제일 많다.

하지만 입학이 힘든 명문 국공립·사립 준비반이면 얘기가 다르다. 이 경우 200만~250만 엔의 응답 비율이 가장 높다. 50만 엔 미만은 1.4%에 불과하다. 사립중 합격생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 결과에선 평균 800만 엔대의 학원비를 지출했다는 통계도 있다.


돋보기 학원 업계 생존 전략

저출산으로 ‘위기’…‘깎아주거나 뭉치거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20만 개 안팎의 입시 학원이 영업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전반적인 상황은 경쟁 격화로 요약된다. 경쟁 방향은 가격 싸움이 태반이다. 수업료 인하 경쟁이다. 업계가 선택한 비장의 카드는 다양하다. 절반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학원은 합격 보증 시스템까지 도입했다.

동시에 업계의 생존경쟁 중 돋보이는 경향은 덩치 확대다. 당장 교실을 갖춘 오프라인 학원과 통신교육·VOD 등의 온라인 업체의 합종연횡이 주목된다. 이는 2006년 VOD를 활용한 대학 수험 학원인 도우신(東進) 하이스쿨이 전통의 수도권 중학 수험 학원인 요츠야오츠카(四谷大塚)를 매수한 게 촉발이 됐다. 이후 이 과정에서의 주도권은 저렴한 가격과 넓은 선택 범위를 가진 통신교육 특화 업체가 쥔 모습이다. 더욱이 지방 업체와의 제휴도 증가세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으로 갈수록 입시 학원의 생존 기반은 한층 취약해진다. 이젠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캠페인 성격의 무료 강좌를 여는 곳도 많다. ‘제로(0)엔 경쟁’이 대표적이다. 합격률이 높은 명문 학원도 예외는 아니다.

신흥 학원 등 경쟁 업체의 가격 경쟁에 호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학년 특징에 맞춘 눈높이 수업 내용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이 결과 수업 내용과 시간에 맞춘 가격 설정도 가능해졌다. 일정액을 내면 얼마든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원도 생겨났다. 학원 쪽에서도 저가격이 학생 증대로 연결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