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달러 대비 환율 하락)을 막고 평가절하(달러 대비 환율 상승)를 유도하는 ‘환율 전쟁’을 벌이면서 한국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국익을 위해서는 한국도 원·달러 환율의 급락을 막는 정책을 써야 한다.하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점이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국제 공조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국익만 내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국제 공조라는 명분보다 국익이라는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면 결국에는 공멸에 이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눈앞의 이익을 챙기고 보는 것이다.
명분이냐 실리냐 ‘고민’에 빠져

G20 의장국인 한국이 서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과세 방침을 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 내 의견도 엇갈린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최중경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 ‘환율 주권론자’들이 버티고 있는 청와대는 외국 자본에 대한 ‘문턱’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 특보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국인 채권 투자 원천징수세를 폐지한 이후 투기성 핫머니가 대거 유입돼 외환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며 “정부 내에서 원천징수세를 부활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G20 주무 부서인 기획재정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신중한 편이다. 재정부 내에서도 국제금융국과 국고국의 시각이 다르다. 환율 안정을 중시하는 국제금융국은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국고국은 국고채 금리를 낮추기 위해 외국인 자금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환율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하고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도 어려운 문제다. 당초 한국 정부는 G20에서 특정 국가의 환율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위안화 환율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글로벌 환율 전쟁으로 번지는 바람에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우려하는 것은 환율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글로벌 금융 안전망과 개발 이슈 등 한국이 주도해 온 이른바 ‘코리아 이니셔티브(Korea initiative)’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환율에 관한 각국의 첨예한 견해 차이만 확인한 채 회의 자체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의 외교력과 리더십에 상처만 입을 수도 있다.
G20 정상회의 이후 거시경제 정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도 한국으로서는 고민스러운 일이다. 의장국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국제 공조에 무게를 둘 필요성이 있지만 의장국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G20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많다. 국제 공조라는 것은 결국 환상에 불과하고 각국은 개별 국가의 이익을 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G20을 통한 국제 공조에 집착하다가 정작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G20에서 국제 공조와 국익의 균형을 찾고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격을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