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대한국 공세가 심상치 않다. 간 나오토 총리는 최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갈수록 가열되는 환율 전쟁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도 공통의 룰 속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며 한국을 물고 늘어졌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은 외환시장에 수시로 개입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의 책임을 엄격히 추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씌웠을 뿐만 아니라 G20 의장국으로서의 책임까지 들먹이며 공개적으로 원화 가치 절상을 요구한 셈이다.
일본, 돌연 한국 향해 칼을 빼들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경제가 수렁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일본 재계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시장 개입을 통해 한국 원화를 대거 사들여서라도 원화의 가치 절상을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한국 원화를 대규모로 매입하기는 쉽지 않다. 원화를 사들이기 위해선 엔화로 달러화를 매입하고 다시 달러로 원화를 사는 우회 수단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원화 환율 문제를 국제 공론화해 가치 절상을 유도하려는 속셈으로 봐야 한다.
일본 재계가 초(超)엔고로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빠져든 것은 사실이다. 엔화는 2000년대 들어 대체로 달러당 120엔 선 근처에서 움직였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상승세를 보이면서 최근엔 80엔대 초반 수준까지 솟구쳤다.
일본 정부와 재계의 예상을 웃도는 상승률이다.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올해 평균 환율을 달러당 90~92엔 정도로 보고 경영계획을 짰다고 한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오를 때마다 도요타자동차는 연간 영업이익이 300억 엔, 혼다는 170억 엔, 소니는 20억 엔씩 감소한다는 게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한국과 일본은 대단히 비슷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자동차·철강·반도체·전자·조선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원화의 절상을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생겨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본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우선 엔고 저지를 위해 지난 9월 15일 하루 동안에만 2조 엔에 달하는 액수를 투입해 노골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던 나라가 다른 나라의 미세 환율 조정에 시비를 거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게다가 원화 또한 최근 큰 폭의 절상이 이뤄져 달러당 1100원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엔화가 상대적으로 크게 절상되긴 했지만 그것은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화는 앞으로 절상 추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발목 잡기를 계기로 일부 유럽 언론 등도 원화 환율 문제에 대해 시비를 거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 역시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실제로 원화가 절상되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출에 의존해 버텨온 우리 경제 또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은 뻔한 이치다. 하지만 품질 경쟁력, 기술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려 원화 절상에도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는 기업 체질과 경제 체질을 만드는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정부와 기업들이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할 때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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