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길 청학F&C 회장

1971년 2월 중순 새벽 6시 장항역. 서울행 기차를 타는 한 젊은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윤현길 청학F&C 회장은 그렇게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윤 회장을 아는 일반인들은 거의 없지만, 국내 식품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1983년 청학F&C의 전신인 천일특산(주)을 설립하면서 사업에 뛰어들어 큰 부를 일궜다.

‘청학동’이라는 브랜드로 고춧가루·참기름·들기름 등을 생산하는 청학F&C를 국내 식물성유지 업계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수입 유통업으로도 발을 넓혀 냉동 야채를 취급하는 ‘마당발’이라는 브랜드로만 연간 50억~6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단체 급식 사업에 뛰어들어 연간 1억5000만 위안 정도 규모로 키웠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남들이 어렵다는데도 나는 뛰어들었다”
그의 성공 습관은 도전과 변신, 최고 품질 추구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역사였다. 갓 스무 살의 나이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당시 그의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는 선두권을 다퉜지만 집안이 가난해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다고 어린 생각에도 가난한 농사꾼으로 살 수만은 없었다. 고향인 충남 장항에서 같이 살자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서울에서 리어카 행상이라도 하겠다”며 훌쩍 고향을 떠난 것이다. 서울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문사 지국 총무, 보험 판매원, 책(브리태니카) 세일즈맨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하지만 미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2년간 번 돈으로 서울보건대학 식품가공과 야간 과정을 마쳤다.

1977년 군대를 제대하고 작은 무역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중동지역에 고추장과 된장 등 부식류를 수출하는 일을 했다. 당시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에 국내 건설 업체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현지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부식 사업은 규모가 꽤 컸다.

1980년대 중동에 한국 식자재 수출

그로부터 4년 뒤인 1981년 6월, 그는 안주(安住) 대신 모험을 택했다. 새로운 꿈을 위해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듯이 이번에는 쿠웨이트행 비행기를 탔다. 해외 현지에서 시장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중동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귀국해 천일특산을 설립했는데 자본금은 1000만 원, 직원은 그를 포함해 단 3명에 불과했다. 그는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이란·리비아 등 중동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장류·조림류·고춧가루 등 한국의 전통 식자재를 수출했다. 그해 15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서초동에 땅을 사 사옥을 지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세상에 마냥 쉬운 길은 없는 법이다. 중동에서 그는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했다. 함께 다니던 현지 운전사로부터 납치당할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적도 있다.

그는 도전에 거침없었지만 변신에도 능했다. 중동 건설 붐이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에 그의 시선은 미국·캐나다·일본·독일 등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로 향했다. 이와 함께 1988년 중국 산둥 지역 칭다오에 고춧가루 공장을 건립했다. 이곳에서 생산한 고춧가루를 해외시장에 팔았다. 하지만 미국·일본·독일 시장은 좁았다.

이즈음 국내 농수산물 유통시장이 개방됐다. 즉각 그는 태국의 파인애플 등 10여 종의 통조림을 수입해 대형 할인 마켓에 공급했다. 동시에 경기도 안성군 미양 농공지구에 제조 공장을 세웠다. 검은깨로 참기름을 생산했다.

기존에는 흰깨로 만든 참기름이 대세였지만 검은깨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청학의 참기름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지만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올리브유와 포도씨유 등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매출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윤 회장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중국에서 현지법인인 ‘상해푸른원찬음유한공사’를 설립, 단체 급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 대형 급식 업체의 매출이 약 1조 원이에요. 중국 인구의 1%만 잡아도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미 중동 지역에 부식 및 식자재를 공급한 경험을 십분 활용하면서 고객들의 호평을 얻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지금은 30여 기업에 하루 7만 식을 공급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고객 리스트에는 삼성·LG·한국타이어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국 국영 회사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윤 회장은 “프랑스 소덱소 등 세계적인 급식 업체와 당당히 경쟁해 중국 지역의 단체 급식 수주를 따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도전 정신과 변신 노력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지만 그 이면에는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만을 공급한다는 경영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단체 급식 사업의 경우 미리 가공된 식품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 3만3000여㎡(1만 평) 부지에 ‘식자재 가공 물류센터’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드라이 키친 시스템’도 도입했다.

드라이 키친 시스템은 주방 바닥에 물기를 전혀 남기지 않아 위생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참기름도 산학 협력을 통한 연구·개발로 2005년 국내 최초로 흑임자유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다. 중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냉동 야채도 국내산보다 더 철저하게 위생 관리를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향후 계획을 물었다. “국내에서는 마당발 브랜드로 종합 식품 유통·물류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입니다. 중국에서는 농·수산 냉장·냉동 보관 물류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겁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곳에 들어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약력 : 1952년생. 71년 군산고 졸업. 1973년 서울보건대 식품가공과 졸업. 1986년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수료. 2001년 한경대 식품공학과 졸업. 1978년 미래식품 무역부 근무. 1983년 청학F&C(구 천일특산) 대표이사(현). 2001년 상해푸른원찬음유한공사 동사장(현). 사단법인 한국식품기술사협회 부회장(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