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랭킹 336위’ 박지만 회장의 ‘EG’ 심층 리포트

10월 초 재계 정보 제공 업체인 재벌닷컴이 국내 400대 부자를 집계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명의 숨은 부자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 김준일 락앤락 회장,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 박관호 위메이트 대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최대 주주, 신철호 임페리얼팰리스호텔 회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더욱이 이들과 함께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띄었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다. 재벌닷컴이 1779개 상장사와 1만3589개 비상장사의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와 현금 자산을 바탕으로 올해 400대 부자를 집계한 결과 박 회장이 589억 원의 재산으로 336위를 차지한 것.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박지만 회장은 ‘비운의 황태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박 회장은 중앙고 1학년 재학 중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경험하고 육군사관학교 3학년 때 아버지마저 급작스럽게 떠나보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했지만 이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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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전 포철 회장 도움 커

더욱이 1989년 코카인 흡입 혐의로 처음 불구속 입건된 후 10년간 5차례나 적발-선처-재적발의 악순환이 반복됐고 그중 4번이나 구속됐다. 2000년에도 히로뽕에 손을 댄 것이 뒤늦게 적발돼 2002년 구속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박 회장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 전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철강 기업의 필요성을 안 박 전 대통령은 박 전 회장이 포항제철을 일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박 전 회장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은이었을까. 박 전 회장은 박지만 회장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밑거름이 돼 줬다. 박 회장이 박 전 회장의 도움으로 1990년대 초 삼양산업을 인수하게 된 것.

1987년 설립된 삼양산업은 포항제철의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해 전자 부품 원료를 만드는 회사였다. 삼양산업은 2000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회사 이름을 EG로 바꿨다.

EG의 사업 영역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전자기기의 주요 부품인 페라이트 코어의 주원료가 되는 자성 재료용 산화철을 수거해 재판매하거나 이를 활용해 복합 재료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산화철은 제철소의 냉연강판을 제조할 때 나오는 산업폐기물에서 철이 산화된 붉은색의 고운 가루 같은 물질이다. 복합 재료는 이 산화철을 70% 이상 활용해 다양한 금속 산화물을 결합시켜 만드는 자성을 띠고 있는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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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료는 페라이트 코어라는 부품을 만드는데 주로 쓰인다. 영상기기·정보통신기기·전자기기·전력기기·회전기기·음향기기 등의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사업 기기에 적용되는 전기전자 부품 분야의 핵심 소재다.

액정표시장치(LCD)와 평면 TV 등의 가전제품과 휴대전화 등의 통신용 코어, 전자파 흡수체인 EMI 코어 등에 쓰이며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EG는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에서 산화수 설비, 스테인리스 수처리 설비 등을 직접 운영하며 안정적인 원재료 조달처를 확보하고 있다.

EG의 기술 수준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산화철 순도와 불순물 함유량 등에서도 경쟁국인 일본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2001년부터 일본 대형 전자회사인 TDK와 기술제휴가 가능했다.

실제로 253억6000만 원 정도로 파악되는 국내 산화철 시장에서 EG는 56%로 과반수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100억 원 수준으로 파악되는 복합 재료 부문에서 EG는 7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물론 EG가 그동안 꾸준히 좋을 실적을 올려온 건 아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EG의 평균 영업이익은 7억 원에 불과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평균 영업이익 34억 원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였다.

EG는 작년 매출액 193억 원, 영업이익 13억 원, 당기순이익 21억 원이라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이 같은 EG의 성장세는 올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 회사는 매출액 129억 원, 영업이익 19억 원, 당기순이익 18억 원을 올린 것이다.

이유는 2008년부터 시작된 신규 사업 때문이다. EG는 현재 자회사인 EG메탈을 통해 석유화학 공정 중 발생되는 탈황 폐촉매에서 재처리 과정을 통해 희소금속인 바나듐과 몰리브덴을 추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EG는 이 같은 희소금속을 합금철인 페로바나듐과 페로몰리브덴으로 가공해 철강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희소금속 생산으로 수익성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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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 측은 “현재 국내에는 정유공장에서 배출되고 있는 폐촉매를 처리할 수 있는 업체와 기술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며 “그동안 독자적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해외 대형 정유사에서부터 국내 정유사까지, 폐촉매를 수입한 경험이 있으므로 구매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EG에 따르면 글로벌 정유 업체인 미국의 발레로, 쉐브론 등과 원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를 국내 철강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또 EG의 폐촉매 처리량은 연간 1만2000톤 규모로 동종 업계 선두 업체인 일본의 태양광공사를 이미 능가하고 있으며 공장 초기 가동 후 1년도 되기 전에 품질 조건이 까다로운 일본 현지에 수출하며 국내외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EG테크는 올 반기 기준 매출액 57억 원, 영업이익 3억4000만 원, 당기순이익 4억5000만 원을 기록하며 회사 전체 수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EG를 ‘100% 실적 위주’의 기업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른바 ‘정치 테마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경선 주자로 주가를 높이자 EG의 주가도 한두 달 사이에 2배 이상 뛰었다.

또 지난 9월 15일 종가 기준 1만8000원에 불과했던 EG의 주가는 여성 대통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10월 11일 한때 2만755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박 회장의 누나인 박 전 대표가 이 드라마를 통해 부각되면서 자연스레 EG 역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이때쯤 중국과 일본 간의 ‘희소금속 전쟁’이 벌어지면서 주가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따금씩 이어지는 박 회장의 주식 매각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2007년 당시 박 회장은 보유 주식 206만 주(45.83%) 가운데 26만 주를 장내에서 팔아 80억 원을 현금화하기도 했다.

또 지난 8월에는 22만9677주를 1만8250원에 시간외 매매로 팔아 40억 원가량을 현금화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99년 기준 59.44%에 달했던 박 회장의 지분율은 현재 35.34%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