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비즈니스 불붙다
웰빙(Well-Being) 이후는 웰다잉(Well-Dying)이다. 잘사는 것만큼 잘 마무리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의 인생 2막이 길어진 고령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인구구성상 노인 비중이 대단히 높은 일본에선 이미 웰다잉이 중요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가족은 물론 현실 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무연(無緣)화가 심화될수록 준비된 웰다잉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최근 사회문제로 급부상 중인 고독사(孤獨死)에 대한 경계감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풀어야 할 웰다잉 이슈의 최대 관문은 사실상 유산·상속 문제다. 무난한 상속의 완성이야말로 가족의 행복은 물론 사회·경제의 활력 부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는 일본의 골칫덩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세대 격차로 이해된다. 가진 부모 세대와 못 가진 자녀 세대의 갈등 부각이다.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은 1500조 엔 안팎이다. 그중 빚은 500조 엔 정도다.
즉 순자산은 1000조 엔인데 이 중 600조 엔이 60세 이상에 몰려 있다. 노인 세대의 경우 사망 당시 금융자산만 1인당 평균 3500만 엔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가난한 노인도 많지만 비중만 보면 부자 노인이 훨씬 더 많다. 반면 자녀 세대는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데다 연공서열 약화로 평균임금은 더 줄었다.
이 와중에 노인의 돈은 꽉 막힌 상태다. 더 오래 살까봐 두려워 쓰지 않는다. 장수 위험이요, 또 다른 의미의 유동성 함정이다. 그나마 4060세대의 자녀는 사정이 낫다. 평균수명상 8090세대의 부모로부터 집중적인 상속 수혜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의 상속 동향은 순전히 노노(老老) 이전이다. 유산 문제를 포함한 상속 비즈니스의 타깃도 50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본] 시장 규모 50조 엔…‘자녀 고객을 잡아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01.1.jpg)
부자 노인이 많다는 건 그만큼 상속 주제가 매력적이란 방증이다. 이 거대 시장에 업계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금융권의 상속재산 운용 대행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상속세의 경감 대책과 신고 대행 등도 포함된다. 가업이 있다면 사업 승계와 양도 대책을 조언하는 회사도 많다.
유산 분쟁을 막고 효과적인 대물림을 위해 유언장 작성·보관 대행 서비스도 성황 중이다. 게다가 상속재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이란 점에서 이를 활용하는 정보 제공업도 인기다. 상속 업무에 납세·분할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을 포함하는 업계 제휴도 일반적이다.
비영리조직(NPO)인 ‘상속지원네트’에 따르면 일본에선 연 4만 건 정도가 상속 대상이다. 기초공제액을 뺀 사실상의 거액 상속이다. 기초공제액은 ‘5000만 엔+(1000만 엔×법정상속인)’으로 계산되는데, 자녀가 둘이면 7000만 엔까지 공제된다.
즉 상속액이 7000만 엔 이하면 과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 상속 범주는 더 넓다. 예·적금 없이 집만 있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부동산을 둘로 쪼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고인의 의사를 따르면서 유족 불만을 중재하는 역할을 상속비즈니스가 맡는다.
경쟁도 심화되는 추세다. 주요 은행은 유언장 집행 등을 대신하는 유언 신탁과 함께 주로 상속에 관한 상품·서비스 강화에 역점을 둔다. 전문 회사와의 제휴도 많다. 신탁은행의 유언장 보관, 유산 정리 수탁 건수는 2009년 9월 현재 4만 건에 육박한다.
6년 전보다 2배나 늘어났다. 유언 신탁은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해 보관하는 것이고, 유산 정리는 사후에 상속 수속을 대행해 주는 것이다. 단순한 수수료 수입은 물론 유산 상담을 계기로 자산운용 수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미즈호신탁은행은 유산을 복지에 활용하고 싶다는 고객의 요청이 증가하자 일본맹도견협회와 제휴해 사후 기부를 신청한 이의 유언 작성을 도와주고 해당 수수료만큼 은행도 기부하고 있다.
미쓰비시신탁은행이 4월부터 시작한 신상품은 고객의 신탁 자산(1억 엔 이상)을 운용해 사후에 유족에게 정기적으로 지불하거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관리하는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세제 개정으로 상속·증여세가 일체화돼 생전 증여가 쉬워지자 생전 계약도 가능하도록 했다.
유언장 관련 사업도 관심을 끈다. 유언장의 효력은 크다. 법정 상속인의 생활상 곤란이 없도록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유류분이 보장돼도 원칙적으로는 법정상속분과 상관없이 본인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재산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유언장은 아무래도 좀 부정적인 게 사실이다.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좀체 작성 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이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갈등 없는 사전 준비를 권하기 위해 유언장 작성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이 속속 출시 중이다. 유언 투어나 유언장 키트가 그렇다. 유언 투어는 온천 여행을 주선해 유언장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취지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는 시간은 물론 구체적인 작성 방법까지 알려준다.
참가비(2박 3일)가 10만 엔을 웃돌지만 만족도가 높다는 후문이다. 여행 참가가 힘든 경우엔 유언장 키트도 대안이다. 문구 회사 고쿠요의 제품은 연 2만 개 판매 목표를 세웠지만 발간 4개월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다. 봉투·용지 등 유언서 작성에 필요한 물품이 완비된 데다 작성 안내 책자까지 포함된다. 위·변조를 막기 위해 복사가 불가능한 안전장치까지 덧붙였다.
사후 상속보다 생전 증여 유도
![[일본] 시장 규모 50조 엔…‘자녀 고객을 잡아라’](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02.1.jpg)
현재 상속 시장 전체 규모는 50조 엔대로 추정된다. 향후 더 늘어날 건 명약관화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상속재산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2020년엔 약 140조 엔에 육박할 것이란 추정도 있다.
거액 자산의 주인이 교체된다는 점도 상속 특징 중 하나다. 세대별 순자산액을 보면 자산 축적이 가장 많은 계층이 70세 이상 세대다. 설문 결과(우정종합연구소) 이들의 상속 의지는 64%로 평균 5653만 엔으로 나왔다.
다른 자료를 봐도 세대 평균 최저 4000만 엔 이상은 상속된다. 거액 자산의 주인 교체는 갑작스러운 부자가 생겨난다는 것을 뜻한다. 2008년 상속세 통계를 보면 샐러리맨 생애 임금인 3억 엔 이상을 상속받은 이가 3500명이나 됐다.
1억 엔 이상은 2만9000명에 달했다. 금액을 4000만 엔 이상으로 낮추면 무려 15만 명 이상이다. 상속이 일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의미다. 따라서 자산 형성에 미치는 상속재산의 중요도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근속연수=소득증대’는 옅어졌다. 지금 현역 세대의 자산 형성은 부모 세대보다 열악하고 늦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의 축적 자산보다 부모의 상속재산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커졌다는 뜻이다.
상속 내역을 보면 역시 50% 이상은 여전히 부동산이다. 하지만 앞으로 상속세 특례 적용이 줄어들면서 부동산의 영향력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안이 유가증권이다. 2008년 현재 유가증권은 상속재산의 13%를 차지한다. 금융 위기 이전의 17~18%보다 줄어들었다. 다만 유가증권을 가진 부모 비율은 증가세다.
더욱이 1980년대는 자사주로 보유한 유가증권이 40%를 차지했지만 최근엔 펀드를 통한 보유 비율이 늘어났다. 보유자 인원 분포로 보면 펀드 보유자가 더 많아졌다. 결국 유가증권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상속상품·서비스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제외하면 상속재산 중 가장 많은 것은 21%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 비중이다. 현금 비율은 1990년대 이후 상승세다.
부동산 등 매각하기 힘든 자산을 상속하는 것과 달리 현금은 유동성이 좋아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 세대로서도 디플레이션 회피는 물론 노후 충격 완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생활비로 꺼내 쓸 수 있는 현금 자산을 선호한다.
정부 정책은 상속 비즈니스의 중요한 나침반이다. 상속세야말로 사회 안정을 위한 부의 재분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은 증여세 증세 방향으로 일단 가닥을 잡았다. 지난 4월엔 상속세법이 개정돼 연금 상속 때 적용하던 우대 조치도 폐지했다.
다만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향후 격차 시정 관점에서 2011년에 상속세의 과세 베이스와 세율 구조를 개정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격차를 바로잡는 세원으로 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는 상속세를 지명한 셈이다. 격차 문제를 포함해 상속세의 향방이 향후 경제성장을 쥐락펴락할 감춰진 아킬레스건으로 이해된 결과다. 다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상속을 주저하는 고령 세대가 많은데다 꾸준한 생전 증여를 시도할 경우 세원 확보로 연결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돈을 움켜쥐려는 예비적 동기에 의한 저축 증대도 변수다. 고령자의 경우 허술하고 신뢰하기 힘든 공적제도에 가족 안전망마저 깨졌다고 판단해 결국 ‘돈’만한 효자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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