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의 1등 기업 CEO를 만나다③-건설

[Special Interview]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시공 위주 해외 진출로는 미래가 없다”
국내 1위 건설사인 현대건설 인수 경쟁이 한창이다.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양보 없는 신경전이 불을 뿜고 있다. 지난 2000년 충격적인 부도 사태와 함께 채권단 소유로 넘어간 지 꼭 10년 만이다.

그동안 첩첩산중의 험로를 걸어 온 현대건설의 최근 행보는 거침이 없다. 단순히 옛 위상을 되찾는데 그치지 않고 건설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리드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중겸(60) 현대건설 사장은 이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이끌어 온 주역이다. 김 사장은 회사 매각과 관련해 “경영과 매각은 별개”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현대건설이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탄탄한 회사로 살아났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사장은 “지금 같은 단순 시공 위주의 해외 진출은 수익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춘 선진국형 개발 회사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5일 종로구 계동 본사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작년 취임 후 해외 건설 수주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특별히 해외시장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국내 건설 시장은 100조~120조 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120조 원, 어려울 때는 100조 원 정도가 되죠. 이렇게 전체 파이가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수밖에 없어요.

항상 새로운 길을 앞서 개척해 온 현대건설의 전통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에요. 기업의 계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해외 진출은 꼭 필요해요.

중남미 등 신흥시장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는데요.

중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남미와 아프리카, 독립국가연합(CIS), 동남아로 영역을 넓히고 있지요. 올해 북아프리카 알제리와 카자흐스탄 알마티, 콜롬비아 보고타에 지사를 개설했어요. 중국 지사와 인도 ‘로 코스트 엔지니어링 센터’도 조만간 문을 엽니다.

중국은 시장 진출 자체보다는 해외 진출 파트너로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앞으로 신흥시장에서 플랜트 사업을 하면 중국 기자재를 많이 써야 해요. 신흥시장은 무조건 하이퀄리티 제품보다 소득수준에 맞는 것을 써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려면 중국 업체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요즘은 중국의 자금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개발 파트너로 함께 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롤모델로 해외 업체가 있습니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국내 건설사들도 과거처럼 ‘C(시공)’만 하기 어렵게 됩니다. ‘EPCM(설계·구매·시공·운영)’을 모두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방향으로 가야 해요. 해외 업체들은 각 분야별로 전문화가 잘돼 있지요.

가스 부문은 일본 도요엔지니어링이 유명하고, 토목건축은 미국 벡텔, 물과 전력은 프랑스 수에즈가 앞서 있어요. 현대건설도 앞으로는 각 사업 부문이 하나의 독립적인 회사로 움직여야 해요. 내년이면 플랜트 사업본부 매출이 3조 원 정도 됩니다. 국내 업계 10위인 현대산업개발을 앞서는 규모죠.

해외 사업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Special Interview]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시공 위주 해외 진출로는 미래가 없다”
내년이면 해외 사업이 60%, 국내 사업이 40%가 됩니다. 또 플랜트 건설과 일반 건설로 나누면 플랜트 쪽이 55%로 비중이 더 커져요. 회사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체질이 산성에서 알칼리로 바뀌는 것과 같아요.

원자력 건설에서도 좋은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원자력 사업은 현대건설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국내에서 지은 원자력발전소 20기 가운데 12기를 현대건설이 지었어요. 현재 건설 중인 8기 중 6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아부다비에 원전 4기를 짓고 있지요. 국내외를 합쳐 1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동시에 시공하고 있는 셈이죠. 세계적으로 이 정도 능력을 갖춘 곳은 현대건설뿐이에요.

원자력사업본부를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자력사업본부의 타깃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예요. 국내 원전 입찰 제도는 설계·시공·구매를 각각 분리해 발주하는 방식이지요.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를 모두 묶어 일괄 발주합니다.

원자력사업본부를 새로 만들면서 기존처럼 시공만 해서는 안 되고 설계·시공·구매, 장기적으로는 운영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선언했어요. 현대건설에서 아직도 시공만 하는 곳은 원자력본부가 유일해요. 엔지니어링 능력을 키우기 위해 설계 직원을 200명으로 계속 늘리고 있어요.

또 관심 있는 다른 분야가 있습니까.

원자력 외에도 물 산업과 해양 사업이 유망하다고 봅니다. 최근 흐름을 보면 발전 쪽에서 정부 재정 사업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민간 자본으로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정부에 파는 독립발전사업자(IPP) 시장으로 가고 있는 거죠. 물도 마찬가지예요. 민자담수발전(IWPP)이 활성화되고 있어요. 지구온난화로 북해와 남극이 녹으면 새로운 해상 자원 개발을 위해 해양 플랜트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해외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해외에 진출하면 수익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엔지니어링 기반이 없는 업체들은 요즘 수주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수익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해외 플랜트 사업을 하면 국내 업체들은 ‘코어 프로세스 라인’을 하지 못하고 주로 유틸리티 기반 시설(U&O)을 맡아요.

설계와 구매, 운영은 유럽이나 일본 업체가 다 하고 국내 건설사는 시공 파트너로 들어가는 게 냉정한 현실이죠. 이런 분야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중국·인도·터키·이집트에 아주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고부가가치 핵심 분야를 하려면 엔지니어링 역량이 뒷받침돼야 해요.

엔지니어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6만 배럴 생산능력의 정유 공장을 짓는다고 가정하죠. 엔지니어링 능력이 있으면 최적합 설계를 통해 면적을 줄일 수 있어요. 그러면 부지가 적게 들고, 토목공사와 배관 공사도 줄어들어요. 만약 엔지니어링 능력이 없어 아웃소싱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들은 리스크를 안으면서까지 최적화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서 큰 차이가 생기는 거예요.

구매도 마찬가지죠. 구매 능력은 퀄리티나 성능에서 문제가 안 되지만 가격은 더 싼 ‘얼터너티브 벤더’를 찾아내고 검증하는 데서 판가름 납니다. 좀더 핵심 분야로 가기 위해서는 국내 업체들이 기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1970~80년대 시공 위주로 컸지만 이제는 ‘EPCM’으로, 개발사로 마인드를 모두 바꾸고 공부를 새로 해야 해요.

교육 투자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현대건설은 ‘건설의 사관학교’로 불립니다. 과거 시공의 사관학교였다면 이제는 EPCM, 개발의 사관학교가 돼야죠. 그동안 구로동에 있는 인력개발센터에서 형틀공·철근공·용접공 교육을 주로 해 왔지요.

취임하고 나서 인재개발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엔지니어링과 매니징으로 포커스를 옮겼어요. 올해 전체 교육 예산도 5배로 대폭 늘렸지요. 회사의 모든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직원들의 해외 유학도 늘리고 있어요.
[Special Interview]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시공 위주 해외 진출로는 미래가 없다”
한국주택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요즘 업계 사정은 어떻습니까.

해외 플랜트를 할 수 있거나 모기업의 물량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몇몇 업체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이죠. 협회 모임에 가면 한때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왔고, 일에만 파묻혀 열심히 살아 온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기가 죽어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국내 건설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16~17% 정도 됩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이 비중은 어차피 선진국 수준인 10%대까지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도로·철도·발전 등 인프라 구축이 어느 정도 끝나 성장 여지가 적은 게 분명해요.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새로운 대체 수요가 생깁니다. 주택 시장만 해도 주택 보급률이 100%에 달하니 이제 주택 시장은 끝났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어디서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 아파트는 국민소득 몇 백 달러 수준일 때 만들어진 구조를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어요. 벽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벽식 구조죠. 제 기억으로는 1970년대 가락시영아파트를 지을 때 가장 빠른 시간에 저렴하게 짓기 위해 터널 공법으로 벌집처럼 쌓아올리면서 시작된 것 같아요.

천장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에 비해 국내 아파트는 천장이 매우 낮아요. 주어진 높이 규제 안에서 최대한 많은 가구를 집어넣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주거 문화라는 게 없어요. 그냥 규제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하나씩 만들진 것뿐이에요. 이제는 주거도 진화가 필요해요. 삐삐에서 휴대전화, 스마트폰으로 이동통신 수단이 진화했듯이 주거도 바뀌어야죠. 언제까지 2.7m라는 높이 규제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까.

벽 구조도 일반 빌딩처럼 가변형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라멘 구조로 가야 해요. 자녀를 키울 때는 방이 여러 개 필요하지만 결혼해 분가하고 나면 벽을 터서 넓게 쓰고 싶어집니다. 지금은 벽식 구조라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큰 집으로 이사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죠.

새로운 주거 형태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육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찾게 됩니다. 건물도 외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죠. 군대 막사처럼 삭막한 아파트 외관도 달라져야 해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아파트를 보면 다 놀랍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인데 왜 이런데 사느냐는 거죠.

이렇게 보면 주택 사업도 앞으로 굉장히 밝아요. 엄청난 교체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다만 기존의 틀로는 기회를 만들 수 없어요.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 나와야 해요. 업계가 앞장서 새로운 가능성을 자꾸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평사원에서 CEO까지 오르셨는데요.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지요.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600달러였어요. 회사가 빠르게 커진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했어요. 30대에 모두 소장이 되고 사장에도 올랐죠. 정주영 전 명예회장님은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말씀하셨어요.

요즘에도 직원들이 ‘안 해 봐서 못한다’고 하면 ‘현대건설이 언제 해 본 걸 해 봤느냐’고 반문합니다. 2000년 부도가 나고 출자 전환할 때가 가장 슬펐던 순간이에요.

끝으로 성공한 CEO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항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해요. 육체적인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1975년 정 명예회장님이 울산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기 시작할 때 환갑이셨어요. 60세가 넘어 오늘의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그룹·현대그룹 등을 일구신 거죠.

정신적 나이가 중요합니다. 엉덩이가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변화의 주삿바늘이 부러져 버리고 말아요. 그런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약력 : 1950년 경북 상주 출생. 1976년 고려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6년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 입사. 1998년 현대건설 이사. 2002년 현대건설 상무. 2003년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장. 2006년 현대건설 주택영업본부장. 2007년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2009년 현대건설 사장(현). 2010년 한국주택협회 회장(현).

대담=김문권 편집위원
정리=장승규 기자 skjang@hn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