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환율 전쟁의 폭풍전야다. 미국은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서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저평가된 위안화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럽연합(EU) 등의 다른 국가들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환율 주권론을 내세우며 급격한 환율 인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최근 있었던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달러화 공급을 확대하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잘못됐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에 대대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각국이 환율 전쟁을 벌이는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미국과 일본은 글로벌 금융 위기 초기에 경쟁적으로 재정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 부채 규모와 재정 건전성을 고려할 때 더 이상의 지속적인 재정 확대는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는 모두 제로 수준까지 인하해 금리 조정은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이 생각할 수 있는 정책은 환율 부분이다. 더욱이 글로벌 경제 위기 중에서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고성장을 질주하고 있는 중국 위안화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수출 의존 경제인데, 위안화가 평가절상되면 중국 수출이 크게 타격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급격한 위안화 절상은 과거 1980년 말 일본의 예를 보았을 때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치명타를 날릴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 편에서 보면 세계경제의 3대 강국인 미국·중국·일본의 통화 및 환율 정책에 대해 불만이 매우 크다. 먼저 미국은 실망스럽다. 기축통화는 기본적으로 가치가 안정돼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지금처럼 스스로 가치 절하를 유도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기축통화로서의 자격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마구 찍어낸 달러가 개발도상국으로 유입되면서 해당되는 개도국의 화폐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또한 대량으로 유입된 달러가 언제 빠져나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축통화로서의 온갖 혜택을 향유했으면서도 지금 와서 자기만이 살겠다는 하는 미국의 행동은 무책임해 보인다.
중국은 이해할 수 없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10년 이상 지속된다는 점은 위안화 환율이 경제의 펀더멘털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중국은 수출 기업들의 마진이 적기 때문에 위안화가 절상되면 많은 중국 기업들이 도산할 것이고 이는 세계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많은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환율 보조금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없어진다면 전 세계 차원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
일본은 무모해 보인다.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엔화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근본적인 환율 전쟁의 구도가 변하지 않는 한 일본은행이 아무리 엔화를 풀어도 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일 것이다. 괜한 일에 헛돈을 쓰고 있다.
한잔 마신 생맥주는 금방 깨는 법이다. 한국은 환율 전쟁의 중재자일 수는 있어도 해결사일 수는 없다. 환율 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환율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급격한 외화 유출에 대비한 안전망을 튼튼히 해야 한다. 미국·중국·일본의 환율 정책을 평가하는 일은 우리가 취중에서나 할 수 있는 진담일 뿐이다.
![[경제산책] 환율에 대한 취중진담](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09.1.jpg)
1964년생. 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91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92년 대우경제연구소 금융팀장. 97년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현). 2002년 기획예산처 기금평가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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