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사의 검법

스페인의 투우 경기를 지켜보면 일견 잔인하기도 하고 무자비하게도 보인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소의 정수리에 꽂힌 투우사의 검을 보며 관중들은 승리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필자는 간혹 투우 경기를 지켜볼 때마다 주식시장을 떠올리곤 한다.

우람하고 광폭해 보이는 소와 그 앞에 카포테(붉은 천)를 들고 서 있는 투우사들의 왜소한 모습이 대비되면서 은연중에 싸움의 본질이 악마와 천사의 대결인 양 군중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다.

그래서 투우사가 붉은 천 하나로 소를 이리저리 유인하며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장면에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무시무시한 괴물이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에서 대리 승리에 열광하는 것이다.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군중들이 모여 빚어내는 투자의 행태도 극단적인 국면에 가면 투우장의 황소를 방불케 한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 어떠한 투자의 패러다임이 시작되고 이것이 상당 기간 굳어지고 나중에 그 방향으로 쏠림이 심화되면 어김없이 ‘군중심리’라는 투우장의 황소가 등장한다.

수익률에 굶주리고 주도주에 편승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이 군중들을 사납게 하고 분기탱천하게 하면서 투우장의 소처럼 한바탕 목표물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고 목표를 놓치면 이내 되돌아서 재돌진하면서 투우장은 상당 기간 미친 소의 광폭한 질주가 압도한다.

간혹 투우사가 소를 피하지 못하고 뿔에 받혀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주식시장의 주도주에 편승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는 투자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도주와 정면 승부를 피해야 한다. 주도주의 힘이 충천해 있을 때에는 일단 그 에너지에 순응해야 다치지 않는다. 마치 투우사가 소의 힘이 집중되는 방향으로 천을 흔들어 소로 하여금 관성의 법칙에 의해 한참을 더 달려가 다시 방향을 틀도록 하는 방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소의 힘이 스스로 빠지도록 인내하는 원리와 같다.

성급한 나머지 힘이 충천해 있는 소에 섣불리 검을 들이대다간 검이 부러지거나 휘어서 튕겨나갈 수 있고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도주의 힘이 다할때까지 순응하고 편승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최남철의 투자 X파일] ‘군중심리’ 벗어나자…결론은 ‘실적’
5개 주도군이 이끄는 ‘초강세장’

최근 주식시장의 흐름을 지켜보면 국면별로 주도주군의 순환이 급하고 가파르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에서 시작된 주도주의 맹렬한 기세가 화학주와 지주회사로 전이되고 최근에 기계주로 옮겨붙으면서 화려한 시세를 분출했다.

한꺼번에 5개의 주도주군이 무리를 지어 번갈아 가며 시세를 내는 강세장은 처음 본다. 그만큼 집으로 치자면 기둥과 대들보가 견고한 큰 집을 지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한두 개의 주도주로 끌고 가는 시장은 저력이 약하고 생명력이 길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하고 층이 두터운 주도주군들이 과열을 식혀가며 바통을 주고받으면서 상승하는 모습은 멀리 오래 가기 위한 몸놀림에 틀림없다.

거듭 밝히지만 이번 강세장의 폭과 길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고 아쉬운 대목은 주도주의 순환이 너무 거칠고 숨 가쁘다는 사실이다. 주식의 등락이 너무 힘이 세고 광폭해 마치 투우장의 미친 소를 연상시킨다. 증시에 내재된 에너지가 강하다는 긍정 이면에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강박관념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최근 만나본 전문가들도 작금의 주식시장 움직임에 혀를 내두른다. 시가총액 수조 원, 수십조 원대의 대형 우량주가 매매의 쏠림 현상에 의해 오를 때는 하루에 5%, 내릴 때도 5%씩 요동치니 자칫 잘못 편승했다가는 하루에 10%대의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과거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변동성이 장중에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보았다. 우선 강한 상승 국면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게도 투신권에는 환매의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그 환매 자금의 일부가 자문형 랩어카운트로 회귀하면서 운용사 간에 발생하는 종목 충돌이 그 첫 번째 이유다.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상호 수익률 경쟁도 변동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또 다른 이유는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자문형 랩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부 증권사 영업점에서는 소액의 자금만을 랩어카운트에 맡기고 나머지 자금으로 추종 매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 5억 원의 자금을 가진 투자자가 10분의 1 수준인 5000만 원만 랩어카운트에 맡기고 나머지 자금으로 자문사가 사는 종목을 따라서 사는 추종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랩에서 사는 종목에 대해 10배의 승수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문사가 그 종목을 매도할 때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멀쩡한 대형 우량주의 주가가 장중에 널뛰기하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무시무시한 변동성을 지켜보며 필자는 군중심리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본질상 주식 투자의 세계는 똑똑하고 현명한 5%를 위해 95%의 군중이 희생하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한다.

필자가 강연회에서 만나 본 많은 투자자들의 경우 장기 투자에 성공한 비율이 1%에도 못 미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군중심리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묻지 마 투자’를 하던 개인 투자자가 랩어카운트에 가입해 기관투자가의 매매 행태를 추종하다 보면 가치 투자와 장기 투자에 눈을 뜰 수 있는 정(+)의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진일보한 투자 행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추종 매매가 극성을 부리는 현실에서 자칫 자문사들의 운용에 부담을 안겨줘 운용 성과 면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운용사들도 장기 투자 유도해야

필자는 최근의 자문형 랩의 인기와 주식 카페를 통한 주식 ‘열공’의 분위기를 매우 긍정적인 변화로 보고 있다. 펀드 운용의 획일성과 고답성(高踏性)에서 벗어나 개인 투자자의 다양한 욕구(Needs)를 맞춤형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주식시장의 저변을 확대하고 운용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몇 년 안에 도입될 본격적인 헤지 펀드 시대의 서막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대로 가다간 자문형 랩이 과거 투신권에서 반짝 인기를 끌다가 소멸한 스폿 펀드(Spot Fund)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랩 상품의 성격과 기간을 다양화하고 무엇보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군중을 이끌어야만 운용사, 고객, 판매 증권사가 윈-윈할 수 있다.

지금처럼 무분별한 추종 매매와 추격 매매의 수단으로 랩 상품이 이용당해서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게 성장형 랩, 가치형 랩, 우량주 장기 투자 랩, 중소형주 랩, 코스닥 랩 등으로 성격을 다양화하고 운용 기간도 다양하게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추종 매매에 따른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랩 상품의 매매 내역을 월간 단위로 공개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또한 최근의 종목 간 변동성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기업의 가치와 실적을 바탕으로 남보다 한 발 먼저 선취매해 기다리는 전략이 유효하다. 가치와 실적이 우량한 종목군이 군중심리에 의해 주가가 크게 왜곡돼 있다면 이보다 더 환상적인 투자 기회가 어디 있을까.

따라서 이미 많이 오른 종목을 추격하기보다 남들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종목군을 미리 선점해 기다리면 결국 큰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더욱이 금년의 실적은 잊고 내년, 내 후년의 실적이 현저히 좋아지는 종목 가운데 그동안 시장에서 소외된 종목 위주로 대응하는 것이 변동성 장세에서 살아남는 길이자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다.

또 주도주군 가운데 상당 기간 조정을 거쳐 가격 메리트가 충분히 생긴 종목군을 미리 선점하는 방법도 훌륭한 대응이 될 수 있다. 명심할 점은 개인들이 뒤늦게 가담한 주도주군들은 절대로 그냥 올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인들이 지쳐서 투매하는 ‘개미 털기’ 국면을 반드시 거치고 나서야 재차 부상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쳐 날뛰는 소에 끌려 다니지 말고 소의 힘을 역이용해 승리하는 ‘역시장 접근법(Contrarian Approach)’이 그 어느 때보다 유용한 투자 기법이 될 수 있다. 투우사의 냉정함과 절제된 검법만이 승리를 안겨준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자.


[최남철의 투자 X파일] ‘군중심리’ 벗어나자…결론은 ‘실적’
최남철 증권 칼럼니스트

‘꿈의 기울기에 투자하라’의 저자. 1988년 국민투자신탁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푸르덴셜자산운용 등을 거쳐 현재 새로다시투자클리닉(cafe.naver.com/serodasi)을 운영하고 있다
seroda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