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9월 21일 농림수산식품부 채소특작과 직원들은 고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서울로 돌아왔다.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농림부가 수해 대책을 세우는 곳도 아닌데 왜 농림부 직원들은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업무에 복귀했을까.

문제는 배추였다. 9~10월 배추 주산지인 강원도 고랭지에 큰비가 내려 배추 작황이 우려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농림부 직원들은 한가하게 연휴를 즐길 수 없었다. 강원도 고랭지의 배추 작황이 좋지 않으면 9~10월 배추 값이 급등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9~10월에 나오는 배추는 90% 이상이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배추는 섭씨 영상 25도가 넘으면 자라지 않아 9~10월에 수확하는 배추의 생육기인 7~8월에 배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고랭지로 제한된다.
배추값 인상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0409....
배추값 인상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00409....
농림부 직원들, 고향으로 향하던 발길 돌려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농림부가 온갖 비난의 표적이 됐지만 남모르는 곳에서 고생한 공무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기상 상황이 급변하면서 배추 수급 여건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부정확한 가격 예측을 근거로 미온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하의 농업관측센터는 9월 1일 내놓은 관측월보에서 9월 배추 가격이 8월 대비 약보합세, 즉 소폭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때 농업관측센터가 예상한 9월 평균 배추 가격은 포기당 2220원이었다.

9월 초 태풍 곤파스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자 농업관측센터는 9월 15일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 배추 값 전망치를 5500원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2220원이나 5500원이나 한때 1만5000원에 달했던 실제 배추 가격의 흐름과 동떨어진 건 마찬가지다.

농업관측센터도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원도 고랭지에 호우가 내린 것은 9월 21일이었으므로 9월 1일과 15일의 가격 전망에서는 집중호우로 배추 생산이 평년 대비 40%나 감소하는 사태를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중호우로 수급 여건에 변화가 생겼으면 다시 수정 전망치를 내고 그에 근거해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 정확한 예측을 기반으로 미리 물량을 확보했으면 가격 상승 폭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농업관측센터는 매달 1일 한 번만 가격 전망을 내는 것이 원칙이고 9월의 경우 이례적으로 15일 수정 전망을 냈다고 밝혔지만 농산물 가격은 기상 여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칙과 관행만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전망 자체의 오류도 있었지만 시스템상의 문제도 있었던 셈이다.

가격 예측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0월 11일 농업관측센터장을 교체하고 연구 인력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 예측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개선 방안도 만들 계획이다. 또 날씨에 따른 가격 변동을 예측하기 위해 기상청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기상 예측 자료도 받기로 했다.

늦게라도 농산물 가격 예측 시스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배추 가격은 9월 말을 고비로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농림부는 배추 값이 11월에는 도매가 기준으로 포기당 2000원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에는 농림부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기를 국민들은 바란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