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픽셀베리 대표

픽셀베리는 세 가지 면에서 특이한 스타트업이다. 우선 패션을 주제로 한 소셜 게임이라는 분야에 처음 도전한 회사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중국·일본·미국 등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창업자 김태훈 대표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세 번째 회사를 차린 인물이고 더욱 놀라운 점은 해외의 유명 벤처캐피털들이 이 대표가 시작하는 사업마다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 걸출한 인물들의 만남 = 김 대표는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미국 아이비리그의 코넬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까지 받고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에서 근무했다. ‘엄친아’라 불릴 만하다.

좋은 직장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5년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회사를 차렸다. 2008년에는 누리엔이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올해 픽셀베리를 세웠다. 5년간 세 번째 창업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패션 소셜 게임 ‘개척’…해외 진출
그가 창업할 때마다 화제가 됐었다. 국내 스타트업은 좀처럼 하기 힘든 대규모 투자를 해외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2005년 리얼타임월드코리아를 세울 때는 3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누리엔 때도 25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과거 두 번의 창업에서 그는 많은 투자를 받았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그에게 투자했던 벤처캐피털들이 여전히 지금도 그와 그가 세운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도 지난 두 번의 창업 경험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누리엔에서 축적한 3차원(3D) 그래픽과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경험, 고민이 픽셀베리의 마이스타일에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픽셀베리를 설립하면서 대용량 데이터베이스(DB)를 관리하고 사이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EA코리아에서 수석엔지니어로 있던 정재필 씨를 설득해 같이 창업했다. 정재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1990년대 중반, 불과 열세 살 때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 천재 개발자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KAIST를 나온 그는 이후 네이버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게임 업체 블루캣스튜디오의 CTO를 거쳐 EA에서 근무했다. 김 대표는 “국내 최대 포털에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담당해 본 정 CTO가 없었으면 픽셀베리를 창업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뢰를 보이고 있다.

△ 성공적인 첫발 =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만든 패션 소셜 게임 ‘마이스타일’은 9월 15일 네이트 앱스토어를 통해 선보이자마자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 첫 주에 단숨에 인기 순위 2위에 오르는 등 한 달 동안 계속해 인기 게임 5위권을 지켰고 10월 둘째 주에는 드디어 인기 게임 1위에 올랐다.

한 달여 기간 동안 10만여 명이 가입했고 지금까지 150만 개에 달하는 옷이 만들어졌다. 김 대표는 “1초에 1개씩 사람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만드는 옷이 온라인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스타일은 9월 18일 페이스북 중국어 버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11월 말에는 일본에 진출하고 올 연말께 페이스북 영어 버전으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중국의 카이신이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본의 모바일 소셜 게임 업체 DeNA가 올해 야후재팬과 손잡고 야바게(Yabage)라는 소셜 게임 플랫폼을 오픈할 예정인데 우리도 야바게 플랫폼 위에 퍼블리싱 파트너와 손잡고 급부상하는 일본 소셜 게임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패션을 주제로 한 소셜 게임 = 100개가 넘는 소셜 게임들이 경쟁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인기 게임은 고작 5~6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거의 고정적이다. 마이스타일이 부상한 이유는 뭘까.

패션을 주제로 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도 아바타 옷 갈아입히기 등 유사한 서비스는 많았었다. 온라인 게임 중에는 바닐라캣처럼 의상을 주제로 한 게임도 있었다. 마이스타일의 차별점은 뭘까.

“마이스타일은 온라인에서 개개인이 자신만의 의류 매장을 열 수 있고 자신의 브랜드를 내걸고 패션쇼를 열 수도 있게 해 줍니다. 다른 사람의 매장에 들어가 옷을 사 입거나 옷을 팔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살린 옷을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브랜드를 키워서 오프라인 브랜드로 론칭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죠.”

마이스타일은 패션 자체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방점을 찍는다. 마치 쇼핑하듯 매장을 둘러보고 서로 상대방이 제작한 옷도 선물하고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도 만든다.

기존 누리엔의 엠스타와 캐릭터를 공유하고 있지만 소셜 게임이라는 분야로 장르를 명확하게 설정했다. 소셜 게임에 맞춰 눈높이도 낮췄다. 엠스타가 사용했던 언리얼 3D엔진을 쓰려면 대용량 클라이언트를 다운로드해야 하고 그러려면 용량과 시간 면에서 사용자들에게 진입 장벽을 주게 된다. 픽셀베리는 지난 2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이를 웹브라우저에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이스타일은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확실하게 설정했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분신인 캐릭터를 입맛대로 꾸미고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다양하게 가꾸는 것은 아주 오래된, 검증받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스타일은 이를 3D 그래픽으로 업그레이드했고 사용자제작콘텐츠(UCC)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패션을 구현했다. 패션을 주제로 대화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패션쇼를 열고 자신의 브랜드를 키우는 것은 소셜 네트워크와 기존 소셜 게임의 요소를 도입한 부분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패션 소셜 게임 ‘개척’…해외 진출
△ 다양한 플랫폼으로 세계무대에 도전 = 다양한 플랫폼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마이스타일이 가진 최대 장점 중 하나다. 세계시장에 통할만한 패션이라는 분야에서 소셜 게임을 하이 퀄리티로 구현한 것이다.

픽셀베리는 이미 구축돼 있는 SNS 플랫폼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소셜 게임으로서 마이스타일을 고안했다. 힘들게 자기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겠다는 것이다. 징가나 팜빌 등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 게임들의 기본적인 모델을 충실하게 따랐다.

처음부터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마이스타일에서 모든 구매와 관련된 행위는 해당 플랫폼의 재화를 따를 겁니다. 이를테면 싸이월드 플랫폼에서는 도토리로 마이스타일의 사이버 머니를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죠.”

김 대표 본인이 5년여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것도 마이스타일이 갖는 장점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비디오 게임 수준의 그래픽 개발, 소셜 네트워크, 온라인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과 서비스 기획 노하우를 쌓았다.

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삼성전자에서 보냈던 3년을 꼽는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해외 인재 채용을 위해 기치를 높이 들던 시절인 2002년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에 입사한 그는 상품 기획을 맡으면서 한국의 휴대전화 비즈니스가 놀랍도록 비약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그가 2002년에 처음 휴대폰사업부 상품 기획팀에 갔을 때는 삼성전자의 해외시장, 특히 미국에서의 지명도는 제로에 가까웠다고 한다. 아직도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전자레인지(Microwave) 만드는 회사 아냐’라고 생각할 때였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돌이켰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의 숱한 비즈니스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세계무대에서 비약적으로 도약하는, 그것도 가장 최전선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삼성전자에 있으면서 한국을 알게 되고 스마트폰의 세계와 모바일의 가능성, 소셜 네트워크와 온라인 게임에 대해 배웠습니다. 제가 지금 사업할 수 있는 역량의 상당수는 삼성전자에서 배운 겁니다.”

삼성전자에서 배운 해외시장의 경험과 자신의 창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최고의 기술자 정 CTO와 만난 김 대표는 패션 소셜 게임으로 해외시장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임원기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