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다시 부활하나

지난 2005년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벌어졌다. 논문 조작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황우석 스캔들’이다. 전 국민적 관심과 각계의 지원 속에 무럭무럭 피어오르던 ‘줄기세포 강국’의 꿈은 허무한 결말을 남긴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줄기세포란 단어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됐다. 관련된 이야기만 해도 ‘또 사기 아니냐’는 말부터 나왔다. 하지만 학계 전문가들 가운데 ‘황 박사를 비롯한 당시 한국의 기술 수준이 세계 최고’였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예전과 같은 폭발적 지지는 없더라도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와 실험은 꾸준히 진행돼 오고 있다. 한때 위축돼 있던 연구 분위기는 배아줄기세포들을 검증해 은행을 만들고 국제 줄기세포 포럼, 아시아태평양 줄기세포 네트워크 등에서 적극 활동해 국내외의 신뢰를 회복한 상태다.

연구 면에서도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 수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고 성체줄기세포의 경우 난치성 질병을 치료하는 원천 기술 확보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도 한국이다.

5년 전의 황 박사 신드롬은 줄기세포란 단어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줄기세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210여 가지의 세포 가운데 하나로, 머리카락·심장·피부 등 인체의 모든 기관 세포를 만들 수 있는 세포다.

상처가 난 후 새 살(새 피부세포)이 돋는 것도 피부 속에 있는 줄기세포 덕분이다. 그래서 줄기세포는 ‘만능세포’로 불린다. 병든 부위의 세포를 줄기세포로부터 만든 새로운 세포로 대체해 주는 ‘세포 대체 치료’가 미래 재생의학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다.

미래 재생의학의 꽃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의 범위는 상상 이상으로 매우 넓다. 세포의 이상과 노화로 인해 생기는 질병들, 예를 들어 암이나 퇴행성관절염·심근경색·난청·뇌졸중·당뇨·치매 외에도 얼마든지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가 가능하다. 자연히 관련 시장 규모도 엄청나게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며, 향후 100조 원가량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독일·중국 등이 국가적 과제로 팔을 걷는 이유다.

줄기세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그 종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줄기세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 역분화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된 상태의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인데, 윤리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논란을 일으킬 요지가 많다. 배아를 최초의 인격체로 본다면 줄기세포 분리 후 버려지는 배아에 대한 윤리적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줄기세포 중 가장 왕성한 분화력을 보여 기형종(암 등)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큰 것도 배아줄기세포의 단점 중 하나다. 뛰어난 분화력은 황 박사를 비롯한 초기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배아줄기세포에 매달렸던 배경이기도 했다.

성체줄기세포는 골수·제대혈·지방 등에서 분리해낸 줄기세포를 말한다. 최근 기술의 발달로 배아줄기세포의 분화력과 거의 비슷해졌고 윤리적 측면에서도 자유로워 연구가 급진전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역분화줄기세포(IPS)는 성체의 체세포로부터 역분화 인자를 이용해 만든 줄기세포로 2007년 일본에서 처음 분화에 성공했다. 일본은 현재 역분화줄기세포를 국책 사업으로 지정해 한 해 600억 원이 넘는 돈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05년 잘나가던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선진국들은 줄기세포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미국과 일본은 엄청난 연구비 투자로 기초와 응용 부문 모두 강자다. 미국은 우리의 30배가 넘는 연구비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10월 8일에는 세계 최초로 제론(Geron)사가 척추 손상 환자에게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도 2005년 이후 관련 연구비 지원이 거의 제자리에 머무르다가 2009년 정부의 줄기세포 활성화 방안 이후 50억 원이 증액돼 450억 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Special Report] ‘황우석 스캔들’ 이후 5년… 연구 분위기·실적 ‘눈에 띄네’
재정적·제도적 지원 절실

국내외적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관련 학계와 기업의 노력으로 계속돼 왔다. 세계적으로 임상시험 단계에 와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는 231건인데, 이 중 상업화가 임박한 2~3상 시험 건수는 27건이다.

미국이 13건으로 가장 많고 한국이 스페인·독일과 함께 3건으로 2위를 달리고 있다. 파킨슨병, 척추 손상 등에 쓰이는 도파민 신경세포, 올리고덴드로사이트(희소돌기아교세포), 가바 신경세포 분화 기술 등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는 연세대 김동욱 교수팀(배아줄기세포에서 도파민, 가바 신경세포 및 올리고덴드로사이트 분화 기술), 한양대 이상훈 교수팀(배아줄기세포에서 혈관내피세포 분화 기술), 고려대 김종훈 교수팀(배아줄기세포에서 간세포 분화 기술), 제일약품 조병수 박사팀(배아줄기세포에서 도파민 신경세포 분화 기술) 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서울대 김효수·박영배 교수팀이 심근경색 치료 분야에서, 연세대 박국인 교수팀이 척추 손상과 허혈성 뇌질환 등의 임상에서 앞서가고 있다. 역분화 연구는 차의과대학 김광심 교수팀, 서울대 김효수·박영배 교수팀이 단백질을 이용한 기술 개발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05년의 황 박사 스캔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국내 줄기세포 연구를 다양하게 만든 토대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배아줄기세포에 머물러 있던 연구 분야가 안전성과 윤리성에 대한 고찰 등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로 대폭 이동했기 때문이다.

성체줄기세포의 최대 장점은 초창기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성체의 골수, 지방 등에서 분리하기 때문에 윤리 면에서 자유롭다. 또한 자신의 몸에서 분리해 배양한 줄기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도 거의 없다.

줄기세포 시장은 연평균 24.5%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12년 32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줄기세포 시장은 성체줄기세포가 180억 달러, 제대혈 줄기세포가 93억 달러, 배아줄기세포가 51억 달러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기술(IT) 이후의 미래 성장 엔진으로 꼽히는 분야는 단연 바이오기술(BT) 산업이다. 그중에서도 세계는 지금 줄기세포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지금도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 수준은 세계 최고다. 현재의 실력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절실한 건 역시 재정 지원이다. 한국의 절대 연구비는 미국의 30분의 1, 일본의 5분의 1도 안 된다. 투자 규모로는 세계 10위 권 안에도 들지 못하는 실정이다.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로선 줄기세포를 이용한 국내 병원 치료가 불가능하다. 치료용 줄기세포를 ‘의약품’으로 인정해 약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이 경우 1~3차의 임상 결과가 나와야 하는 만큼 치료 기술 발전이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현재 미국 등에선 환자 본인의 의사와 전문의의 판단이 일치되면 자유로운 줄기세포 치료가 가능하다. 줄기세포를 화학약품과 같은 의약품이 아닌 의사의 의료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