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커우(호적)제 개혁 나선다

중국이 도농(都農) 차별의 원인으로 지목받아 온 후커우(戶口·호적)제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9월 중국의 3개 연구 기관이 잇따라 후커우 개혁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10월 15일 개막하는 중국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당 대회에서 윤곽을 보일 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에 후커우 개혁이 들어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이라는 분석이다.

주민들의 거주 이전을 제한하는 후커우제를 뜯어고치는 건 △공정사회를 향한 진전이라는 의미 외에도 △소비 진작과 △금융 산업 발전을 비롯해 △노동력 부족 해소 방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후커우제를 도입한 1958년 이후 반세기 만에 후커우 개혁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중국] ‘농민 출신’ 이유 차별… ‘폐지’ 이구동성
◎ 커지는 개혁 목소리 = 중국사회과학원 재정무역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2010~ 2011 중국재정정책보고서’를 통해 “후커우 제도 때문에 겉만 도시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도시가 유입된 농촌 주민과 그들의 자녀를 비롯해 모든 주민들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민대학경제연구소도 지난 9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도시인구 증가분의 71.8%는 농촌 후커우를 갖고 있다”며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영구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높은 도시화율도 불완전한 도시화를 의미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발전연구기금회가 같은 달 발표한 ‘중국발전보고 2010’도 “중국 도시에 사는 거주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농촌 후커우를 갖고 있다”며 “중국의 도시는 반도시화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3개 기관의 보고서가 일제히 후커우 개혁을 건의하고 나선 것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 직전 경제관찰보와 남방도시보 등 중국 13개 주요 신문들이 공동 사설을 통해 후커우 제도가 위헌이라며 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것을 떠올리게 한다.

◎ 짙어지는 후커우 그림자 = 후커우는 중국 정부가 인민들을 관리하는 정치·사회체제의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농촌 후커우와 달리 비농촌 후커우, 그중에서도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 후커우는 중국인들에겐 보장성 보험과 같다.

후커우에 따른 차별은 갖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중국 화이트칼라들의 홍콩 출산 붐이 대표적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 후커우가 없어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에게 홍콩 후커우를 안겨주자며 홍콩행을 택하고 있는 것. 지난해 대륙 출신 부모가 홍콩에서 낳은 신생아는 2만9766명에 달했다.

홍콩에서 태어난 신생아 10명 가운데 4명의 부모가 대륙 출신인 것. 도시 후커우를 얻어주겠다는 불법 브로커들도 극성이다. 중국은 과학 기술 인재 등 국가에 중요한 사람이거나 해당 도시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경제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는 도시 후커우를 준다. 이 같은 제도를 편법적으로 이용해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베이징 후커우를 불법 중개하며 109만여 위안을 챙긴 4인조 브로커단이 적발됐다.

도시 후커우가 없다는 이유로 대도시 대기업이 제시한 고액 연봉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 중국 진출 외자기업들은 이 때문에 도시 후커우를 제공할 수 있어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중국 특유의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베이징시 후커우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베이징 내 대학 입학시험 합격선도 다르다. 대입 신입생에 대한 지역별 쿼터 때문이다. 베이징 A대학에서 입학자를 배정할 때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학생은 10명, 톈진은 5명, 산둥은 5명을 뽑는 식이다.

결국 베이징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다른 지방 출신은 베이징 출신보다 시험 성적이 훨씬 좋아야 한다. 입학시험 커트라인이 쿼터에 따른 경쟁률 때문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베이징시 정부는 또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해 값싼 임대 아파트와 경제적용방이라는 저가의 소형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는데 베이징 후커우가 없으면 이를 매입할 수 없다. 그 대신 톈진·충칭·항저우·청두·우한 등 일부 지방정부는 일정 면적 이상 주택을 구입하면 대도시 후커우를 준다고 선전한다.

◎ 후커우 개혁 효과는 = 후커우는 현대판 신분의 대물림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조화사회를 국정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후커우제도에 개혁의 칼을 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후 주석이 지난 9월 주장한 ‘포용성 성장(Inclusive growth)’이란 개념과 맥이 통한다.

후 주석은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의 혜택을 모든 인민에게 확산하고 경제와 사회 발전 간에 균형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의 덩위원(鄧聿文) 부편집인은 포용성 성장 개념이 12차 5개년 계획에 삽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차 5개년 계획에 후커우 제도 개혁이 들어갈 것이라는 호주 맥쿼리증권의 전망과도 무관하지 않다.

후커우 개혁은 수출에서 소비로 성장 동력을 옮기려는 성장 방식 전환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도시에서 농촌 후커우를 가진 주민들의 복지 수준이 향상됨으로써 이들의 소비 씀씀이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노동자를 소비자로 변모시키는데 도움을 준다는 얘기다.

노동력 부족을 덜어주는 효과도 기대된다. 광둥성 정부가 2012년까지 우선 농촌 출신 근로자 180만 명에게 도시 후커우를 발급해 주기로 한 게 이 때문이다. 광둥성은 약 200만 명의 노동력이 부족한 것으로 추산된다.

광둥성 정부는 우선 1000만 명에 달하는 농촌 출신 근로자를 대상으로 교육 수준과 직장 경력 등 일정한 심사 평가를 거쳐 중소 도시의 후커우를 발급해 줄 계획이다.

후커우 개혁은 도시로의 인구 이동을 가속화함으로써 금융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천즈우 예일대 교수는 농촌 인구는 대부분 가족 내에서 서로 돕는 금융거래를 해 왔다며 하지만 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금융 안전망을 가족보다 시장에서 찾게 되기 때문에 금융 산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재정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후커우 제도를 단계별로 확대해 나가는 절차를 밟아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왕다번 화둥사범대학 교수는 “대도시들은 교육·주택·의료·서비스 등 사회복지를 늘리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든 이주 근로자에게 도시 후커우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 후커우 개혁사

중국에서 후커우가 처음 사용된 것은 진나라 헌공(헌공, BC 375년) 때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성곽도시가 기본이었고, 성곽 안에 사는 사람은 도시민, 밖에 사는 사람은 농민으로 엄격히 구분됐다.

현대에 이르러 후커우가 1958년 후커우 등기조례 시행으로 부활된 이유는 농민을 농촌지역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였다. 농민이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식량 생산의 확보를 노렸다는 설명이다. 사회불안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도 작용했다.

후커우제 실시로 모든 국민은 기관·단체·기업·학교 등의 ‘단위’에 속하게 됐다. 이 단위가 위치한 곳에 따라 도시 호적과 농촌 호적으로 나뉜다. 초·중등교육에서부터 주거·의료·식료품 배급 등은 소속 단위에서 행해진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는 생활할 수 없다. 한 자녀 갖기 정책 등 인구 계획이나 주민증 여권 등의 발급은 후커우에 근거해 이뤄진다. 이를 관리하는 곳은 각 지역의 공안(경찰)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후 후커우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거주 이전을 묵인해 준 것이다. 외자기업을 도시로 유치하면서 값싼 노동력 유입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소속 단위가 책임지는 식료품 배급 제도가 폐지되고 어려움에 빠진 농촌에서 농민들의 유동화가 시작된 것도 이유다.

하지만 농민들과 이들의 자녀는 도시에서 교육을 받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도시민들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 양로보험 혜택 등도 받지 못한다. 지금 논의되는 후커우제 개혁은 이 같은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