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권사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 10인에게 현대건설 인수 시 시너지 효과, 해외 수주 능력, 자금력, 경영 능력, 명분 등에서 앞서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M&A는 ‘자본주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현대 경영의 핵심 요소다. 그만큼 치열하고 냉혹한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간의 현대건설 인수전은 지난 9월 24일 현대건설 채권단이 매각 공고를 내면서 본격화됐다.
3일 뒤인 9월 27일 현대차그룹이 입찰 참여를 선언했고 현대그룹도 10월 1일 독일의 하이테크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 M+W그룹을 전략적 투자자로 삼아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오는 12월 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향후 2~3개월간 양측의 공방이 불을 뿜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문은 현대그룹이 열었다. 처음부터 강도가 세다. 지난 9월 21일부터 이례적으로 TV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광고에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는 카피를 사용했다.
10월 4일에는 24개 중앙 일간지에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특정 기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현대건설 인수전의 경쟁 상대인 현대차그룹을 겨냥한 광고다.
현대그룹의 공세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명분을 내세워 자금력 등의 열세를 극복하겠다는 의도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단적으로 양 그룹의 규모만 비교해 봐도 현대그룹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재계 순위에서 현대차그룹은 2위, 현대그룹은 21위였다.
자산 규모를 보면 현대차그룹이 100조7000억 원인데 비해 현대그룹은 12조4000억 원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의 1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 자산 면에서도 현대차그룹이 훨씬 유리하다. 현대차그룹은 약 3조5000억 원으로 예상되는 인수 자금을 자체 조달할 예정이지만 현대그룹은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연말까지 대상자 결정해 우선협상
게다가 현대건설이 그룹의 지배구조와 연관돼 있다는 점도 현대그룹이 사활을 걸고 있는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현대아산·현대유엔아이·현대경제연구원의 최대 주주다.
현대상선의 지분 구조는 현대그룹 우호 지분이 42.77%인데 비해 현대중공업 17.60% 등 범현대가가 보유한 지분도 30.97%에 이른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이 범현대가로 넘어간다면 현대그룹으로선 그룹 경영권 확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맞불을 자제하고 있다. 집안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현대건설이 어디로 갔을 때 향후 글로벌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는지 따져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룹 관계자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철저히 경제 논리로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현대제철 일관 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완공한데다 자동차 사업도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 궤도에 오른 만큼 현대건설 인수는 미래 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더욱이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로부터 고품질 철강재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데다, 신소재 개발 및 제철 플랜트 설비 운영 경험 또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건설사인 현대엠코는 자동차 공장 및 설비, 빌딩 유지·보수 관리에 특화하고 현대건설은 플랜트·토목·엔지니어링 부문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곳곳에 글로벌 생산설비와 8000여개 판매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현대건설의 ‘글로벌 톱10’ 진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현대건설 M&A가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전문가들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에서 드러난 ‘승자의 저주’가 재현될 가능성도 걱정한다.
2006년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조 원이 넘는 막대한 인수 자금을 무리하게 끌어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러나 이후 대우건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급기야 그룹 전체가 휘청거린 계기가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대건설 매각 과정에서도 채권단뿐만 아니라 인수에 참여한 기업 모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례를 잊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