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국제 반도체·LCD 가격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는 대한민국 수출산업에서 전통적인 ‘효자’였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 속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된 데는 이들 종목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택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와 LCD의 국제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지금 당장은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할 경우 기업의 실적 악화는 물론 회복세를 보이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10월 7일 올 3분기(7~9월) 경영 실적(잠정치)을 발표했다. 매출액 40조 원에 영업이익은 4조8000억 원이다. 매출액 40조 원은 삼성전자 사상 최고치이지만 영업이익이 당초 예상치였던 5조 원보다 적게 나온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와 LCD 가격의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4조8000억 원의 영업이익도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것이며 그 자체로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예상보다 낮은 실적이 나오면서 앞으로 4분기 수익성이 예상보다 더욱 나빠질 것으로 보는 전망돼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말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는 올 2분기 이후 하락세로 돌아선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는 4분기에도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품에 따라선 앞으로 6~22%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 1GB DDR3 D램의 경우 지난 2분기에 2.81달러까지 올랐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44달러로 떨어진데 이어 4분기에는 전 분기보다 22%나 급락한 1.9달러까지 떨어지면서 2달러대가 붕괴될 것으로 관측됐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력 상품인 16GB 낸드플래시메모리도 올 초 4.42달러였지만 3분기에는 4.3달러로 소폭 하락했으며 4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8% 떨어진 3.9달러대에 거래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이닉스 직원들이 이천 공장에서 300mm 웨이퍼 등 생산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20100729..
하이닉스 직원들이 이천 공장에서 300mm 웨이퍼 등 생산제품을 점검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20100729..
반도체, 공급과잉에 따른 하락세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지속됐던 세계 반도체 업체의 ‘치킨 게임’이 마무리된 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지만 올 2분기 이후부터 또다시 수요 부진에 따른 공급과잉 조짐을 보이면서 가격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 속에서도 다행인 점은 반도체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9월 반도체 수출액은 48억4000만 달러(잠정치)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65%나 증가했다.

이는 월별 반도체 수출로는 사상 최대치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가격이 내려갔지만 메모리 생산량이 늘어나 수출량 자체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도체 수출액이 앞으로도 증가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 쪽에서 보면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수출액을 늘리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반도체 재고가 계속 늘어나면서 생산도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및 부품 생산이 전월 대비 0.5% 감소세로 반전됐다. 반도체 생산이 줄어들기는 지난 4월(마이너스 3.6%)에 이어 4개월 만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최근 둔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반도체 수출액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시황의 악화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기 회복세 둔화에 직접적인 파급효과를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9월 15일 펴낸 보고서에서 “자동차 산업과 함께 우리 경제 회복을 이끌어 온 반도체 산업이 지난 7월엔 생산 증가율이 줄고 8월엔 수출 증가율까지 둔화되면서 우리 경제가 하강 국면 초입에 진입한 상태”라며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전망치(5.9%)보다 2.1%포인트 낮춘 3.8%로 제시한 바 있다.

LCD 패널 가격도 올 들어 급격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관련 기업들의 하반기 실적도 신통치 못할 전망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LCD 패널 주력 제품의 가격은 지난 3월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46인치 LCD TV용 LED 패널의 가격은 지난 3월 475달러에서 9월 420달러까지 떨어졌다. 37인치 LCD TV용 패널 가격은 5월 248달러 수준이던 것이 9월에는 216달러까지 뒷걸음질했다.

가격 하락은 LCD TV용 패널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니터용과 노트북용 LCD 패널 가격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8.5인치 모니터용 LCD 패널 가격은 3월 103달러에서 지난 9월 74달러까지 추락했으며 14인치 노트북용 LCD 패널 가격도 62달러에서 49달러로 하락했다. 이는 유럽·북미 등 선진국 시장에서 TV 등 완제품 판매가 당초 예상보다 부진한 데 따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CD 시황 현재 바닥 가능성도
[심층 분석] 1GB D램 1.9달러까지…재고도 늘어
이에 따라 LCD 제조업체의 하반기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10월 7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실적 잠정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13.7% 증가한 4조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LCD 실적 악화 영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 LCD사업부는 지난해 1분기 67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었다. 이후 2분기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3분기에는 1조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유럽 등 선진 시장의 경제 위기로 TV 수요가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올 3분기 LCD사업부의 영업이익은 3000억 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LG디스플레이의 실적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3분기 영업이익을 1000억 원대 중반 정도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올 4분기 적자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LG디스플레이의 3분기 영업이익이 2분기 대비 80% 감소한 1433억 원 수준에 머무르고 4분기에는 영업 적자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희석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직도 TV 세트 업체들이 패널 재고를 상당히 많이 갖고 있다”며 “4분기에도 패널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는 다만 LCD시황이 현재 바닥이라는 점에 위안을 삼고 있다. 업계의 기대가 반영되기는 했지만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LCD 패널 시황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LCD 업계 최고경영자(CEO)들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장원기 삼성전자 LCD 사업부장은 10월 4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1회 디스플레이의 날’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올해 LCD 시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며 “다만 지금이 바닥을 형성한 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복 시점은 이르면 2011년 1분기, 최악의 경우 2011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장 사업부장은 “현재 LCD 시황이 부진한 것은 TV 등 완제품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며 “세트(완제품)가 회복되면 오는 2011년 1분기, 그렇지 않으면 하반기에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도 최근 LCD 시황과 관련, “바닥에 거의 왔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