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미행](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84.1.jpg)
다음날부터 녀석은 등굣길이 왠지 꺼림칙해졌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불편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녀석은 그 불편한 기운의 이유를 알게 됐다. 우연히 뒤를 돌아보다 급하게 몸을 숨기는 그림자를 발견한 것이다. 녀석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미행이 시작된 것이다.
녀석은 늘 그런 식의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미행이 싫은 게 아니라, 자식이 걱정스러워 도저히 참지 못하는, 그래서 학교에 제대로 가는지 뒤를 밟아서라도 확인해야 그나마 안심이 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녀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녀석의 아버지는 한 번도 큰소리로 자식을 야단치지 않았다. 매를 들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매를 들어 시늉이나마 벽이라도 두드리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녀석도 아버지가 됐다. 늦장가 덕에 친구들보다 훨씬 어린 자식을 하나 키운다. 아들이다. 녀석은 아들에게 ‘강한 아버지’가 되려고 했다. 그래서 별것 아닌 일에도 괜스레 목소리를 높여 야단을 친다.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유치하게 힘자랑도 한다. 아내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단을 치다가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그럴 때면 뜬금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녀석의 아버지는 지금도 미행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혹시나 물이 새는 데도 녀석이 단속은 잘하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눈이 오는 날이면 집 앞을 쓸었는지 물어온다. 바람이 불면, 창문들 잘 닫았는지 궁금해 못 참는다. 급기야 집에 김치가 떨어졌을까 너무도 궁금해 슬그머니 찾아와 냉장고를 열고 확인하기도 한다.
녀석의 아버지는 이북 사람이다. 일사 후퇴 때 홀로 내려왔다. 5남매의 장남, 3세째 장손. 할아버지께서 너라도 잠시 피해 있으라고 하셨던 게다. 녀석의 아버지가 열 살 때였다. 그래서 동네 형들 손잡고 강화도에 내려왔다. 며칠만 있다가 오라고 했는데 며칠이 65년이 됐다. 외로움, 그리고 혈육에 대한 애틋함. 녀석의 아버지는 그런 것이 너무도 컸다.
철이 조금씩 들면서 녀석은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또 그렇게 돼 가고 있다고 믿고 있던 어느 날, 이제 겨우 일곱 살 난 녀석의 아들이 집 앞 가게에서 과자를 사오겠다며 천 원짜리 하나를 들고 나간다. 그런 아들을 보며 엄마는 이제 다 컸다며 웃는다. 하지만 잠결에 그 얘기를 들은 녀석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웃고 있는 엄마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부리나케 아들의 뒤를 밟는다.
아들이 흘낏 돌아다보기라도 하면, 잽싸게 차 뒤로 숨는다. 빼꼼히 고개를 들어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쫓는다. 왠지 모를 조바심에 녀석의 가슴이 뛴다.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는 아들을 가게 밖에서 창으로 몰래 들여다본다.
녀석의 아들은 적당한 걸 골랐는지, 미소를 띠며 주인에게 가 말없이 과자와 돈을 함께 들이민다. 거스름돈을 받아들고 룰루랄라 문을 나서며 집으로 향하는 아들을 보며 녀석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웃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녀석의 아버지가 녀석을 보며 웃고 있었다.
![[아!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미행](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85.1.jpg)
전자신문과 아이뉴스24 기자를 거쳤다. 2006년 9월 국내 최초의 블로그 기반 뉴스 공동체인 블로터닷넷(www.bloter.net)을 설립해 대표 블로터를 맡고 있다. 블로터(bloter)는 블로거(blogger)와 리포터(reporter)를 결합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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