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의 경제학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의 성질을 지닌다. 시각적인 것은 결국 넋을 잃고 정신없이 매료되게 만든다.”미국의 문화이론 비평가 프레데릭 제임슨이 쓴 ‘보이는 것의 날인’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글의 맨 처음에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온통 시각 문화의 홍수에 살고 있는데 이 말에는 바로 그 시각 문화와 세계의 존재론이 함축돼 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시각적인 것이 최우선시 되면서 다른 감각들이 고갈되는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른바 ‘시선의 우생학’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찰나의 순간을 잡기 위한 무한 경쟁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광고를 비롯해 영화 등 모든 미디어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노출의 무한 경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아찔한 패션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선의 지배와 시각적 대상의 무한한 풍부함 사이에서 권력과 욕망에 대한 모든 싸움이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제임슨은 주장한다.
시각적인 것은 대부분 이미지로 소비되는 속성을 지닌다. 이미지의 소비는 달리 말하면 ‘정신적 사유의 회피’라고 할 수 있다. 기호 체계로 설명하면 의미 작용을 일으키는 기의(記意:시니피에)는 사라지고 껍데기뿐인 기표(記標:시니피앙)만 소비되는 것이다. 아무리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 의미와 전후 맥락을 시청자들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포르노)의 성질을 지닌다는 말은 기의보다 기표와 이미지를 중시하는 현대 소비사회와 맥락을 같이한다. 급기야 시각적인 매체가 전해 주는 과잉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미디어에 의한 욕망’의 재연(representation)을 경험하게 한다.
시노렐은 “매체 이미지는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매혹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매체가 수용자들을 매혹하고 붙들어 가는 방법의 하나가 성이다”고 강조한다. 즉 성·성행위·성욕은 대부분의 시각적인 매체 내용에서 중요한 요소로 현대적 성욕은 매체에 의해 계발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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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유혹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매체의 모델에 의해 계발된 성욕은 일종의 ‘시뮬라크르(simulacre)’라며 포르노 역시 시뮬라크르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르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포르노, 이것이 시뮬라크르의 절정”이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르에게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시뮬라크르는 흉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이며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실제 존재하고 있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독자적인 하나의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실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로 이 비현실이라고 했던 시뮬라크르로부터 나오게 된다. 흉내를 내거나 모방할 때는 이미지가 실제 대상을 복사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실제 대상이 가장된 이미지를 따라야 한다. 상황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예를 들면 포르노는 ‘원본’이 없고 또한 진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르노는 마치 모델(배우)을 통해 성행위의 원본이나 진실이 존재하는 것으로 위장한다.
포르노는 스펙터클한 성행위를 모방하게 함으로써 시뮬라크르의 모방을 낳는다. 가짜가 모방해야 할 원형 혹은 진짜로 둔갑하는 것이다. 즉 포르노를 보는 남성들은 포르노의 섹스 장면을 원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현실에서 재연하려고 한다.
남성들은 포르노를 ‘봄’으로써 시뮬라크르에 강제되고 억압받게 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포르노가 바람직한 성의 풍자화인 이상 어딘가에 바람직한 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로테스크한 외설스러움을 통해 포르노는 성의 진실을 구현하려고 시도한다. 바람직한 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포르노에 대해 바람직한 성, 진짜의 성, 진실의 성이라는 효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드리야르는 ‘바람직한 성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육체의 이상적인 사용가치로서의 성, 해방될 수 있고 해방돼야만 하는 쾌락의 잠재적인 힘으로서의 성이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들은 포르노에 의한 성의 해방이 아니라 시각적 감응에 의한 억압을 경험함으로써 성을 자신의 것으로 향유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포르노는 성적인 것의 역설적인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시뮬라크르이기 때문이다.
즉 포르노는 실재를 사실주의적이고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고 실재에 편집광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포르노는 대부분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데 남성은 포르노를 ‘봄’으로써 실재하지 않는 성적 원본, 즉 포르노 모델에 의해 시뮬라크르로 묘사되는 성을 봄으로써 성적 도취에 대한 강박관념을 지니게 된다.
또한 포르노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게 하는 남성 권력의 폭력적인 산물이다. 폭력적 영상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몸을 폭력적으로 확장시킨다. 폭력 모델과의 접촉은 동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에 따른 ‘남성스러움’을 내면화하기도 한다.
이는 캐나다의 미디어·문화 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이 언명한 ‘미디어는 메시지다’에서 미디어가 인간 감각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포르노는 단순히 성행위의 적나라한 행위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부장적인 남성 권력의 강화와 연결돼 있다.
포르노 통해 남녀의 권력관계 재생산
한 연구 분석에 따르면 포르노는 남성이 여성에게 ‘서비스를 받는’ 강자의 역할을 묘사함으로써 남성의 우월감을 부추긴다. 또한 구강 섹스는 하는 쪽이 허리를 구부리거나 웅크려야 하며 받는 쪽은 서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는 쪽은 노예와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되고 받는 쪽은 아래를 내려다보는 형상이 되기 때문에 남녀 사이의 권력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포르노는 명백히 남성 고객을 위한 것이 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사회 내 가부장제도라는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즉 여성은 하는 쪽이고 남성은 받는 위치를 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포르노의 명백한 의도는 결국 남성들의 성적 욕구나 호기심의 자극을 통한 상업적 이윤 추구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는 포르노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포르노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소비 상품일 뿐만 아니라 이는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포르노는 또한 성의 과잉 이미지를 퍼뜨리고 모방하게 함으로써 보드리야르가 제기한 하이퍼리얼(hyper-real)을 낳게 된다. 가짜인 포르노 행위와 문화가 진짜이자 원본이 되고 지배적인 성문화로 둔갑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하이퍼리얼은 가짜 실재가 진짜 실재를 대체해 지배적인 현상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하이퍼리얼은 실재하지 않는 현실이지만 현실을 지배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는 과잉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하며 확산하는 미디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하이퍼리얼은 시뮬라시옹(simulation)에 의해 만들어진 실재로서 전통적인 실재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포르노가 이를 본 사람들에 의해 재연되고 그게 진짜 섹스 문화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게 되면 새로운 성의 현실이 되고 마는데 이게 바로 포르노그래피의 하이퍼리얼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포르노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실재하지 않는 가짜 현실이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확산되면 그게 바로 하이퍼리얼, 즉 ‘파생실재’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본이나 진실은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적 가짜 진실이 원본이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드라마 ‘허준’에 의해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하이퍼리얼에 해당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남성의 키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여대생의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남성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인식이 확산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남성이 180cm 정도여야 남성다움의 매력이 있다는 것은 어떤 실체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 의해 ‘멋진’ 남성의 표준적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난무하는 시뮬라크르에 의한 하이퍼리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결코 환영할만한 세상은 아닐 것이다.
![[최효찬의 문사철(文史哲) 콘서트] 가짜 성(性)이 진짜로 둔갑하는 이유](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392.1.jpg)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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