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제8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기 위해 10월 3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주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물론 동북아·남아시아(NESA) 조정국 정상 자격으로 개회식 연설과 각 세션 발언, 기자회견 등을 통해 ASEM의 주제인 ‘삶의 질(Quality of Life)’ 향상을 위한 아시아·유럽 거버넌스(지배 체제) 강화를 강조하는 등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오늘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세일즈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MB, 주요 의제로 ‘글로벌 금융 안전망’ 제시

그런데 환율이 주요 이슈가 되면 이런 의제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자칫 G20 정상회의가 환율 전쟁터로 변질될 수도 있다. 미국은 환율 문제를 서울 정상회의 공식 의제로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은 이번 ASEM 개회식, 본회의, 네 차례의 세션, 폐막 기자회견에서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회원국들의 지원을 집중 요청했다. 중국·일본·독일·호주·벨기에 등 정상들과의 회담에서도 마찬가지 견해를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10월 4일 본회의 지정 발언을 통해 G20 서울 정상회의의 의제를 집중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 회의에선 앞선 회의에서 논의했던 의제들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새 의제로서 글로벌 금융 안전망과 개발 의제를 추가해 논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을 이끌어가기 위한 협력 체제 구축, 글로벌 금융 시스템 개혁, 국제 금융기구 개혁 및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조정 등을 의제로 제시했다. 업무 만찬에서도 마찬가지 원칙을 내놨다.
10월 5일 있었던 조정국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G20 서울 정상회의는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위기 이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비전을 갖고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을 모토로 선정했다”며 “이를 통해 G20이 기존 의제인 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세계경제의 틀을 마련하고 국제 금융기구 개혁과 금융 규제 개혁을 착실히 이행하고자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3박 4일간의 ASEM 기간 중 이처럼 ‘환율’이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이런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ASEM은 폐막식에서 채택한 ‘보다 효과적인 세계경제 거버넌스에 관한 브뤼셀 선언’에서 “G20이 금융안정위원회(FSB)와 긴밀한 협력으로 금융 시스템의 복원력 및 투명성을 신속하게 강화하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환율 문제보다 금융 시스템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이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G20 의제와 관련한 외교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관측이다. 10월 말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 정상회의에서 한중일 정상들이 만난다. 여기서 어떤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는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우리로선 미국의 처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선 차라리 우리가 환율 문제를 주도하면서 정면 승부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이 대통령은 10월 7일 서울국제경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여러 가지 현안, 환율 문제 등 국제 공조를 논의해야 할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환율을 어느 정도 수위에서 논의할지는 향후 외교전에 달렸다.
우리로선 G20이 환율 전쟁터가 돼선 안 된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G20 이니셔티브’ 싸움은 각국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홍영식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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