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10월 4일 오전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는 이른바 ‘왕차관’이라고 불리는 박영준 지경부 2차관의 언론 보도 횟수가 화제가 됐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8월 19일 부임한 박 차관이 9월 30일까지 언론에 총 28차례 등장, 22회의 최경환 장관보다 자주 나왔다고 밝혔다. 실세 차관으로 통하는 박 차관이 장관을 능가하는 권한을 부리면서 지경부를 좌지우지하는 것 아니냐는 게 강 의원의 주장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제기하는 문제 치고는 참 사소하고 지엽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정감사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행정부의 정책 집행 과정을 감시하고 권한 남용을 견제하는 중요한 행사다. 그러나 거룩한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실제 국민들 앞에 펼쳐지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울 때가 많다.

국회의원이 장관을 앞에 앉혀 놓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오제세 민주당 의원은 10월 4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윤증현 재정부 장관을 향해 “물가 관리에 실패해 국민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점에 대해 사과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 장관은 “이건 사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오 의원은 몇 차례 더 사과를 요구했지만 윤 장관이 완강하게 버티자 결국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채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증인이 잘못 나온 것 같다” 돌려보내기도
‘허무 개그’ 뺨치는 국정 감사
뭔가 대단한 것을 밝혀낼 것처럼 증인까지 불러 놓고 결말이 허무하게 끝나는 일도 많다. 10월 5일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는 박정훈 애플코리아 부장과 나석균 KT 개인고객본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아이폰의 애프터서비스(AS) 불량 문제에 대해 애플과 KT 측의 답변을 듣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홍보 담당인 박 부장은 AS와 관련한 질문에 “담당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허태열 정무위원장은 “증인이 잘못 나온 것 같다”며 두 증인을 돌려보내고 애플코리아 측에 “임원급으로 다시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국회의원은 헛수고를, 증인은 헛걸음했고 국민들은 한 편의 ‘허무 개그’를 보고 말았다.

국정감사에서 이런 웃지 못할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10월 5일 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내년도 세제개편안의 핵심인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는 고용을 늘리는 것에 비례해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 제도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유리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규제로 휴대전화 요금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이 지적됐고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가격 담합 의혹이 제기됐다.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국립병원에 지급된 연구·개발 예산을 의사들이 개인 생활비와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다 내실 있는 국정감사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칠지 모르지만 국정감사는 정부를 감시하고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는 기능을 분명히 수행하고 있다.

각 부처는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지적을 받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서는 한 번씩 검토해 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오류나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 또한 국정감사의 일부라고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유승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