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그룹 형제 경영의 비밀

최근 보광그룹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그룹 매출의 60%(2008년 기준)를 차지하는 보광훼미리마트가 지난 8월 국내 편의점 업계 최초로 ‘5000점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STS반도체, 휘닉스피디이, BK LCD, 코아로직 등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온 하이테크 계열사들도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작년 말부터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

보광그룹은 지난 1983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사돈지간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TV 브라운관 부품 전문 업체로 설립한 (주)보광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9년 편의점 사업에 진출했고 1995년 강원도 평창군 일대에 대형 리조트인 휘닉스파크를 설립했다.

이어 1996년 광고 대행사 휘닉스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는 등 계열사를 꾸준히 늘려 왔다. 현재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휘닉스피디이·STS반도체·코아로직 등 4개 상장 기업을 포함해 국내외에 모두 4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보광그룹은 2세들 간의 독특한 형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보광은 과거 삼성그룹에 소속돼 있었지만 1999년 중앙일보와 함께 분가했고 2006년 또 한 차례 계열 분리를 통해 중앙일보그룹과도 지분 관계를 정리했다.

홍진기 전 회장의 첫째 아들인 홍석현(61) 중앙일보 회장은 중앙일보 지분만 보유한 채 언론사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그동안 보광그룹은 4남인 홍석규(54) (주)보광 회장이 이끌어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 검사 출신인 2남 홍석조(57) 보광훼미리마트 회장과 삼성SDI 부사장을 지낸 3남 홍석준(56) 보광창업투자 회장이 그룹에 합류하면서 형제 경영 체제가 모습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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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5000점 돌파…하이테크 호조

재계에서는 2007년께 보광 2세들 간의 역할 분담과 지분 정리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룹 내부의 설명은 약간 차이가 있다. 보광그룹 관계자는 “2002년에 이미 지분 조정이 끝났다”며 “그 후 각자 업종별로 인적·물적 교류가 없는 독자 경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석조 회장은 유통, 홍석준 회장은 금융, 홍석규 회장은 레저·광고·하이테크 분야를 맡는 것으로 오래전에 교통정리가 됐고 2남과 3남의 경영 참여는 이 밑그림의 완성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홍석조 회장은 보광훼미리마트의 지분 35.02%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홍석준 회장은 보광창업투자(지분율 30.57%), 홍석규 회장은 레저·제조업 계열사를 거느린 휘닉스개발투자(19.88%)와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29.47%)의 최대 주주다.

막내인 홍라영(50) 삼성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자판기 운영 전문 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의 지분 55%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장녀 홍라희(65) 전 삼성 리움미술관 관장은 보광그룹 지분이 없다.

보광의 운영 방식은 다른 그룹과 차이가 있다. 그룹 차원의 공동 행사도, 조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룹의 모태인 (주)보광 관계자는 “그룹 전체 매출액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저한 ‘따로 또 같이’ 방식의 소그룹 체제다. 이 때문에 보광그룹의 전체 규모는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토대로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당시 보광그룹은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이 대상인 ‘상호출자·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에 지정됐는데, 자산 2조5250억 원, 매출 2조5560억 원으로 삼양·오리온·교보생명을 제치고 자산 순위 67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해 관련법 개정으로 신고 대상이 ‘자산 2조 원 이상’에서 ‘자산 5조 원 이상’으로 바뀌어 이후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보광훼미리마트와 관계사만 따져도 매출 규모가 2조6억 원에 달할만큼 덩치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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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점 돌파와 함께 보광훼미리마트가 독립 그룹으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는 루머가 한때 떠돈 것도 이러한 보광그룹의 독특한 운영 방식 때문이다. 보광훼미리마트 관계자는 “이미 독자 경영을 해 오고 있기 때문에 독립 그룹화 얘기는 큰 의미가 없다”며 “점포 비주얼 아이덴티티 개편 작업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보광그룹은 공정거래법상의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을 나누는데 별다른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실익이 없다는 판단인 셈이다. 이는 그룹의 상징적 기업인 (주)보광의 지분 구조에서도 확인된다. 이 회사 지분은 홍석규 회장이 28.75%로 약간 많고 홍석조 회장, 홍석준 회장, 홍라영 부관장이 나란히 23.75%씩 나누어 갖고 있다.

보광그룹의 독립 책임 경영 체제는 2세들의 만만치 않은 이력과도 연결된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비롯한 4형제는 모두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한 수재들이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홍석조 회장은 대검 기획과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인천지점장·광주고검장을 거치면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지내고 삼성그룹에 영입돼 경영자로 변신했던 부친 홍진기 전 회장과 닮은꼴이다.

홍석준 회장은 1986년 삼성코닝에 입사해 삼성SDI 기획홍보팀장과 경영기획팀장(부사장)으로 활약했다. 4남인 홍석규 회장은 외교관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경우다. 1979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지냈고 1995년 보광 총괄전무를 맡으며 가장 먼저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홍라희 전 관장을 포함한 6남매가 모두 모친의 영향으로 독실한 원불교 신자라는 점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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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그룹은 그동안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전자 부품과 소재, 장비 사업을 키우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주)보광이 TV 브라운관 부품 업체로 출발한 것을 고려하면 첨단 제조업이 보광그룹의 뿌리이자 미래 성장 엔진인 셈이다.

유통과 레저만으로는 아무래도 그룹의 규모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테크 계열사들의 실적은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다. 상당수가 수년간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지금은 수차례 사업 조정을 통해 STS반도체와 BK LCD, 휘닉스피디이, 코아로직 등 4개사로 재정비된 상태다. 다행히 2008년 BK LCD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중소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후공정 물량을 대량 수주하면서 전기가 마련됐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STS반도체와 휘닉스피디이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반도체 패키징 사업이 주력인 STS반도체는 올해 필리핀에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그룹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보광 하이테크 계열사들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실제로 올 초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문의 비메모리 패키징 요구가 늘어 매출이 급증했던 STS반도체는 2분기 이후 스마트폰 붐에 밀려 휴대전화 수출이 약세를 보이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편의점 분야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보광훼미리마트가 33.1%의 시장점유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GS그룹의 GS25(27.7%)와 올 초 바이더웨이를 인수한 롯데그룹 세븐일레븐(26.1%)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한 애널리스트는 “치열한 유통 경쟁에서 편의점 단독 모델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GS그룹과 롯데그룹은 백화점·홈쇼핑·슈퍼마켓 등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가 강점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지 11년째인 올해 보광그룹은 새로운 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