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애널리스트 10인의 선택

현대건설의 새 주인은 누가 되는 게 좋을까. 현대차그룹일까, 현대그룹일까.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가한 곳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뿌리는 하나지만 적어도 지금은 경쟁자다. ‘형제나 다름없는 양 그룹이 왜 저렇게 경쟁할까’ 하는 일각의 시선도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엄밀히 따져서 현대건설은 어느 특정 가문의 기업이 아니라 주주들의 기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기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경비즈니스는 주요 증권사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 10명을 선정, 그들에게 현대건설의 적임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설문 문항은 △시너지 효과 △해외 수주(글로벌화) 능력 △자금력 △경영 능력 △명분 등 5가지였다. 이는 매출 및 시공 능력 1위 건설사인 현대건설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핵심 요소를 시장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설문 조사는 10월 6~7일간 한경비즈니스 취재진이 직접 진행했다. 각 문항마다 애널리스트들이 선정한 이유를 들었다. 다만 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이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조사에 응했다. 그 이유로 “사안이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인수·합병(M&A)은 명분만 있다고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금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자격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명분의 타당성, 자금의 성격, 인수의 본질적 목적, 인수 후 프로그램 등이 종합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게다가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설문 조사는 채권단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시너지 효과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 공고를 예고한 가운데 24일 추석 연휴를 이어가고 있는 계동 현대건설은 당직자들만 출근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만 수면 위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924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 공고를 예고한 가운데 24일 추석 연휴를 이어가고 있는 계동 현대건설은 당직자들만 출근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현대기아차그룹과 현대그룹만 수면 위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허문찬기자 sweat@ 20100924
M&A에서 시너지는 필수다. 시너지는 인수 대상 기업과 인수 기업이 ‘윈-윈’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미래 성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친환경 산업과 관련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원전 등의 친환경 발전 사업에서부터 주택용 충전 시스템과 연계된 친환경 주택,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자동차에 이르는 이른바 ‘에코 밸류체인’ 완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속철도 및 철도차량 사업과의 연계가 가능하고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트로부터 안정적인 건설 자재를 조달할 수 있다는 것도 시너지 효과로 꼽았다.

현대그룹은 독일 M+W그룹과 손잡으면서 현대건설이 시너지 효과로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전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현대그룹도 신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자신했다.

1912년 설립된 M+W그룹은 첨단전자산업·생명과학사업·태양광발전·화학·자동차·정보기술(IT) 등과 관련된 하이테크 기반 시설을 건설해 왔다. 그동안 반도체 공장 200여 곳, 7700MW 이상의 태양광 발전소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현대그룹 측의 설명이다.

조사에 응한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어떨까. ‘시너지 효과’가 뛰어난 인수자를 묻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이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3명은 “별 차이가 없다”고 답변했다. 현대차그룹을 지목한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높은 점수를 줬다.

변성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건설은 국내 영업보다 해외 영업이 중요하다”며 “현대·기아차의 해외 네트워크가 좋은 데다 KCC·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의 물량 수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별 차이가 없다”고 답한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건설은 이미 매출의 50%가 넘을 정도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잘 갖추고 있다”며 “양 그룹을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현대건설 인수전 누가 웃을까] “시너지·경영능력 등 현대차그룹 앞선다”
△ 해외 수주 능력

이어지는 질문은 “해외 수주 능력이 더 뛰어날 것 같은 인수자는 어디냐”는 것이었다. 현대건설의 목표는 오는 2015년까지 글로벌 톱20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비전 2015’를 수립하고 ‘글로벌 인더스트리얼 디벨로퍼’라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건설 측은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순 시공에서 벗어나 디자인·엔지니어링·구매·금융을 아우르는 선진국형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한다”며 향후 글로벌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현대건설의 비전을 달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인수자는 누굴까. 현대차그룹은 해외 수주 역시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세계 150여 국가에 그룹 제품을 공급하면서 8000여 곳에 글로벌 생산 설비와 판매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진국 시장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신흥 시장 공략을 강화해 글로벌 성장 기반을 한층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대그룹은 전략적 투자자인 M+W와의 제휴로 해외 수주 능력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그룹 측은 현대건설의 사업 영역이 주로 중동 지역에 치우쳐 있고 원자력이나 주택 등에 국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M+W는 현대건설이 갖고 있지 않은 사업 지역인 북미는 물론 유럽 지역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것.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5명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수주 능력이 뛰어나다”고 답변했다. 3명은 “별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나머지 2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을 꼽은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현대차그룹은 해외에서의 성공 경험을 갖고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그룹과 달리 현대차그룹은 해외에서 공장이라도 건설할 수 있다.” 반면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한 애널리스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두 그룹 모두 건설 경험이 별로 없다.” “글로벌 사업 경험은 현대차그룹이 조금 낫지만 건설 관련 수주 영업은 해 본 적이 없다.”
[현대건설 인수전 누가 웃을까] “시너지·경영능력 등 현대차그룹 앞선다”
△ 자금력

자금력은 아무래도 현대차그룹이 유리하다. 현대건설 인수 가격은 최근 주가 수준과 30% 정도의 경영 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최저 3조5000억 원 선으로 예상된다. 물론 경쟁이 과열될 경우 4조 원을 넘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적어도 자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로운 편이다.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대략 4조50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체 자금으로도 인수가 가능한 상태다.

현대그룹은 1조5000억 원 정도의 내부 자금을 확보해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2조~3조 원 정도의 자금을 더 끌어와야 한다. 최근 전략적 투자자인 M+W를 끌어들임으로써 당장의 인수 자금 문제는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조사에 응한 애널리스트도 자금력에선 현대차그룹이 월등히 앞서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9명이 현대차그룹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보유 현금에서 차이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 경영 능력
[현대건설 인수전 누가 웃을까] “시너지·경영능력 등 현대차그룹 앞선다”
경영 능력은 기업의 성장은 물론 존속에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인수한 뒤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는 핵심 키워드다.

현대차그룹은 자신만만하다. 그룹 관계자는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던 기아자동차와 한보철강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이뤘다”며 “경영 능력에서 현대그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기아자동차를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시켰으며 한보철강(현 현대제철)도 포스코에 이은 국내 2위 제철소로 키워냈다.

애널리스트 10인 중 6명은 현대차그룹의 경영 능력에 손을 들어줬지만 나머지 4명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준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영 능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 조사에 참여한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경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다”며 “현대건설을 글로벌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명분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양 그룹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대그룹은 “잃었던 것을 찾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 정몽헌 회장이 2000년 경영난에 빠진 현대건설 회생을 위해 44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그룹의 적통을 잇기 위한 포석이라는 외부 시각에 대해서는 “단순히 옛 추억에 잠겨 수조 원의 돈을 쏟아 부을 리가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조사에 응한 애널리스트들의 생각은 어떨까. 10명 중 4명이 현대차그룹의 손을 들어줬고, 2명은 현대그룹에 명분이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4명은 “별 차이가 없다”거나 “애널리스트가 답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현대차그룹에 명분이 있다고 답변한 애널리스트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명분을 따진다면 누가 더 현대건설을 잘 키울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 응답자들은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소속이었기 때문에 굳이 명분을 따진다면 현대그룹이 우위에 있다”고 답했다.

한편 “별 차이가 없다”고 답한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그룹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도 명분이 있지만 잃어버린 잘못도 분명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 명분이 있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M&A는 기업 성장의 또 다른 기회다. 역으로 잘못하면 기업의 앞길을 막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조사에 응한 애널리스트들은 “채권단이 단순히 인수 가격을 중심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의 자금력, 시너지 효과 등을 심도 있게 고려해 기업과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돋보기 현대건설은 어떤 기업

매출·시공능력 ‘부동의 1위’

올해로 창립 63주년을 맞은 현대건설은 명실상부한 ‘건설 명가’로 불린다. 현대건설은 지난 1947년 설립한 현대토건사가 그 모태다. 1958년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를 시작으로 1965년 해외 수주 1호인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20세기 세계 건설의 대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등 현대건설의 역사는 한국 건설의 역사 그 자체다.

하지만 2001년 여름 현대건설은 자금 유동성 위기와 재무구조 악화를 사유로 채권단 관리, 즉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등 9개 은행 및 기관으로 채권단이 구성됐다. 금융회사의 출자 전환으로 현대그룹 계열사와 분리, 독자적 행보를 걷게 됐다.

2006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1조4000억 원 규모의 출자 전환, 1조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등 경영 정상화 노력의 결과로 마침내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워크아웃 졸업 후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했다. 지난해 매출액 9조2789억 원, 영업이익 4189억 원을 각각 달성했다. 올해도 상반기 매출 4조6279억 원, 순이익 3311억 원을 기록했다. 경쟁 업체를 압도하는 실적이다. 시공 능력 평가액 순위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를 기록해 당분간 ‘실적’에 관한 한 독주 체제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채권단은 현대건설 보유 지분 34.88%(3887만9000주)를 매각한다고 공고했고 10월 1일까지 입찰 참가 의향서를 받았다. 채권단은 11월 12일까지 본입찰을 진행하고 12월 말까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 본계약 체결에 나서기로 했다.

권오준·우종국·이홍표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