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소리없이 잘나가는 이유
효성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제는 전통의 섬유 화학 기업이 아니다. 중공업과 첨단 신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는 물이 달라졌다. 내수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전체 매출의 70%가 해외시장에서 이뤄졌다. 경영 실적도 수준급이다. 지난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이어 4분기에도 다시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는 증권사 전망이 나왔다. 주가도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 8월 2009년 9월 이후 처음으로 10만 원대에 재진입한 후 오름세를 타고 있다.
효성은 홍보(PR)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기업이 아니다. 더욱이 소비재가 아닌 중간재를 다룬다. 이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효성의 변화상을 잘 알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효성의 변화상을 짚어봤다.
우선 변신에 성공하면서 기업의 체질이 달라졌다. 효성에서 중공업 부문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2005년 15.4%에서 2009년 22.8%로 늘어났다. 김영진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오는 2014년 37.8%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중공업 부문의 영업이익 기여도는 2008년 44%에서 2014년 53%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고압 변압기, 국내시장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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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다는 미국 공략에 성공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효성은 BPA와 AEP 등 굴지의 미국 전력 회사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미국 초고압 변압기 시장에서 2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중동·유럽 지역으로도 발을 뻗고 있다. 지난 5월 영국 전력청의 초고압 변압기 주 공급자로 최종 선정된 것은 효성중공업의 글로벌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풍력발전은 2018년까지 2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정도로 효성이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신수종 사업이다. 효성은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 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했고, 2004년 자체 기술로 750kW급 풍력발전 시스템 1호기를 개발했다.
2007년에는 2MW급 2호기를 개발하는 등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기술력을 뽐냈다. 해외 진출의 쾌거도 이뤘다. 인도 고다와트에너지에 2013년까지 총 456억 원 규모의 풍력발전 터빈용 1.65MW급 증속기(Gearbox)를 공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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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코드는 세계 시장점유율 35%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미쉐린·굿이어·브리지스톤 등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들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3대 중 1대에 효성의 타이어코드가 사용된 셈이다.
타이어코드는 자동차 타이어의 안전성·내구성·주행성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 속에 넣는 보강재로, 자동차 안전과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소재다. 따라서 타이어코드는 품질이나 기술 안전성이 중시된다. 이 때문에 2~3년에 걸친 품질 테스트를 받지 않으면 타이어 메이커에 납품이 쉽지 않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다.
1969년 타이어코드 개발에 성공한 효성은 이후 폴리에스터 원료인 TPA에서부터 폴리에스터 칩, 타이어코드용 원사, 타이어코드지(직물), 열처리 등 후가공에 이르기까지 일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스판덱스도 효성의 자랑이다. 스판덱스 브랜드인 크레오라(Creora)로 세계 시장점유율 2위에 올라 있다. 스판덱스는 ‘섬유의 반도체’라고 불릴 정도의 고부가가치 섬유다. 석유화합물인 ‘폴리우레탄’이 주성분으로 기존 고무 실에 비해 강도가 3배 강하다. 원래 길이의 5~8배까지 늘어날 수 있을 만큼 탄성이 좋아 여성 속옷이나 수영복, 스타킹, 유아용 종이 기저귀 등에 주로 사용한다.
효성의 스판덱스 사업을 위해 중국·터키·베트남 등에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했으며 내년 상반기엔 브라질 공장이 완공된다. 효성의 미래를 짊어진 신규 사업은 고기능 섬유인 아라미드와 TAV 필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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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은 작년에 자체 기술로 고강도 섬유인 아라미드 원사 개발에 성공했다. 아라미드 섬유 브랜드인 알켁스(ALKEX)는 강철보다 강도가 5배 강한 섬유다. 섭씨 영상 500도에도 타지 않는 내열성을 갖고 있고 화학약품에도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가볍고 탄력도 뛰어나 방탄 재킷, 방탄 헬멧, 골프채, 테니스 라켓, 광케이블, 자동차 브레이크 패널 등에 활용된다. 지난해 8월 울산 공장 내 연 생산 1000만 톤 규모의 아라미드 공장을 완공한 효성은 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TAC(Tri Acetyl Cellulose) 필름 사업도 효성의 미래 수종이다. TAC 필름은 TV·모니터·노트북·휴대전화 등에 사용되는 액정표시장치(LCD) 부품인 편광판을 보호해 주는 필름이다. 지난해 연산 5000㎡ 규모의 LCD용 TAC 필름 공장을 완공했다. 기존에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했다.
효성그룹이 신구 사업의 조화를 이루며 내실 있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비결은 선택과 집중에서 찾을 수 있다. 효성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핵심 사업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일찌감치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었다.
중국·베트남·터키 등 세계 각지에 20여 개의 현지 제조 법인을 세웠다. 26개의 무역 법인과 사무소를 더하면 6800여 명의 현지 직원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다. 효성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70%를 넘어섰다. 효성의 경영 방침도 ‘글로벌 엑셀런스(Global Excellence)를 통한 가치 경영’이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의 책임 경영도 주효했다. 무엇보다 3세 경영인들의 활약상이 컸다. 섬유와 무역 부문을 이끌고 있는 조현준 사장(장남)은 2007년 PG장을 맡아 큰 폭의 수익 개선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은 중공업PG장으로 중공업 분야의 비약적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조 부사장이 맡은 2006년 이후 매출은 2배가량(2005년 7501억 원, 2009년 1조6041억 원), 영업이익은 3.6배 정도(2005년 673억 원, 2009년 2434억 원) 증가했다.
삼남인 조현상 전무는 200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차세대 리더로 선정되는 등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전략본부 소속으로 그룹 신사업, 인수·합병(M&A)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효성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당장은 차입금이 과다하다는 지적이 많다. 효성을 담당하는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2조 원에 달하는 과다한 차입금이 걸림돌”이라고 꼬집었다.
지금까지의 변신은 성공적이었지만 향후 신규 성장 동력을 어떻게 찾느냐도 과제다. 고기능 섬유와 풍력발전 등에서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고 있지만 시간도 걸리고 규모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향후 그룹의 지배구조를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것도 관건 중 하나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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