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역세권 소형 맨션의 힘

[일본] 짓는 족족 팔려…순환선 주변 ‘최고 인기’
일본은 부동산 붕괴 사례의 대표 모델이다. 여기에 토를 달진 못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예외가 있다. 또 이 예외 사례가 왕왕 기존 상식까지 뒤흔든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예외 흐름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요즘 일본엔 맨션(한국의 아파트 개념) 바람이 거세다. 물량이 달려 짓는 대로 팔려나간다. 더욱이 도쿄 도심은 확실히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사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발생한 새로운 기현상이다. 그렇다고 시장 전체가 살아난 건 결코 아니다. 음지인 곳은 아직도 휑하다. 빈집 천지에다 가격조차 매길 수 없는 주택이 넘쳐난다. 포인트는 2가지다.

요컨대 부동산 시장의 총아는 ‘맨션+도(부)심’의 공통분모다. 역으로 인기 붐업은 ‘맨션+도(부)심’의 합작품에 한정된다는 얘기다. 언론도 맨션 시장 부활 스토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게 20년째 기다리던 내수 회복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쿄 도심을 도는 JR 순환선(山手線) 주변의 신규 맨션은 인기 절정이다. 일례로 최근 단계적으로 판매 중인 ‘프라우드 이케부쿠로 혼마치(池袋本町)’는 시황 회복의 대명사처럼 거론된다. ‘순간 증발’로 표현될 만큼 순식간에 매진된다.

노무라(野村)부동산이 내놓은 785채의 대형 물건인데 직주(職住) 근접성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모델하우스 대부분이 텅텅 비었던 작년에 비해 괄목할만한 변화다.

역세권에 병원·상업지 등 편의 시설이 구비됐다면 고가라고 하더라도 예약이 넘쳐난다. 70㎡ 방 3개짜리는 7000만 엔대면 비싼 편인데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미나토(港)구에선 2억3000만 엔대의 맨션이 당일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주말이면 모델하우스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방문객이 찾아온다.

설명을 들으려는 대기 시간만 30분 이상 걸린다. 살맛 난 건 업계다. 스미토모(住友)부동산은 상반기 계약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43%나 급증했다. ‘재고 증가→수익 악화→이자 증가→경영 악화’의 악순환 속에 도산·해고가 계속됐던 작년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주말이면 모델하우스에 방문객 넘쳐
[일본] 짓는 족족 팔려…순환선 주변 ‘최고 인기’
이유는 뭘까. 원래 맨션 시장은 전체 시장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때문에 이번 호황 장세가 그리 특별나지는 않다. 실제 1994~2008년은 신규 맨션 시대였다.

수도권의 경우 착공 10만 호, 판매 8만 호의 황금시대였다. 부동산 증권화와 외국계 펀드의 경쟁(용지 취득) 난립 때문에 가격도 급등했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금융 위기였다.

금융 위기 이후 업계가 움츠린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업계는 생존 차원에서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금융 위기와 맞물려 자산 평가손이 계속되자 보유 중인 물건을 저가에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가을부터 떨이 판매가 목격됐다. 그래도 수요 인내는 꿋꿋했다. 수요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올 연초부터다. 7월 수도권 맨션 시장의 신규 판매는 전년 동월보다 27.8% 늘어났다(부동산경제연구소). 모두 4128호가 팔려나갔는데, 이는 6개월 연속 전년 실적을 웃돈 성과다.

계약률도 78.2%를 나타내 기준점인 70%를 넘어 호황으로 나타났다. 6월엔 수도권 신규 맨션의 월간 계약률은 80%에 이르기도 했다. 동시에 생존 업자를 중심으로 신규 공급도 1월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해 공급 물량 8만6000호 중 수도권이 4만3000호로 나타났다. 가격대도 비교적 장벽을 낮췄다. 수급이 가장 두터운 인기 상품은 2500만~3000만 엔대로 역세권 소형 물량이 이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불안정해도 개별 물건의 경우 이론 가격보다 싼 물건이 많다는 점도 한몫했다.

맨션 시장의 붐업에 불을 지핀 건 사실상 정책 보조 때문이란 분석도 힘을 얻는다. 정부의 맨션 수요 자극제가 먹혀들었다는 의미다. 위기 이후 정부는 다양한 부양 카드를 내놨다. 주택 매수 진작을 위해 대출 자금 마련을 거들어준 게 대표적이다.

주택금융 지원 기구의 ‘플랫35S’가 대표적이다. 연내 신청(입주)을 전제로 할 경우 금리 우대를 최초 10년의 0.3%(플랫35)에서 2월 15일부터 1%(플랫35S)로 확대했다. 차입금 5000만 엔을 상한으로 10년간 1% 감세 혜택을 받으면 최대 500만 엔이 절약되는 셈이다.

그 덕분에 2~7월까지 신청자가 전년 대비 4.7배나 늘어났다. 여기에 힘입어 금융회사는 개발업자와 손잡고 변동금리형 제휴 대출까지 내놨다. 금리 우대를 전체 기간에 걸쳐 받는다는 점에서 10년 한정의 플랫35S와 다르다.

현행 금리에서 동일한 변제 조건이면 플랫35S보다 매월 지급 금액이 더 절감된다. 다만 금리가 뛰면 부담이 더 커지는 게 흠이면 흠이다. 주택 취득 자금 등의 증여 때 증여세의 비과세 규모도 확대됐다. 작년 500만 엔에서 올해 1500만 엔까지 비과세 규모가 늘어났다. 내년엔 1000만 엔으로 줄어드는 한시 조치로 연내 주택 구매를 부추기는 효과를 낸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수요 많아

맨션 시장의 수요를 견인하는 주역은 3040세대다. 라이프사이클에 발을 맞춘 이들의 수요 확대도 맨션 시장엔 우호적인 변수다. 그중에서도 가구 소득 1000만 엔 전후의 비교적 고소득층이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40세대는 결혼·육아 등으로 주택 구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많은 이들이 부동산 구입을 주저하거나 미뤘다. 이들이 요즘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부동산 업계의 말을 빌리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봄 이후 수요가 마그마처럼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3040세대는 1970년 전후에 탄생한 2차 베이비부머다. 1947~1949년 1차 베이비부머 부모를 둔 세대들로 사실상 마지막 인구 피크 세대다. 그만큼 인구구성이 탄탄하다.

같은 맥락에서 도쿄 도심으로의 인구 유입도 끊이지 않는다. 1996년 이후 3대 대도시권 중 인구 유입이 유일한 곳이 도쿄다. 더욱이 2000년대 이후 매년 10만 명가량이 유입 중이다. 이들 유입 인구가 그간의 임대 수요에서 매수 수요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맨션 시장의 호황 장세는 철저히 차별적이다. 현재의 맨션 시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키워드가 ‘도심 회귀’이듯 붐은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도심·부심의 역세권에 한정된다는 얘기다. 올해의 공급 물량 중 수도권이 절반에 달하는 게 그 증거다.

게다가 도심 맨션이라면 투자 차원에서도 전망이 어둡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신규 공급을 위한 입지가 별로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와 함께 도쿄 물건은 전매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한몫한다.

실제로 잘 팔려나가는 맨션 물량의 절대 다수가 통근에 편리한 부도심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시내 도심과 멀찍이 떨어진 교외 물건은 여전히 불황 한파에 몸서리친다. 일례로 도쿄 도심의 경우 올 상반기 공급 호수가 26% 늘었지만 수도권은 거듭 감소세다.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는 맨션과 달리 단독주택이 대세다. 교외 지역은 업계 부도로 맨션 공급이 급감한 가운데 편리성보다 환경성을 추구하는 구입자들이 토지가 딸린 2층 건물을 3000만 엔 이하에 사려는 형태가 많다. 아니면 가구 소득 400만 엔 정도인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맨션이 유력한데 현재로선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맨션 호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전망은 엇갈린다. 호조세가 국지적인만큼 시간 경과로 정책 수혜가 사라지면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란 시각과 함께 고령화·저성장 등을 감안할 때 도심·소형의 맨션 시장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란 낙관론이 팽팽하다.

인구구성이 탄탄하고 구매 욕구가 한창인 3040세대의 매수 행진이 끝나면 시장이 재차 식을 것이란 의견을 낸 쪽에서는 그 절정을 길게 잡아 1~2년 후로 본다. 이 때문에 이번 붐을 ‘마지막 잔치’로 본다.

이후엔 아무리 부양책을 써도 지금처럼 효과가 나올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 주택 유통 촉진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이유다. 반면 고령자의 편의 추구와 일자리를 찾는 인구 유입, 핵가족·단신 세대 추세 강화 등을 생각하면 적어도 도쿄 도심의 소형 맨션 수요는 계속해 늘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설득력이 높다. 다만 이 두 시각의 공감대는 있다. 회복세 지속 여부는 엇갈려도 최소한 바닥을 찍었다는 의견 통일이 그렇다.

전영수 게이오대 경제학부 방문교수change4drea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