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원 전쟁’ 희토류 심층 해부

[Special Report] 전기차 필수 소재…커지는 중국 파워
최근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을 지켜보며 ‘원소주기율표’를 새삼스럽게 꺼내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면충돌 불사를 외치던 일본이 중국의 ‘희토류(稀土類)’ 수출 중단 카드 한방에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원자번호 57~71번, 그리고 여기에 스칸듐과 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가 바로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다. 중국은 수요가 급증하는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독보적인 소재 기술을 갖춘 일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자원도, 소재 기술도 전무한 한국은 위기에 속수무책이다.

희토류? 희소금속?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엄격하게 구별된다. 둘 중에서 좀더 포괄적인 개념은 희소금속이다. 세계적으로 매장량이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고 추출이 까다로운 특정 금속 원소들을 가리킨다. 물론 귀하다고 모두 희소금속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관리하는 희소금속은 인듐·갈륨·리튬 등 35종으로 딱 지정돼 있다.

최근 관심이 커지고 있는 희토류도 희소금속의 일종이다. 원자번호 57~71번, 그리고 21번(스칸듐)과 39번(이트륨) 등 17개 원소가 ‘희토류(Rare Earths)’라는 하나의 종으로 묶여 35종의 희소금속 중 하나로 분류된다.

이들 17개 원소가 희토류로 통칭되는 것은 근원적으로 화학적 성질이 유사한데다 각각의 원소가 광물 속에 개별적으로 들어 있지 않고 반드시 그룹을 이뤄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선수 한국광물자원공사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광물 덩어리에 6~7개씩 원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분리·추출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Special Report] 전기차 필수 소재…커지는 중국 파워
희토류 필요하면 중국에 공장 지어라

희토류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94년 스웨덴에서 처음 발견된 이트륨(Y)을 시작으로 1910년대까지 17개 원소가 차례로 발견됐다. 최한신 한국생산기술원 희소금속산업기술센터 연구원은 “다른 희소금속에 견줘 매장량 자체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미량으로 흩어져 있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농축된 광체(鑛體)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희토류를 1% 이상 보유하고 있는 곳은 중국(31%)과 독립국가연합(22%), 미국(15%), 호주(6%), 인도(1.3%) 등 5개 나라뿐이다. 생산량을 기준으로 보면 지역적 편중 현상이 한층 도드라진다.

2008년 기준으로 희토류를 1% 이상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97%)과 인도(2%), 브라질(1%) 등으로 사실상 중국의 독점 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진실의 단면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최 연구원은 “중국은 막대한 외화보유액을 활용해 해외 희토류 광산을 공격적으로 사들여 왔다”며 “영토만을 기준으로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Special Report] 전기차 필수 소재…커지는 중국 파워
희토류의 패권 이동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이라는 세계 질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희토류의 전 세계 생산 거점은 미국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마운틴 패스 광산에서 전 세계 희토류 수요의 대부분을 공급했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마운틴 패스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 중국이 뛰어들면서 이러한 구체제는 위기를 맞았다. 중국이 싼값의 희토류를 세계시장에 대량으로 쏟아내면서 미국 광산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2002년 마운틴 패스의 폐쇄를 가져온 결정적인 직격탄은 환경문제였다.

양광선 한국광물자원공사 유통사업팀장은 “광물 덩어리에서 희토류를 추출해 각각의 원소로 분리하려면 황산과 염산, 암모니아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악취와 유독가스가 나온다”며 “희토류 처리 과정은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희토류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폐수와 방사선도 골칫거리가 됐다.

마운틴 패스의 영광을 이어 받은 곳은 중국 네이멍구 바오터우 북부의 바이윈어보(白雲鄂博)다. 현재 세계 희토류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나온다. 이 지역 도로변에는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희토류가 있다’는 1992년 덩샤오핑의 말이 적힌 입간판이 곳곳에 서 있다. 양 팀장은 “세계의 돈이 바오터우로 몰려들고 있다”며 “작은 지방도시인데도 고층 빌딩이 곳곳에서 올라간다”고 말했다.

값싼 희토류 공급 기지 역할을 충실히 해 오던 중국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희토류 광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고 원광석 등 희토 원재료의 수출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2006년 수출 촉진 제도인 증치세를 폐지하고 대신 고율의 수출관세 부과로 돌아섰다. 현재 희토류의 수출관세는 25%에 달한다.

정부가 관리하는 수출 쿼터도 매년 줄여 나갔다. 2005년 6만5609톤이던 것이 2008년 4만7011톤으로 28% 이상 삭감됐다. 2009년 5만145톤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올해 다시 3만259톤으로 단번에 40% 가까이 줄이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정부 차원의 공급 개입을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을 때도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 10월 중국내 희토 산업 육성 전략을 담은 ‘희토 공업 발전 정책’을 발표한데 이어 최근 일본과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열도) 영토 분쟁을 계기로 수출 금지라는 초강경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중국의 관심은 희토류를 활용하는 고부가가치 소재 산업과 부품 산업 육성에 맞춰져 있다. 소중한 원광석을 더 이상 헐값이 넘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희토류를 고부가가치 산업의 압축 성장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최 연구원은 “원재료의 수출을 엄격하게 억제하면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부품·소재 기업에는 희토류의 무제한 공급을 보장한다”며 “희토류가 필요하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저에서 휴대전화·발광다이오드(LED)·레이더·하리브리드 자동차까지 첨단 제품에 폭넓게 활용되면서 희토류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캐나다의 희토류 개발 업체인 아발론은 새롭게 개발되는 모든 신기술의 25%가 희토류에 의존하는 것으로 추정할 정도다.

희토류 17개 원소 가운데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네오디뮴(Nd)과 터븀(Tb), 디스프로슘(Dy) 등이다. 모두 전기차와 풍력발전기, 핵자기공명장치(MRI)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필수 소재로 쓰인다.

양 팀장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의 인기 때문에 일본은 특히 네오디뮴 확보에 몸이 달아있다”며 “희토류 수출 금지에 일본이 백기를 든 것도 자동차 업계의 압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네오디뮴에 철(Fe)과 붕소(B)를 섞어 만드는 ‘Nd-Fe-B’ 희토자석은 독보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우선 자성이 일반 자석에 비해 200~300배가량 강력하다. 게다가 디스프로슘을 첨가할 경우 열에 노출되면 자성이 떨어지는 일반 자석과 달리 내열 특성을 갖게된다.

희토자석을 사용하면 작고 가벼우면서도 성능이 훨씬 뛰어난 모터와 발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바로 전기차와 풍력발전기에 딱 들어맞는 제품들이다. 전 세계적인 그린카 열풍과 함께 희토자석의 수요는 매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그린카의 미래가 중국의 희토류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린카의 미래 중국 희토류가 좌우
[Special Report] 전기차 필수 소재…커지는 중국 파워
희토자석은 희토류와 관련해 이중적인 종속 구조에 갇혀 있는 한국의 난감한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네오디뮴과 디스프로슘을 사용해 희토자석을 만들어 내는 핵심 기술은 미국과 일본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원재료는 중국에, 가공 기술은 일본에 종속돼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카에 들어가는 모터용 희토자석도 전량 일본 히타치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최 연구원은 “국내에 희토류 부품·소재 기반이 전무하기 때문”이라며 “중국에서 한국에 희토류 물량을 풀어도 일본에 다시 보내 가공해 와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의 희토류 수입 규모가 2500만 달러어치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공 기술이 없어 희토류를 부품·소재 형태로 직접 사다 쓰는 양이 훨씬 많은 것이다.

원유를 능가하는 희토류의 파워가 가시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일본은 발 빠르게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11년부터 그동안 폐쇄했던 마운틴 패스의 재가동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일본 역시 희토류 대체 소재 개발과 리사이클링 기술의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당장 국내 희토류 매장 현황에 대한 정밀 탐사 자료조차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이 “더 늦기 전에 희토류 정책의 밑그림을 새로 그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인터뷰 배정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희소금속산업기술센터장

“희토류, 시장 논리 뛰어넘어”
[Special Report] 전기차 필수 소재…커지는 중국 파워
지난 1월 인천 송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인천본부 내에 문을 연 희소금속산업기술센터는 희토류를 포함한 희소금속산업 육성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희소금속 관련 원천 기술 개발과 회소금속 사업 클러스터 등 기반 조성, 그리고 국가적인 희소금속 재활용 체계 구축이 주 임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사태의 교훈은.

일본이 백기를 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당장 라인이 멈출 정도는 아니다. 일본은 이미 1980년대 초부터 총리 직속으로 희소금속대책위원회를 가동해왔다. 그동안 비축한 물량도 많고 폐제품을 재활용하는 도시 광산도 활성화돼 있다. 멀리 보고 타협을 선택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희토류가 시장 논리로 따져 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우리는 희소금속 산업이 매우 열악하다. 센터가 중심이 돼 적극적인 육성에 나설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광물 맵도 자체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것은 인력이다. 미국도 희토류 생산을 재개하려고 하지만 인력이 없다.

10~20년을 내다보고 키워야 한다. 재활용 정책도 중요한데 부품 표준화도 안 돼 있고 여러 부처가 관여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런 것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취재=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