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선진 ‘돈육 산업’ 현장을 가다
프랑스 최대의 대형 유통업체인 까르푸 매장 안. 한국의 대형 마트와 마찬가지로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제품은 역시 식품이다. 종류를 헤아리기 힘든 각종 상품과 진열대 사이를 바삐 움직이는 프랑스인들이 꼭 들르는 곳은 ‘고기’를 판매하는 곳, 즉 정육 코너다.유럽의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육류 섭취량은 높은 편이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90kg 정도이고 그중 가장 일반적인 돼지고기 소비량도 1인당 37kg에 달할 정도다. 돼지고기 산업 선진국 프랑스를 돌아봤다.
비유럽권 중 한국이 두 번째 수출국
![[프랑스] 사육서 도축까지 완벽하게 파악](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42.1.jpg)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유럽 내에서 곡물과 육류 생산 강국으로 분류된다. 더욱이 유럽연합(EU) 출범 후 유럽 내 국가 간 교역 장애가 사라지면서 육류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프랑스의 육류, 특히 돼지고기 수출량은 연간 56만9000톤에 이르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도 주요 수출 대상 국가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돼지고기 수출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이탈리아·영국·그리스 등 유럽 국가다.
하지만 9만4000톤의 비유럽권 국가 수출량 가운데 한국이 2만2700톤을 수입하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는 러시아(3만8000톤)에 이은 두 번째 규모다.
먹을거리에 관해서는 유독 자국산을 선호하는 게 한국인의 특징이지만 식당 등 음식점에서는 유럽산 돼지고기 사용량이 갈수록 늘고 있다. 국내산 돼지고기에 비해 유럽산 고기가 갖는 장점은 역시 가격이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현지에서는 자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프랑스인들이 자국산 돼지고기를 믿고 소비할 수 있는 이유는 철저하게 관리·감독되는 ‘트라사빌리테(tracabilite:생산이력추적제)’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트라사빌리테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 특유의 ‘조합’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갈수록 대형화·기업화되고 있는 한국의 축산 농가와 달리 프랑스는 아직도 2인 정도가 관리하는 가족 단위의 축산 농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산자(축산 농가), 기업(도축 및 분할), 유통 기업 등이 하나의 조합으로 묶여 있다.
출산을 전담하는 ‘모돈(母豚)’ 수 320마리(식용 등 전체 사육 마리 수는 3000~3500마리) 정도가 프랑스 축산 농가의 평균 사육 규모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기업형 돼지 농가의 경우 전체 사육 규모가 1만 마리에 이른다.
작은 규모의 생산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지역 내 유통 주도권을 잡는데, 조합 가입은 필수다. 프랑스 축사 농가의 90% 이상이 이런 조합의 구성원이며 전국에 50개 정도의 조합이 조직돼 있다.
소규모 농가의 권익을 보장하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조합 구성의 이유라면 소비자 쪽에서는 상품의 안정성과 위생 등을 담보하는 것 또한 조합의 역할이다. 각 조합별 전담 수의사들이 배정돼 있어 이들이 직접 영양, 사육 방법, 시설물 관리 등을 지도하고 있다. 조합 내에서 준수해야 하는 규칙을 반드시 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라사빌리테의 시작이 바로 조합인 셈이다.
품질관리의 근간, 생산이력추적제
![[프랑스] 사육서 도축까지 완벽하게 파악](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43.1.jpg)
이곳에 있는 도축·분할·가공 기업인 가드(GAD) 그룹은 프랑스 내 50여 개 육류 관련 기업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반에 있는 조슬랭 공장은 가드 그룹의 도축·분할 전문 공장이다.
지역 내 조합(CECAB)에서 생산·판매된 돼지고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도축되고 상품별 용도에 따라 분할되고 있다. 농가에서 생산된 돼지의 품종, 사료의 종류, 생산 방법 등을 철저히 준수한 돼지들이 공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도축 작업에 돌입한다.
도축에서 상품(부위)별 분할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24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판매처별(정육점, 슈퍼마켓, 대형 마트 등)·부위별·중량별로 포장을 완료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도축이 이뤄지는 공장 내부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피와 내장, 필요 없는 부위에 대한 절단이 이뤄지지만 최신식 자동화 설비로 위생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공정도 최소한의 작업 인원이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분류된 돼지고기는 냉장 상태를 유지한 채 곧장 수송 컨테이너에 실린다. 도축 직후의 돼지고기는 출생에서 도축까지 사육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긴 컨베이어에 실리고 최종 출하 제품에는 각각의 생산 이력 추적이 가능한 바코드 및 정보 안내 스티커가 붙는다. 최종 소비자는 돼지고기를 생산한 지역과 농장주, 사료, 개월 수, 도축장 등 자신이 먹는 고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뛰어난 품질과 철저한 위생 관리 등으로 유럽산, 특히 프랑스 돼지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프랑스 돈육 업계의 화두는 브랜드 이미지나 수출이 아닌 ‘생산비’ 급등이다.
돼지 1마리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 가운데 70%를 차지하는 것이 먹이, 즉 ‘사료’다. 프랑스를 비롯한 EU의 최대 사료 수입국은 러시아. 그런데 최근 발생한 러시아의 화재와 장기간 지속돼 온 가뭄 등이 사료비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비단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7~2008년의 전 세계적인 곡물 파동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료비 상승은 생산 농가와 관련 기업의 수익을 해치는 주범이다.
반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는 르프로크(Lefloch) 씨는 “4개월 전 1000kg당 220유로이던 사료 값이 현재는 270유로에 이르고 있다”며 걱정했다. 연간 매출액인 100만~150만 유로 정도인데 현재의 사료 가격으로는 순수익이 마이너스 상태라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반 지역에서 20년간 최대의 사료 생산·유통 공장 자리를 지켜온 ‘세칼리멘트(Cecaliment)사’도 곡물가 상승세를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현재는 선물 구매를 통해 곡물 가격 상승분을 사료 판매가에 반영하고 있지 않아 한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작년 말에 비하면 곡물가가 15% 정도 올랐다고 한다.
올해 예상되는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은 3억5000만 톤 정도. 2009년 생산량에 비해 1억5000만 톤이나 급감한 양이다. 그나마 덴마크의 밀 농사가 유례없는 풍작을 맞아 수입량을 늘릴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세칼리멘트사 총 구매 책임자인 장 미셸 제스탕(Jean-Michell Gestin) 씨는 “생산자와 가공 기업, 사료 공장 등이 연합한 조합의 생산자 보호 시스템 때문에 급격한 생산비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원가 인상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이고 조만간 생산자를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반(프랑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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