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이런 평가 만능(?)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근 국내 주요 일간지에 국내 대학은 물론 아시아, 세계의 각 대학에 대한 평가와 순위가 줄을 이어 발표되고 있다. 발표 결과에 따라 각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대학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의 주요 신문사가 대학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초기에는 최상위 대학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순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해를 이어 평가 결과와 순위가 발표되자 모든 대학이 이에 순응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대학 평가가 시작된 후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 대학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대부분의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에 의한 교수들의 강의 평가가 시행됐다. 강의 평가는 원래 미국에서 1960년대 월남전 반전 데모에 따라 스튜던트 파워가 커지면서 시작된 제도다.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강의 평가가 자연스러운 대학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유교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많은 반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의 평가는 시행됐고 수년 후 교수들의 강의에 대한 성실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무단 휴강도 자취를 감췄고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도 해가 다르게 향상됐다.
둘째, 거의 모든 대학이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확인하고 이를 계량적으로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이것도 강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많은 반대에 부닥쳤다. 일부 교수들은 우리 전공은 논문을 쓸 수 없다느니, 이런 논문은 가치가 있고 저런 논문은 가치가 없는데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느니 많은 논란이 일었다. 어쨌든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구 실적 평가는 시행됐고 교수들의 연구 업적은 매년 꾸준히 상승해 왔다.
마지막으로 대학교 자체의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경희대는 지난 3~4년 전부터 평가에 활용되는 많은 지표들을 대학 전체 및 단과대학별로 관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학교 내 단과대학별 경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과 단과대학별 경쟁 유발로 경희대는 지난 수년간 교수 연구 업적과 국제화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기업체가 균형성과표(BSC) 관점에서 핵심성과지표(KPI)를 관리하고 이들 목표가 각 부서로 할당(cascading)되는 것과 같은 성과 관리 시스템이 대학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물론 일부에서는 대학을 서열별로 줄 세우기 하는 것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8개 상위권 대학 교수의회가 언론사의 대학 평가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과 일치한다.
하지만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대학이 평가에 의해 지난 10여 년 동안 엄청난 변화와 성과를 이룬 것을 보면 이런 주장은 원론적이고 허망하게 들린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고 얘기했다는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다소 부족한 평가라도 평가가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느낌이 든다. 만일 10여 년 전 대학 평가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지금 대학의 모습이 어떨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0% 만족한 평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평가가 미뤄진다면 그것은 백년하청일 것이다. 우선은 부족하지만 시작하고 개선하는(Shoot and Aim) 용기도 필요하다. 공교육이 무너진 우리 중고등학교 시스템도 이런 대학의 내·외부 평가 시스템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변화가 일어나면 좀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영호 경희대 경영대 학장
약력 : 1956년생. 서울대 경영대 졸업. KAIST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 경영학 박사.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경희대 경영대학원장. 한국품질경영학회장(현). 2009년 경희대 경영대학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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