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털 디자이너 홍현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단순히 크리스털의 반짝임만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목가구도, 나무와 크리스털을 다루는 세심한 손길도, 열정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도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크리스털 디자이너 홍현주 씨가 사는 세상이다.강남에 있는 홍현주 디자이너의 아틀리에 겸 브랜드 매장인 ‘라쉐즈’에 들어선 이들은 누구나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국식 전통 소품들에 크리스털이 덧입혀져 다시 태어난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제아무리 까다로운 안목을 지닌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사로잡을 듯한 위트와 아름다움을 지녔다.
“나무와 크리스털이 이렇게나 잘 어울릴 줄은 저도 처음엔 잘 몰랐어요.” 크리스털이 좋아 크리스털 디자이너가 된 것이 아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나무로 만든 우리네 오래된 살림살이들이 가진 소박하고 예스러운 모습들이 좋아 관심을 갖다가 크리스털을 만나게 되었다.
“원래 공간을 꾸미는 일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아기자기한 집안 소품들, 오래된 가구나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박한 살림살이 물건들이 좋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는 좋았지만 마음먹고 미술이나 공예를 공부하진 않았다.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졸업한 후에는 비행기 승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저 나무가 좋아 관심 갖기 시작
![[프로의 세계] 마흔에 발견한 나무와 크리스털의 매력](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63.1.jpg)
“앤티크, 그중에서도 우리 고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귀국 이후부터였어요.” 더욱이 그녀의 관심을 끈 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나무로 된 소품들이었다. 오래돼 깨지고 뒤틀린 작은 함지박에서부터 다리가 너덜거리는 소반, 금이 간 나막신, 낡고 녹슨 자물쇠, 커다란 빗장 문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제각각 시간의 향기를 머금고 있는 오래된 것들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목기는 특유의 색이나 기운 때문에 자칫 둔탁한 인상을 주기 쉽다. 하물며 오래된 목기는 ‘칙칙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오래된 나무, 오래된 목기 용품이 가지는 특유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무언가 새로운 소재를 덧붙이면 어떨까 싶어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크리스털을 붙여 보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크리스털은 “차갑고, 도도하고, 완벽한 존재”다. 하지만 나무의 부서지고 찢겨진 부분을 채워 주고 보듬어 주면서 크리스털은 자신만의 온기를 가지게 되었다. 나무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과 시간에 부대껴 낡고 지친 허름한 나무는 반짝이는 크리스털에 의해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났다. 그녀 이전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업인 만큼 스스로 부딪치고 깨지며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1999년 ‘라쉐즈’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때 제 나이가 마흔이었어요. 새롭게 시작하는데, 마흔이란 나이는 의외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던데요?(웃음)” 처음 한동안은 붙였던 크리스털이 떨어지기도 하고 생각만큼 쉽게 작업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애를 태우곤 했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는 순간, 순간이 늘 즐거웠다.
“작업의 영감이요? 따로 영감을 받는 순간은 없어요. 다만 작업을 시작하기 전엔 늘 소재가 되는 나무들을 바라보죠. 오랫동안 바라보고 또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떤 모습으로 변신시킬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하죠.” 그렇게 찢겨진 상처, 비틀어진 흠 마디마디에 크리스털을 덧입은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 고가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매년 부지런히 전시회를 열고 디자인 페어나 아트페어에 참가해 좋은 성적도 거뒀다. 2008년 라쉐즈 재팬을 창립한 후에는 일본의 유명 인테리어 숍인 와타시노헤야를 비롯해 이세탄 백화점, 마쓰야 백화점 등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이어 작년엔 삼성미술관 리움에도 입점했고 본격적으로 액세서리 브랜드 ‘더 크리스털 바이 라쉐즈(the crystal by La Chaise)’를 론칭, 크리스털 소품의 대중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리고 올해 그녀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업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 유명 화장품 브랜드인 ‘SK?Ⅱ 30주년 기념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작업이었다.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
![[프로의 세계] 마흔에 발견한 나무와 크리스털의 매력](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64.1.jpg)
이렇듯 동양과 서양의 만남, 섬세함과 투박함의 만남, 인조미와 자연미의 만남 등 서로 상극을 이루는 소재들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어우러 내는 그녀의 결과물은 항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카피어(copier:모방자)들도 생기더라고요.” 작업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구를 디자인하고 하나하나 직접 크리스털을 붙이는 수공예인 만큼 보통 한 작품을 만드는 데 3주일 이상 걸리기도 예사다.
나무의 생김새 하나하나에 따른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도,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작업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진 않았지만 자신의 예술혼을 도둑질 당하는 것에 어느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홍현주 디자이너다.
그 상처를 보듬고 안아준 건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작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을 보고 기꺼이 지갑을 열어준 손님들이었다. “전시회에서 평론가와 전문가들의 칭찬을 듣는 것도 좋지만, 제게 위안과 보람이 되어 준 건 바로 백화점에서 처음 내 작품을 보고 너무 특이하다, 너무 새롭다며 직접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사 주시는 분들이셨어요.
칭찬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죠.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직접 구매하는 것이야말로 제 작품을 인정해 줬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그래서 그녀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너무 행복하단다.
“창작 활동을 하는 이에게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 주고 작품을 사 주는 이들이 있어 그 돈으로 다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나요? 내일의 빛나는 꿈도 좋지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근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 가는 것들을 오늘에 되살려 언제나 색다른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있는 감동을 주는 자신의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오늘처럼 행복하게.
약력 : 1959년생. 81년 이화여대 졸업. 1999년 공예 작업실 및 매장 ‘라쉐즈(La Chaise)’ 오픈. 2003년 리빙 디자인 페어 ‘눈에 띄는 공간상 수상. 2006년 프랑스 파리 가구 박람회 참가. 2008년 라쉐즈 재팬 창립. 2009년 액세서리 브랜드 ‘더 크리스털 바이 라쉐즈(the crystal by La Chaise)’ 론칭. 2009년 삼성 미술관 리움 입점.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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