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또 변신’ 웅진의 전략

‘웅진’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정수기(웅진코웨이)나 학습지(웅진씽크빅)를 떠올린다. 그만큼 웅진그룹은 정수기와 학습지 시장에서 최근 10여 년간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최근 웅진그룹이 ‘체질 변화’를 선언하고 나서 업계 안팎의 눈길을 끌고 있다.

웅진그룹은 생활가전 대신 환경과 신소재를 미래의 주력 사업으로 삼기로 했다. 그룹 내부적으로는 2013년께부터 환경·신소재 부문의 매출이 생활가전 부문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웅진그룹의 변신은 생활가전의 가격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데다 고객 수가 국내 가구 수의 절반을 넘어서면서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지난 1980년 7명의 직원과 자본금 7000만 원으로 설립한 웅진씽크빅(옛 웅진출판)으로 시작해 오늘날의 웅진그룹을 키워냈다. 현재 웅진그룹은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 규모 5조 원(올해 예상치)의 재계 33위(자산 기준) 중견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웅진그룹은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을 제외하고는 지난 10여 년간 매년 매출과 영업이익 최고치를 경신하면 비약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

1990년 1481억 원이던 그룹 매출액은 지난해 4조7458억 원까지 가파르게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주력도 바뀌었다. 1990년대는 웅진씽크빅을 중심으로 한 출판·교육이 그룹의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매출 성장세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그 자리를 정수기 업체인 웅진코웨이가 대신했다.

생활가전 부문 레드오션화
[비즈니스 포커스] 친환경·신소재 ‘미래 먹을거리’ 키운다
당시 고가의 정수기를 구입하기 꺼리는 소비자들 때문에 재고가 쌓여 가는 상황에서 웅진코웨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역발상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업계 최초로 ‘렌털 시스템’을 도입, 소비자들이 부담스러워하던 비용 문제를 해소한 것.

사후 관리 문제도 코디 시스템과 정기 점검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며 고객 만족도를 높여 나갔다. 이후 웅진코웨이는 비데·공기청정기·연수기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가며 웅진그룹을 재계 서열 33위까지 끌어올리는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웅진코웨이의 성장 속도가 차츰 떨어지고 있다는데 웅진의 ‘고민’이 있다. 2000~2005년 150%에 달했던 매출 증가율은 2005~2009년 40%대로 낮아졌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전년 대비 각각 7.4%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후발 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면서 시장이 레드오션으로 변한 데다 웅진코웨이의 생활가전 회원(렌털 및 구입 고객)이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사실상 영업 확대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웅진그룹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환경 및 신소재 부문에 이전부터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다.구체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중심으로 수처리 사업 등의 신성장 동력을 본격 가동하며 글로벌 환경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웅진의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웅진그룹은 지난 2007년부터 웅진에너지·극동건설·새한(현 웅진케미칼)·웅진폴리실리콘 등 관련 기업을 설립하거나 인수·합병(M&A)하면서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웅진에너지가 태양전지용 잉곳(실리콘 덩어리)과 웨이퍼를 생산해 수출하고 있으며 웅진폴리실리콘이 태양광 사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태양광 기초 소재 폴리실리콘을 올 하반기부터 생산할 예정이다.

폴리실리콘은 실리콘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든 것으로 빛을 받으면 전기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태양광 산업의 1차 소재다. 폴리실리콘을 활용해 원기둥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인 잉곳을 만들고, 잉곳을 얇게 절단해 만들어진 ‘웨이퍼’로 태양전지 셀을 만든다.

대덕 테크노밸리 내 4만6270㎡(1만4000여 평)의 부지에 자리 잡은 웅진에너지는 국내 최대 규모, 최대 생산량의 태양전지용 잉곳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합작사인 미국의 선파워사와 장기 계약을 통해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다.

웅진에너지가 생산한 잉곳은 수율 95% 이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때문에 선파워에 2011년까지 잉곳을 공급하기로 했던 계약을 2016년까지 연장했다. 현재 1280톤 규모인 연간 생산능력도 2012년까지 4000톤으로 늘릴 방침이다.

수처리 사업에서는 웅진코웨이와 웅진케미칼·극동건설 등 3개사가 주축을 맡는다. 웅진케미칼은 세계 3위 수준의 필터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필터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고 웅진코웨이는 필터를 활용한 공업용 정수, 오폐수 처리 등 사업 채널 확보와 글로벌 영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여기에 극동건설이 플랜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담수화 등 플랜트형 수처리 사업으로 힘을 보태게 된다. 극동건설은 강원도 철원군 축산 폐수 공동 처리 시설, 충남 아산 공업 용수도 사업 시설 공사, 경기도 가평군 통합 상수도 시설 공사 등 다양한 수처리 관련 사업을 시공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오명 전 부총리 컨트롤타워로 영입
[비즈니스 포커스] 친환경·신소재 ‘미래 먹을거리’ 키운다
극동건설 관계자는 “토목·건축 사업에 치중됐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플랜트 사업 분야를 확대할 것”이라며 “환경 플랜트와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 산업 분야에 집중해 2012년까지 플랜트 사업 매출을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의 20%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 수처리 시장은 연평균 6% 이상의 지속적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2012년 시장 규모 5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웅진그룹은 이를 계열사별로 조율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근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웅진그룹 고문 겸 태양광에너지 회장으로 영입해 컨트롤 타워(가온머리) 역할을 맡겼다.

오명 신임 회장은 30여 년의 공직 생활 동안 전국 자동전화 사업, 4MD램 반도체 개발, 정보기술(IT)을 통한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한 인물이다.

대통령 경제비서관, 체신부 장관,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등 공직을 그만둔 후에는 동아일보 회장, 아주대 총장, 건국대 총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주로 정부와 언론, 학계의 수장을 맡았던 오 회장에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오 회장을 영입한 데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오 회장의 ‘인연’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윤 회장은 10여 년 전부터 그룹 경영의 멘토가 될 세 사람과 꾸준한 ‘만남’을 가져 왔는데 오 회장의 그중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두 사람은 조동성 서울대 교수와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윤 회장은 멘토 그룹을 꾸린 뒤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다. 단순히 식사만 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웅진그룹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윤 회장은 이와 관련해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외부에서 웅진그룹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됐고 그룹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오 회장께서도 웅진그룹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져 자연스레 경영진으로 영입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이미 4년 전 오 회장에게 현재 자리로 와 줄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 회장이 당시 건국대 총장으로 가게 되면서 무산됐다. 올 8월 총장 임기가 만료되면서 재차 제안해 성사됐던 것.

윤 회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우리가 나서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일으키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논리로 오 회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오 회장은 “IT 등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 국내외 연구소·대학과의 협업 등을 통해 웅진그룹을 세계 정상권의 환경·에너지 그룹으로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