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좀처럼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자 더 이상 체면만 차리고 있을 수는 없게 된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 3개국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힘겨루기의 향후 추이가 어찌 될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이봉구의 뉴스 & 뷰] 본격화하는 미중일 ‘환율 전쟁’ 삼국지](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27570.1.jpg)
이날 엔화 가치가 지난 1995년 5월 이후 최고치인 달러당 82엔대까지 치솟자 일본은행은 하루 동안 무려 2조 엔의 엔화를 내다 팔며 달러당 85엔대로 끌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무려 20년에 걸쳐 장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엔고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시장 개입은 즉각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경제가 어렵기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인데 유독 일본만이 중앙은행의 인위적 시장 개입을 통해 경제를 부양하려는 행태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더블 딥 방지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추가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펴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 회복세와 고용이 둔화되고 있다”며 “정책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현재의 연 0~0.25% 수준에서 동결하고 새로운 경기 부양책을 동원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한 것은 달러화 약세를 유도해 경기 회복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에 대해서도 절상 압력을 배가해 나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열린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위안화 환율 문제로 발생한 미국과의 긴장 관계를 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며 환율 문제를 중요 의제로 집중 거론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또한 “저평가된 위안화가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며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안화 환율 시스템 개혁을 위한 지지 세력을 규합하겠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 역시 위안화 절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달러화 약세 유지를 위해 전방위적 공세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도 원화 강세 미리 대비해야
하지만 중국과 일본 또한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원자바오 총리는 “환율 체계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겉으론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척하면서도 “중국은 무역 흑자를 추구하지 않고 세계 패권을 노리지도 않는다”고 강조해 미국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중국은 또 막대한 외화보유액을 활용해 일본 국채 등을 사들이며 엔화 강세를 유도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은 여차하면 일본은행이 다시 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해 놓은 상태다.
미중일 환율 전쟁이 이처럼 불붙고 있지만 슈퍼 파워 미국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규모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는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원화 또한 같은 이치에서 이들 통화와 같은 행보를 보일 공산이 크다. 실제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그런 양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원화가 상승세를 줄달음하면 우리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위안화와 엔화 역시 동반 강세를 나타내 수출에 대한 악영향을 다소 감소시켜 주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 전쟁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면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강구해 둬야 할 때다.
이봉구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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