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메이그룹 경영권 대결

지난 9월 28일 홍콩에 있는 통뤄완푸하오 호텔. 중국 2위 가전 유통업체 궈메이(國美) 특별 주주총회 현장 취재를 위해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주주가 아니면 주총장에 직접 들어갈 수 없다는 조건 때문에 일부 기자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궈메이 주식을 최근 매입하기도 했다.

궈메이 창업자와 전문경영인 간의 ‘경영권 분쟁 드라마’를 보여준 이날 주총 장면은 중국 언론들을 통해 TV와 인터넷에 생중계됐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주총장 옆 휴게실에서 이를 지켜봤다.

자본주의 국가 기업에서나 나올법한 창업자와 전문경영인 간 분쟁이 사회주의 국가 중국 기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국 기업 역사(歷史)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평도 나온다.

무일푼에서 시작해 2008년 자산 430억 위안(약 7조3000억 원)을 보유한 중국 최고의 갑부에까지 올랐다가 그해 뇌물 혐의 등으로 감옥에 갇힌 처지로 전락한 파란만장한 인생의 궈메이 창업자 황광위(41) 전 회장이 재기를 꿈꾸는 ‘주연’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요인이다.

◎ 이성이 도덕을 누른 한판승 = 이날 주총에선 천샤오 현 회장을 해임하는 황 전 회장 측의 요구안이 부결되고 황 전 회장의 여동생인 황옌훙과 그의 변호사인 저우샤오춘의 등기 이사 임명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천 회장이 요구한 증자안도 무산돼 황 전 회장은 최대 주주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던 주총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궈메이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것(월스트리트저널)”, “주총 결과는 천 회장 측과 황 전 회장 측이 마지막 결전을 벌일 무대를 마련해 줬다(파이낸셜타임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창업자 ‘패배’…주주들 지지 못 얻어
이를 두고 “이성이 감성을 눌렀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자들의 ‘이성’이 전통 관념인 도덕성을 대변한 ‘감성’을 이긴 결과라는 것이다. 가전 유통업체인 ‘융러(永樂)’의 창업자였던 천 회장은 2006년 11월 융러가 궈메이에 인수되면서 궈메이의 총재(사장)로 황 전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세간에선 ‘영웅만이 영웅을 중시한다’며 황 전 회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황 전 회장이 2008년 말 내부자 거래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 천 회장은 해외 주주들을 끌어들이고 황 전 회장을 배임으로 고소하는 등 경영권 다툼을 벌여 왔다.

중국경영망은 “그동안 인터넷 등에서는 천 회장에 대해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며 “그러나 그들은 네티즌일 뿐 주주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창업자 ‘패배’…주주들 지지 못 얻어
중국경영망은 “주주들 쪽에서 보면 황 전 회장이 최대 주주인 것은 사실이지만 14년형을 선고받아 경영을 하기에는 문제가 있고, 그가 내세운 이사 후보들은 천 회장에 비하면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주주들은 회사 이익 극대화를 위해 천 회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천 회장의 지분은 1.47%에 불과했지만 2대 주주인 베인캐피털(9.98%) 등 기관투자가들을 우호 주주로 확보해 경영권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지킨 천 회장이 절대적인 승리를 한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아 최대 자본금의 20%까지 주식을 추가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을 취소해 달라”는 황 전 회장의 요구가 주총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는 황 전 회장이 궈메이의 지분 32.47%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창업자 ‘패배’…주주들 지지 못 얻어
20% 증자가 황 전 회장 측이 참여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진행되면 황 전 회장 측 지분은 25.6%로 떨어지게 된다(국제선구보도). 천 회장은 궈메이가 상장사이기 때문에 개인이 경영하던 과거 방식으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며 증자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제국주의 체제’가 ‘공화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일반 주주들로서는 현 경영진이 추가 증자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주주 가치의 희석을 막는데 베팅했다.

황 전 회장 측이 이날 주주총회가 끝난 후 “투표 결과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면서도 “최악의 결과는 아니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의리를 버렸다는 지적을 받는 천 회장도, 뇌물 혐의 등으로 부패 기업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황 전 회장도 주주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았다. 도덕보다는 실리를 더 챙기는 주주 자본주의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주총회의 결과는 소액 주주들의 뜻이 고스란히 반영됐다”며 “궈메이는 투자자들 쪽에서 더욱 투자할 만한 기업이 됐다”고 평가했다.

◎ 분열 위기 직면한 궈메이 = 이제 관심은 11월 1일로 쏠린다. 황 전 회장이 지분을 100% 보유한 영업점 381개를 궈메이에서 분리해 독자적인 영업 활동을 하는 시기가 이때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점포는 상장된 궈메이 소속이 아니다. 상하이에 있는 모든 궈메이 점포는 황 전 회장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궈메이가 직접 산하에 두고 있는 매장은 740여 개에 이른다.

황 전 회장은 천 회장이 계속 경영권을 지킬 경우 자신의 점포를 분리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천 회장 측은 11월 1일까지 황 전 회장 측이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 상태다.

황 전 회장 구속 전만 하더라도 중국 1위 가전 유통업체였던 궈메이가 둘로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장 궈메이는 황 전 회장 개인이 소유한 영업점들이 내고 있는 위탁 경영 수수료 2억 위안의 수입이 날아간다.

궈메이의 매장 수가 줄어들면서 구매력 파워가 작아지는 것도 문제다. ‘분열된 궈메이’라는 이미지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것은 불문가지다. 궈메이라는 브랜드는 중국과 홍콩에서 궈메이가 사용권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황 전 회장 개인 소유다.

중화권 이외 해외 지역에 궈메이가 진출할 때 브랜드명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궈메이가 보유한 브랜드 사용권도 시효가 2014년이다. 이후에는 브랜드 사용권을 놓고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쑤닝전기에 점포 수로 중국 1위 가전 유통 자리를 물려준 궈메이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궈메이의 순익은 9억6200만 위안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65.86% 늘어난 것이긴 하지만 쑤닝전기의 20억 위안에 크게 못미친다. 2008년만 해도 쑤닝전기의 매출은 궈메이(황 전 회장 소유 점포 포함)의 70%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젠 96% 수준으로 올라왔다.

◎ 승자는 베인캐피털과 쑤닝전기 = 궈메이의 몰락은 중국 최대 가전 유통업체로 등극한 쑤닝전기에 득이 된다. 궈메이 경영권 분쟁의 승자가 쑤닝전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승자는 미국의 사모 펀드 베인캐피털이다(경제참고보).
[중국] 창업자 ‘패배’…주주들 지지 못 얻어
베인캐피털은 궈메이의 전환사채를 9월 15일 주식으로 전환, 9.98%의 지분을 보유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한 자본은 16억 위안이지만 보유 지분 가치는 이미 38억4000만 위안에 이른다.

더욱이 베인캐피털은 11명으로 이뤄진 궈메이 이사진 가운데 4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천 회장 등 우호 세력까지 합치면 궈메이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베인캐피털은 자사가 투자한 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의 디딤돌로 궈메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1984년 설립된 베인캐피털은 65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대형 사모 펀드 회사로, 지분을 보유한 회사만 전 세계에 250여 개에 이른다.

덩슈엔 런던정치경제학원 박사는 “베인캐피털은 전 세계에 유통 기업에서부터 가전 업체 등 다양한 업체들이 있다”며 “이들 회사 제품의 유통 경로로 궈메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양측이 결국은 타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경영망은 “황 전 회장 측이 베인캐피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길 희망하고 있고 주주들도 이를 바라고 있는 만큼 결국 양쪽이 손을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민영기업 역사에서 보기 드문 내전(內戰)(국제선구보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