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시밀러(biosimilars)’ 사업 진출 각축전

세종시 건설 수정안과 관련해 연일 ‘바이오시밀러(biosimilars)’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에서 새로운 테마로 등장했고 일부 증권사는 바이오시밀러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도 출시했다. 이렇게 바이오시밀러가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차기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이 분야에 진출할 것을 지난해 공식 발표했고, 최근 세종시에 삼성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진출하느냐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은 세종시 투자 계획에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제외했지만 올해 바이오시밀러를 필두로 한 바이오산업은 지난 황우석 박사 사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바이오시밀러 사업이란 쉽게 말해 특허 기간이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의 구조와 제작법을 모방해 복제약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바이오시밀러는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보다 개발하기도 어렵고 제조 과정도 복잡하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가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바이오 의약품의 시장성이 밝은데다 신약 개발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바이오 의약품은 생물체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독성이 적고, 특히 난치성 환자나 만성질환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바이오 의약품 시장은 2012년 1000억 달러를 넘어서며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바이오 의약품은 가격이 매우 비싼 것이 문제였는데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이오시밀러다. 기존 의약품을 본뜨는 것이기 때문에 개발비용이 20만 달러 수준으로, 신약 개발의 10분의 1 수준이며 개발 기간도 3~4년 정도로 짧다. 이 때문에 가격이 싸다.세계적인 바이오 의약품 특허 종료 시기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몰려 있어 시장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인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2010년 50억 달러 수준으로 2015년에는 25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바이오 의약품을 기존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 정부는 의료 재정 부담을 덜 수 있어 진흥책을 펴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 개혁을 추진하며 바이오시밀러를 자주 언급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7월 신성장 동력 사업 중 하나로 바이오 제약을 정하고 삼성전자·LG생명과학·셀트리온·한올제약 등을 바이오시밀러 프로젝트 주관 기관으로 정해 연구·개발에 3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중점사업으로 바이오시밀러 제품화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신속한 허가를 지원하기 위해 단위별 심사 대상을 확대하고 영문 규정 및 영문 가이드라인을 발간할 예정이라고 지난 1월 5일 밝혔다.국내외 제약 업계뿐만 아니라 삼성·한화 등 국내 대기업들도 바이오시밀러 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등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두고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화이자·머크·로슈 등 거대 글로벌 제약사들은 지난해 거액을 들여 바이오 업체를 인수하며 개발 인프라를 확보했다. 한국에서는 셀트리온·차바이오텍·슈넬생명과학 등 제약 바이오 회사와 삼성전자·한화석유화학 등 대기업들이 대표적인 바이오시밀러 사업 진출 기업이다.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이수앱지스와 한국프로셀제약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특허 만료되는 9종 이상의 바이오시밀러 대량 공급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이수앱지스는 국내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이자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인 항혈전 치료제 ‘클로티넵’을 개발해 이미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수앱지스는 지난 2000년 이수그룹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며 설립된 회사로 2002년부터 클로티넵을 연구·개발,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출시했다.현재 클로티넵은 해외 33개국과 700억 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수앱지스는 두 번째 바이오시밀러 치료제인 ‘ISU320’을 개발하고 현재 임상 실험과 세계 각국의 식약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신청해 상태다. 올해 시장에 출시 예정인 ISU320은 세계 최초의 고셰병(유전성 희귀 질환으로 체내 대사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효소가 결핍돼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이다. 삼성전자는 이수앱지스와 함께 앞으로 5년간 바이오시밀러 분야에 5000억 원 규모로 설비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삼성전자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투자 지역이 세종시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 데 따라 경북 대구 신서지구의 첨단의료복합단지나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 중 어느 곳으로 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이미 세계 3위 규모의 단백질 생산 시설을 갖춘 셀트리온은 지난해 6월 유방암 바이오시밀러 치료제인 ‘허셉틴’ 개발에 성공, 국내와 동남아 지역에서 임상 실험을 최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는 2월에는 유럽 내 26개국 5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국내 임상 실험을 올해 말 끝내고 2011년 제품 허가를 받아 출시할 계획이다. 또 중국·인도·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2011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한화석유화학은 바이오시밀러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HD203’을 개발 중이다. 서울대학교병원과 계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임상 실험에 돌입했다. 지난 2007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HD203은 세포주 개발부터 배양·정제·제형화까지 자체 개발하고 상업 생산 공정까지 확립한 상태다. 한화석유화학은 지난해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상업 생산을 위해 오송생명과학단지 내 3만6005㎡ 부지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한화는 이 사업에 2018년까지 총 2055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한화 계열사의 의약품 업체인 드림파마와 함께 다국가 임상 실험을 마치고 2012년 말 국내 허가와 판매를 시작으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LG생명과학도 오송생명과학단지 내에 전문의약품 생산 공장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06년 유럽으로부터 성장호르몬인 ‘벨트로핀’에 대한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받은 바 있다.차병원그룹의 바이오 기업인 차바이오앤디오스텍도 핸슨바이오텍과의 합병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고 지난 1월 10일 밝혔다. 이를 위해 차바이오앤디오스텍은 LG생명과학기술연구원에서 18년간 다양한 바이오시밀러 생물 의약품 개발 경험이 있는 핸슨바이오텍의 한규범 대표이사를 바이오개발부문 사장 및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이와 같은 바이오시밀러 진출 러시와 관련해 차후 시장 선점과 생산과 유통에서 누가 우위를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수앱지스의 정수현 차장은 “이제까지 바이오 의약품이 너무 비싸 시장이 크지 못했지만 특허가 만료되면서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며 “기술을 갖추고 얼마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원가를 낮추느냐가 경쟁 요소”라고 설명했다.생물의 체내에서 이뤄지는 합성을 외부 장치로 실현한 것을 바이오리액터(bioreactor)라고 하는데 이 생산 설비가 앞으로 가격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적으로 1만리터 이상의 바이오리액터를 구비하고 있는 회사는 국내 셀트리온을 포함해 24개에 불과하다.기존에 개발된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만료되면 구조와 제작법을 모방해 복제약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의약품은 크게 화학물질을 근거로 하는 합성(chemical) 의약품과 생물에서 뽑아낸 세포나 조직으로 만든 생물(bio) 의약품으로 나뉜다. 기존에 ‘제네릭(generic)’ 또는 ‘카피약’이라고 불린 것은 화학물질을 합성한 의약품을 복제한 데 비해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했다는 것이 차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생물에서 추출한 원료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똑같은 기술을 이용해 동물 세포나 조직에서 배양하더라도 단백질 구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 영어로 ‘비슷하다’는 의미의 ‘시밀러(similar)’로 일컬어진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