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명퇴 바람’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대한 ‘출구전략’은 금리보다 인력 구조조정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라 잠재돼 있던 명예퇴직(명퇴)에 대한 필요가 정부의 ‘잡셰어링’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경기가 회복되는 틈을 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은 어느 정도 경기가 살아나며 투자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명퇴의 필요성이 적은 반면 금융 업종에서 대거 명퇴가 실시된 것이 특징이다.신한은행은 2007년에 이어 2년만인 2009년 12월(18~28일)에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부지점장급 이상 고위직을 위주로 일부 차·과장급도 신청을 받았다. 조건은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퇴직금 외에 ‘24개월치 임금+연령별 차등 위로금’으로 최대 30개월치 임금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받았다. 620명이 이를 통해 회사를 떠났다.신한은행은 ‘관리 전담 계약직’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퇴직한 직원을 다시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부부장·부지점장급 이상의 고급 인력들을 대상으로 영업점 1일 감사, 전임 감사, 전행여신감리, 여신승인조건사후이행 관리, 특명 검사, 자금세탁 방지 모니터링 등의 업무에 투입된다. 급여는 퇴직 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직원들의 반응이 좋아 절반 이상이 관리 전담 계약직으로 남는다.제주은행 역시 2007년 이후 2년 만인 2009년 12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제주은행 측은 “구조조정 차원이 아닌 조직 역량 활성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4개월치 임금이 위로금으로 주어졌다. 퇴직을 대비한 지원 프로그램 대신 전직에 필요한 시간 동안의 생계를 위한 ‘전직 지원금’으로 1000만 원, 자녀 학자금 1인당 1000만 원(최대 2명까지)이 지급된다. 총 15명의 퇴직자들을 위해 별도의 퇴임식을 가졌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후 명퇴를 실시한 적이 없었던 기업은행도 지난해 12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기업은행의 경우는 희망퇴직의 목적이 타 회사와 달리 임금 피크제와 맞물려 있다. 만 55세 때 희망퇴직을 하든지, 임금 피크제를 적용받아 만 60세 정년까지 일을 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희망퇴직을 할 경우 연봉의 260%를 위로금으로 받게 되며 회사에 남을 경우 연봉의 260%+α를 5년에 걸쳐 나누어 받게 된다. 연봉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회사에 남든 남지 않든 받게 되는 총액은 비슷하기 때문에 70% 이상은 퇴직을 선택하지만 자녀 학자금 등의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회사에 남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남을 경우 신한은행의 관리 전담 계약직과 비슷하게 지점 일일 감사, 준법 감시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농협은 평직원의 경우 근속 연수 10년 이상, 책임자급은 나이 제한 없이 희망퇴직 신청을 지난해 12월(17~22일)에 받았다. 특별 퇴직금으로 20개월치의 임금을 제공한다. 391명이 신청했는데 2007년 219명, 2008년 330명으로 해마다 조금씩 느는 추세다. 1월 22자로 퇴직 발령이 예정돼 있다.농협은 2008년에는 명퇴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점 일일 감사 등 계약직 채용 절차가 있었지만 2009년에는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 농협에 따르면 희망퇴직 후 타 기업으로의 재취업은 많지 않은 편이다.삼성화재도 지난해 12월 14년차 이상의 대졸 일반직군과 12년차 이상의 사무 전문직군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사무 전문직군의 경우 고졸 또는 전문대졸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여직원일 경우 12년이 지나도 30대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30대 직원도 있다. 희망퇴직 연령이 30대까지도 낮아진 것이다. 삼성화재는 이번 희망퇴직에 맞춰 ‘금융경력개발센터’를 처음으로 개설해 희망자들에 한해 재취업 또는 창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했다.금융권에서 명예퇴직이 많은데 대해 한 금융회사 인사담당 임원은 “다른 직종에 비하면 위로금이 많아 명퇴에 대한 자발적 수요가 늘 존재한다”며 “단기적으로 비용 부담이 있지만 금융계의 고임금을 고려하면 2년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주더라도 경영 측면에서 손해는 아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위의 회사들이 상시적인 경영합리화의 차원에서 명예퇴직을 실시한 것에 비하면 절박한 회사 사정 때문에 최근 명퇴를 실시한 기업들도 있다. 금호생명은 2008년 10월 대주주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매각을 발표한 상태다. 은행이 자기자본비율(BIS)을 갖추듯 생명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을 맞춰야 하는데, 타 생보사와 달리 대주주가 자금 확충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효율화 차원으로 2009년 10월 자발적인 퇴직을 실시했다는 것이 금호생명 측의 설명이다. 대상자인 10년차 이상 직원 중 135명이 이번 명퇴를 통해 회사를 떠났다. 명퇴금은 18개월치의 임금이었다.금호생명은 회사 차원에서 상당한 비용을 들여 전직 지원을 위한 무료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소 1개월에서 3개월까지 교육이 이어지는데 부동산·경매·창업 등 다양한 교육을 본인이 선택해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명퇴자 중 이를 수강하는 경우는 30% 미만이다. 대개는 재취업에 더 힘을 쏟는 편이다.2009년 연말 명퇴를 실시한 제조 업체로는 한진중공업이 꼽힌다. 지난 2002년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조선 경기가 절정에 이르는 동안 인력 감축의 필요성이 없었지만 지난해 7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래서인지 퇴직 대상자들을 위한 교육은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원래는 지난해 12월 말까지가 신청 기간이었지만 올해 1월까지 연장해 신청을 받고 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되 조건은 근속 연수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다. 조선 업체의 경우 뛰어난 기술을 가진 경력자들이 계약직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기술직에 한정되고 숫자도 많은 편은 아니다.금융감독원은 2008년부터 3년 동안 매년 59명을 줄이기로 한 ‘경영효율화’ 방안에 따라 2008년 명퇴를 실시했지만 2009년 연말에는 명퇴 조건을 두고 노조와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명퇴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 측은 “정부로부터 예산을 통제받는 기관이다 보니 사기업처럼 풍족하게 주지 못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금감원은 명퇴금으로 1년치 임금을 주기로 한 지난해 방안을 제시했지만 노동조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최근 명퇴를 실시한 기업이 최소 18개월에서 30개월치 임금을 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요구 사항이 다소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한편 ‘철밥통’으로 인식되던 공무원 사회에서도 명퇴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가 아직 2009년 통계를 발표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2008년에는 지방공무원 2299명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했다. 2007년 1384명에 비해 66%가 늘어난 것이다. 1997년에는 350명에 불과하던 지방공무원 명예퇴직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094명으로 급증한 뒤 2000년 5064명으로 다시 감소 추세에 들어 해마다 1000명 수준을 유지해 왔다. 행안부 관계자는 “2008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변화되면서 불안감을 느낀 공무원들이 명퇴 신청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전했다.KT의 경우 지난해 초 KTF와의 합병으로 인한 인력 구조조정을 이번 연말에 실시한 것처럼 최근 LG그룹의 통신 3사 합병으로 명예퇴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역시 지난해 합병한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인수·합병된 기업들에서 시차를 두고 명퇴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