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걸린 디트로이트의 농업 플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모겐소 계획’을 세워 전범국가 독일을 16세기식 농업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제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웠던 독일의 막강한 산업 기반을 완전히 파괴해 놓아야 전쟁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게 기본 논리였다.이 같은 모겐소 계획은 구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돼 독일을 다시 산업국가로 일으켜야 할 전략적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서류상의 계획으로 끝났다. 아마도 냉전이 없었다면 오늘날 벤츠와 BMW는 물론 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각종 독일산 공산품을 구경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독일은 아마도 오늘날 불가리아나 알바니아와 비슷한 유럽의 낙후된 가난한 농업국가로 머물렀을 수도 있다. 최고의 산업국가, 산업 중심 도시가 농업 지역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선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하지만 세계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였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이 같은 농업도시로의 회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공업의 상징 디트로이트가 빠르게 농업도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쇠퇴하면서 도시 자체가 쇠락하는 이유도 있지만 첨단 농업 시설을 유치해 도시에 새 삶을 불어넣으려는 한 재력가의 도시 재생 플랜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최신호에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중심 도시였던 미국 디트로이트가 금융 위기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침체 와중에 대규모 농업 도시로 변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천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의 재력가를 중심으로 디트로이트 시내에 대규모 첨단 농장지대를 조성하는 투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디트로이트의 부유층 펀드 매니저인 존 한츠(48)가 황폐한 땅으로 변해가는 디트로이트 시내에 2010년 봄 이후 3000만 달러를 투자, 농장을 조성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것. 한츠는 미시간·오하이오·조지아 등에 20여 개 사무소와 500여 명의 임직원을 두고 13억 달러의 자산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스타 금융 서비스 기업인이었다.한츠는 거주지인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도시 외곽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폐허가 돼 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디트로이트를 농업 도시로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얻었다. 1억 달러의 자산가이기도 한 한츠는 디트로이트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다. 한때 인구 200만의 미국 내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는 지금 빈 땅이 즐비하고 인구는 90만 명으로 줄었다. 조만간 인구는 70만 명가량으로 더욱 감소될 전망이다. 탈산업화 시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디트로이트는 비어 있는 오피스 건물과 폐가가 늘어서 있고 곳곳에 빈 황무지를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디트로이트시를 되살리고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디트로이트 시와 시민단체, 재력가들 간에는 디트로이트의 변화·변신 방향을 놓고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하지만 디트로이트가 비교 우위를 가진 장점을 찾기 힘든다는 게 문제였다. 금융 중심지로선 이미 시카고가 있고, 바이오 허브로선 보스턴과 샌디에이고가 앞서 있기 때문이었다. 제2의 할리우드가 돼 보자는 생각도 나왔지만 “과연 로스앤젤레스와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 더 높았다. 이에 따라 한츠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첨단 농업 중심지다.한츠가 보기에 농업은 적지 않은 수익성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는 수단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막대한 인구와 재원이 빠져나가고 있는 도시를 대농장으로 변신시켜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해 과거의 영화만큼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아 살길을 모색해 보자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한츠는 또 개인 사재 3000만 달러를 투자, 디트로이트 동부 외곽지대에 선도 프로젝트를 시행에 옮겼다. ‘문 밖(아웃 오브 더 게이츠)’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선도 농업단지는 도시에 적합한 새로운 농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각종 예비 사업들이 진행되게 된다. 포천지는 “한츠의 아이디어가 지자체와 여러 단체들의 지지와 협력 속에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며 “첨단 유기농업과 대농장 경영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인프라 대책 등을 강구하는 작업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김동욱 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