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단렌의 고민과 선택
일본의 대표적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캐논 회장)은 7월 초 정례 기자회견에서 향후 중의원 선거와 관련, '자민당 지지'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각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 공약에 따라 지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타라이 회장과 이마이 다카시 명예회장 등 게이단렌 고위층은 최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과 당내 주요 의원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갖는 등 민주당과의 거리 좁히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5년 9월 총선 당시 공개적으로 여당인 자민당 지지를 표명하고 적극 밀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니다.지난 50여 년간 집권 자민당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게이단렌이 최근 정권 교체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8월 30일로 예정된 중의원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승리가 점쳐지면서 그동안 각종 세제, 사회복지, 환경 등 주요 경제 정책에서 민주당과 충돌했던 게이단렌의 입장이 곤란해졌기 때문이다.실제 게이단렌은 민주당과 여러 경제 정책에서 시각을 달리해 왔다. 게이단렌이 경기 부양 재원 마련을 위해 소비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향후 4년간 소비세 인상을 논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제조업의 비정규직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하다는 주장이지만 게이단렌은 기업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주문이라고 맞서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까지 1990년 기준 25%까지 감축한다는 민주당 제안에도 게이단렌은 실천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게이단렌은 지난해 각 정당별 정책 형가 보고서에서 민주당의 주요 정책에 대해 "선심성 사회복지 정책의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해야 할지 불분명하고 당리당략에만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며 날카롭게 비난했다. 또 최고 점수인 'A'에서 최저인 'E'까지 5단계로 구분된 분야별 정책 평가에서도 'A'는 한 개도 주지 않고 대부분 'C'와 'D'로 평가했다. 실제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져 민주당이 집권하면 게이단렌으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아소 다로 총리가 7월 21일 중의원을 해산한 뒤 8월 30일 총선을 실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치권은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한 본격적인 선거 정국에 돌입했다. 이번 중의원 해산은 아소 총리가 차기 정국 장악을 위해 주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자민당과 공명당 등 공동 여당 간부들과의 협의를 거친 '자의 반 타의 반' 해산이라는 점에서 아소 총리의 앞날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당초 아소 총리는 8월 초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최선의 카드로 검토해 왔다. 하지만 7월 1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여권 내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선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 시점을 둘러싸고 당의 분열 조짐이 보이자 여당 간부들이 중재에 나서 도출된 것이 '7월 21일 해산-8월30일 총선'이다. 아소 총리가 자신의 손으로 중의원을 해산하되 해산 시기는 당초 계획보다 1주일가량 뒤로 미루는 선에서 타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퇴진론을 차단하고 일단 '연명'하는 방안을 택했다.최근 발표된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56%의 지지율로 자민당(23%)을 두 배 이상 앞서고 있다. 갈수록 여권으로부터의 민심 이탈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소 총리와 자민당은 총선 때까지 민심을 돌릴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1955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중의원 원내 제1당의 자리는 물론 정권까지 민주당에 넘겨줘야 하는 극한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자민당으로서는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아소 총리로서는 중의원 선거 참패로 정권을 야당에 물려주는 최초의 자민당 소속 총리가 전락할 우려가 있다. 반대로 제1야당인 민주당과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로서는 54년 자민당 독주를 종식시키면서 일본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양당을 합쳐 과반수를 지켜 정권을 유지한다는 게 목표다. 반면 민주당은 최근의 지방선거 연승의 여세를 몰아 정권 교체의 숙원을 이루겠다는 각오다.앞으로 남은 기간에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변수가 돌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자민당의 고전이 예상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물론 총선의 전초전으로 7월 12일 실시된 도쿄도의회 선거의 결과를 보더라도 자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은 심각한 상황이다.마이니치신문이 7월 18,19일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총선에서 이기길 바라는 정당으로 민주당을 꼽은 비율이 56%에 달했다.반면 자민당은 23%에 그쳤다.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이 36%로 자민당(18%)의 꼭 2배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권 진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아소 다로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17%로 떨어졌다.교도통신 조사에서도 비례대표 투표 정당으로 민주당이 36.2%를 얻은 반면 자민당은 15.6%에 그쳤다. 2005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서는 자민당이 31.5%, 민주당이 15.2%였다.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4년 전 총선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내세운 '우정 개혁' 바람으로 자민당이 전체 480석 가운데 296석을 차지해 압승을 거뒀다. 공명당 의석을 합쳐 중의원 재의결에 필요한 3분의 2를 여유 있게 넘었다.그러나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는 자민·공명 양당이 과반 의석(241석)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쿄도의회 선거 결과를 토대로 한 시뮬레이션에서는 민주당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이에 따라 자민당은 오자와 이치로, 하토야마 유키오 등 민주당 전·현 대표의 정치자금 등 약점을 들춰내 공격하는 네거티브 전략도 불사한다는 계획이다.해산에서 투표까지 40일간이라는 법정 최대 기간을 둔 것도 그를 위한 시간 벌기 측면이 강하다.반면 최근 민주당의 행보를 보면 자민당과 여야가 뒤바뀐 모습니다. 당내 결속을 다지면서 악재가 돌발하지 않도록 내부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일부 선거구에는 후보를 내세우지 않고 다른 군소 당에 양보하는 등 야권 공조에도 공을 들이고 쓰고 있다. 선거 이후의 정권 운영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민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차지하더라도 다른 야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하다. 참의원에서 단독 과반에 미달하기 때문에 법안 통과 등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다른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오자와 전 대표의 비서 경력이 있는 김숙현 도호쿠대 교수는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큰 변수가 없는 이상은 자민당의 패배와 민주당의 승리,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 또는 정계 개편이라는 일본 정치사의 큰 획을 긋는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